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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걸로 보아 후루이 요시키치는 도쿄 토박이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1937년에 태어나 도쿄 대학과 대학원에서 독문학 석사를 취득하고 릿교 대학 조교수를 지냈다. 대학원에서는 카프카를 연구하는 한편 로베르트 무질과 헤르만 블로흐의 작품 번역에 관여했다. 자신이 번역을 했다는 게 아니라 번역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말이다. 일어판 위키피디아에는 후루이 요시키치가 1960년대 말에 무질의 <사랑의 완성, 조용한 베로니카의 유혹>을, 블로흐의 <현혹>을 번역했다고 나온다. 어느 게 맞는 지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떤가. 오늘 소개하는 <요오꼬>가 다분히 무질과 블로흐의 작풍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정병호 고려대 일문과 교수의 역자해설에 쓰여 있다. 후루이는 1970년에 <둥글게 둘러선 여자들>이라는 작품을 써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 곧바로 그해 3월에 릿교 대학 조교수 자리를 때려치우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단다.
같은 해 64회 아쿠타가와 상에 이이의 두 작품이 결선에 올랐으니 <요오꼬>와 <아내와의 칩거>였다. 결선에 두 작품을 올린 것도 대단한데, 더 놀라운 건 당선작이 <요오꼬>, 그리고 불과 1표 차이로 <아내와의 칩거>가 준우승했다는 거. 작가는 1971년에 이 두 작품을 묶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13년에 창비가 이 책을 정병호 교수에 의뢰해 우리나라 초역, 자사의 세계문학전집 22번으로 출판했고 이후 7년이 더 흐른 2020년 82세의 후루이 요시키치가, 숟가락 놨다. 이로부터 5년이 더 지나 드디어 쇤네가 읽었습지비.
일본의 문학평론가들은 1960년대 학생운동과 기타 등등 전투적 주장들이 시새푸새해진 반동으로 1970년대 초에 등장한 일군의 작가들의 시대를 ‘내향의 시대’라고 하는 모양인데, 다 그렇듯이 상당기간 다분히 정치적 구호에 복무하던 문학이 이제 인간 개인의 내면과 실존 같은 것을 ‘다시’ 들여다본 시기 정도로 생각하면 적당할 듯하다. 말 잘했네. “다 그렇듯이.” 특히 예술이란 게 다 그렇지 뭐. 이쪽으로 기울었던 반동으로 저쪽으로 돌아서고, 또다시 이쪽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거. 그게 사조 아냐? 당시 이 사조 ‘내향의 시대’의 선두에 후루이 요시키치가 있었고, 그의 대표작이 <요오꼬>와 <아내와의 칩거> 정도라고 이해하면 딱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에 당선, 차선한 작품이라 그런지, 다 읽을 때까지 이런 정보는 몰랐는데, 읽으면서 거 참 대단하군, 쥐뿔도 모르면서 감탄했다는 것은 숨길 필요가 없겠지. 무지하게 헛갈리는 묘사. 섬뜩한 감정, 심리의 포착 같은 것들. 이 가운데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요오꼬>만 소개한다.
첫 장면. 도쿄 사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지만 여름 방학 이후로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던 히키코모리 S가 웬일인지 196X년 10월 중순에 등산을 가 오후 한 시경 K봉우리 정상에 섰다. 그런데 때를 맞춰 서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밀려온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기로 하고 O계곡으로 하산, N계곡과 합류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 지역이 험해 조난 사고도 잦은 곳이다. 사흘간의 단독산행을 마치는 마지막 하산길. 아직 여물지 않은 젊은 남자인 S 앞에 계곡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여자 한 명이 보인다. 이 여자가 요오꼬. 독자는 이 장면에서 요오꼬가 외롭게 사는 산골처녀로 여기기 십상이다. 196X년에 젊디젊은 여성 혼자 산행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고 더구나 계곡의 바위 위에 앉아 물끄러미 조그만 돌탑을 바라보느라 넋을 잃고 있는 모습이 워낙 자연스럽게 읽혀 여지없이 산골 아가씨로 여길 수밖에. 하여간 S가 보기에 요오꼬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 듯 비치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얼굴만 가지는 으스스한 기운 때문에” “선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표정까지 깨끗이 씻겨 없어진 듯 얼굴이 허옇게 떠 있는 것이 “울다 지쳐 마당 구석에서 웅크리고 돌멩이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이의” 것과 비슷한 느낌.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저것이 사람인가, 구미호인가 싶었을 텐데, 일본 사람이니 사람인지 귀신인지 몰랐을 것 같다. 그러니 으스스했고, 걷다가 우뚝 서서 발바닥이 떨어지지 않았겠지. 이때 외모 묘사가 나온다. 소녀 같은 몸집, 배낭을 등에 맨 채 살구색 아노락 점퍼를 입은 돌보아야 할 환자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 S는 요오꼬가 자기보다 서너살 더 많을 것처럼 보인다. S는 요오꼬를 부축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요오꼬는 아마도 계곡이 합쳐지는 합수골에서 탈진해 무려 세 시간 넘게 그런 상태로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S가 앞에 서고 요오꼬가 그를 따르며 내려오는데 요오꼬가 말하기를 자기가 꼼짝 못하고 앉았던 그곳의 정황이:
“예를 들면 얕은 잠 속에서 누군가가 현관문을 반복하여 두들기고 있는 것을 귀로는 듣고 있으면서 뭐라 표현할까, 그것을 한덩어리의 생각으로 파악하기가 아무래도 되지 않아 속이 타고 답답해서 잠자리에서 몸을 비비 꼬는 듯한, 그러다 멍해져버리는 듯한, 그런 식…이라고” (p.15)
드디어 산 기슭의 작은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신사로 가는 입구에 작은 현수교가 놓여 있다. 그런데 요오꼬는 이 작은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고. 자꾸 아래쪽에서 뭔가가 발목을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S는 화가 났다. 여태 요오꼬 때문에 하산 시간이 늦어져 이제 도쿄로 가는 기차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건만 작은 현수교를 건널 수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으니.
“이런 다리를 혼자 건널 수 없다면 이제 두 번 다시 산에 올 수 없어요.”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그건 고사하고 자신감을 잃어 길거리도 만족스럽게 걸을 수 없어질 거예요.”
이 대목에서 독자는 얼른 이들의 대화 세 도막을 메모한다. 작은 일이 아닐 듯 싶다. 복선 아닐까?
가까스로 둘은 기차를 타는데 성공했고, 기차에 타자마자 요오꼬는 잠에 빠져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이때까지 여자의 이름이 요오꼬인지, 남자가 S인지 서로 모른 채.
석달 후. 다음 해 1월. 장소는 도쿄의 전차역 플랫폼.
전차를 타고 가던 요오꼬의 눈에 건너편 플랫폼에 서서 반대방향 전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S가 보인다. 득달같이 전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창문이 뚫린 2층 통행교를 건너 S를 향해 뛰어가는 요오꼬. 마침 도착한 전차에 탑승하려는 S 앞에 도착해 그의 오른팔 팔꿈치를 가볍게 쥐었다. 하얀 코트를 입은 소녀가 S에게 말한다. 언제였죠? 제가 대단히 신세를 졌습니다.
일본 사람한테 신세를 졌다는 건 우리 사정하고 좀 다르다. 얘네들은 남에게 신세 또는 폐를 끼치는 걸 지극한 실례라고 생각해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도 갚으려 한다. 천 년에 이르는 무신정권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간 S는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곧바로 다시 넓게 퍼져버릴 듯한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여자를 만난 일이, 마치 빗속에서 고양이를 안았다가 그냥 두고 온 듯한 기분과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어쨌든 산행 이후에 계곡에서 있던 일이 자주 생각나고, 이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 S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둘은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앉는다. S는 앞에 앉은 여자가 그때 거기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잠깐 짐작해본다. 당시 창백하고 칙칙한 정기를 발산해 희미한 불쾌감을 주던 여자. S는 자살자에 대하여 나름대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노인도, 미성년자에도 속하지 않는 창백함에 휩싸인 인물일 것이라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요오꼬가 말한다. 당시에 고소공포증이 있었다가 현수교를 건넌 이후에 없어졌다고. K 봉우리 정상까지 오른 여자가 고소공포증이라니. 요오꼬는 높은 장소가 아니라 계곡 합수골까지 내려와서야 고소공포증을 느꼈단다. 이제 내가 메모한 것 가운데 남은 건 과연 요오꼬가 길거리를 만족스럽게 걸을 수 있느냐, 하는 것. 잠깐 만나 대화를 하고 헤어지는 순간, 요오꼬가 묻는다.
다음 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날까요?
이렇게 둘은 다시 만나고, 또다시 만나 연인이 된다. 히키코모리 전력이 있는 S와 틀림없이 신경정신과 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요오꼬. 이들의 사랑과 질병은 어떻게 발전하고 전개될지, 그건 직접 확인해보시라. 나는 흥미롭고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호 불호가 갈릴 작품일 듯해서 당신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머뭇거려진다. <아내와의 칩거>도 소품인 동시에 명품이다. 후루이 요시키치의 다른 작품은 왜 번역해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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