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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사람이 웬 피라미드?
알바니아보다 험난한 역사를 지닌 나라도 별로 없을 듯하다. 오랜 세월 주변 강대국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돌아가며 식민 지배도 받은 끝에 겨우 독립을 했건만 소비에트의 연방국으로 전락해 한 번도 역사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나라. 기꺼이 독립을 했지만 오랜 세월 독재자의 압제를 받아 나라는 찌그러져버렸다.
알바니아는 오랜 세월 공산주의자 엔베르 호자가 통치하다가 1985년에 죽었다. 차라리 그가 5년만 더 살았으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때 알바니아는 여전히 소비에트의 위성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독재자 호자가 죽어 거창한 규모의 국장을 치루었지만 독재를 종식하지는 못했던 거다. 호자가 죽고 3년 후에 그의 건축가 딸이 수도 티라나에 이집트의 피라미드 또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조형물을 본따 ‘호자 박물관’을 흉물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완전히 붕괴되기까지 가장 완고하고 억압적으로 국민을 통치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미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을 1990년에 이스마일 카다레가 굳이 파리로 망명을 선택해야 했을 정도로.
가뜩이나 공산주의,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빙자한 경찰국가 또는 독재적 국체를 혐오했던 카다레는 파리에 자리를 잡고 자신이 떠나온 알바니아의 독재 정권에 관해 뭔가를 말하고 싶었는데 이때 눈을 돌린 것이 호자 박물과의 흉물스러운 조형물의 원형. 이집트의 피라미드였다. 소설가 카다레의 머리 속에서 나름대로 피라미드와 전체주의를 연결하기 시작했던 것. 그리하여 소설 <피라미드>를 쓰고, 정말로 시간적 무대를 B.C 26세기로 하는 작품을 쓰기로 했지만 이 작품은 절대로 역사소설이 아니라 무대를 과거로 한 현대 소설로 보는 게 옳겠다.
가장 큰 피라미드를 건설한 쿠푸왕. 그가 새 파라오로 즉위하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젊고 현명한 파라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잠깐 궁리해봐도 자기가 피라미드를 세워도 이집트한테 조금의 보탬이 될 거 같지 않다. 사각뿔 모양의 거대한 무덤이 도대체 이집트의 왕권과 백성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 오히려 건설을 위하여 거대한 국부가 쓰일 터인데 그것으로 백성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지 않는가, 이건 계산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근데 문제는, 새 파라오가 즉위하자마자 자기가 죽으면 묻힐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 안 하면 안 되는, 순식간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라고 습관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대신들이었다. 아버지 파라오 시절부터 늘 아부나 하던 간신 나부랭이들. 저것들을 싹 나일강의 악어밥으로 만들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할까? 그럴까, 말까?
그리하여 하루는 파라오 쿠푸가 왕실 점성가, 최측근 대신 몇 명, 늙은 고문관, 대제사장이자 건축 총책임자 등을 왕좌 아래에 집합시켜놓고 창 밖으로 까마득하게 사막 너머로 피라미드를 보며 말한다.
“대감들, 꼭 피라미드를 만들어야 되겠소? 내가 파라오가 되면서 이미 신격을 얻었거늘.”
속으로는 이런 말도 보탰을 거다. 반대만 해봐라, 즉각 죽은 목숨일 터이니.
늙은 대신들 속에는 불여우가 쉰 마리씩 들어 있다. 파라오가 이 말을 꺼내기 전에 몇 주 전 이미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신전 두 곳을 폐쇄했고, 희생제의를 금하는 법령까지 반포해버린 바 있기 때문이다. 새 파라오는 틀림없이 총명하고 사리판단에 능한 청년이구나.
이들은 서둘렀다. 대신 두 명은 왕태후 켄트가우스한테 즉각 면담을 신청하고, 한 명은 색주가로 납시어 꽐라가 되도록 술을 퍼마셨으며, 노신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몇 명은 고문서를 보관하는 지하실에 내려가 애꾸눈의 늙은 서기 아푸르를 만났다. 피라미드를 짓지 않는다면 자기들 목숨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 평생 보필한 이집트의 명운마저 보장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러니까 기원전 26세기의 이집트를 지금의 이집트와 같이 생각하면 오산이다. 약 5천년 동안 사하라 사막은 남쪽으로도 커졌지만 북진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로마 시대. 당시 로마에는 백만 이상의 인구가 모여들어 농업생산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오직 건설과 음모, 암살, 검투, 그리고 군비확장으로 날 새는 줄 몰랐다. 근데 이들을 어떤 수로 먹여 살렸을까? 내가 발견한 해답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 속에 있다. 로마 시민들이 먹는 밀은 거의 전부 이집트 평야에서 수입했다. 수많은 군벌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군단장은 게르만이나 갈리아 또는 저 동방의 시리아 너머에 있었을 지 몰라도 가장 세력이 막강한 군단장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집트에 주둔했다. 이들이 폭풍이나 기근을 핑계로 로마로 밀을 보내주지 않으면 수백만 로마 시민들이 쫄쫄 굶다가 폭동을 일으키고는 했으니.
그러니까 기원전 26세기의 이집트는 주변 경쟁 국가, 경쟁 국가라기 하기도 어색하니 눈치 국가로 하자, 이런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가 갈수록 이집트의 부는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내력도 있을 터. 있기는 있지만 어디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니 현명한 늙은 대신들은 그걸 찾으러 묵은 파피루스 먼지가 가득한 지하 자료실로 내려가서 외눈박이 늙은 서기에게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이제 새삼스레 목소리를 가다듬어 부탁을 해야 했던 거였다.
파피루스가 종이 같지 않아 군데군데 훼손된 곳이 많아 속 시원하게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활한 대신들도 한 시절엔 총명한 두뇌를 가진 적이 있어서 드디어 피라미드의 본질과 존재이유 같은 근본 이념을 그나마 밝힐 수 있었다. 이 늙은 여우들이 정말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일까? 천만의 말씀. 오직 머리속에서만 존재했을 뿐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서, 파피루스에 적혀 있는 것을 새로이 발견했다고 주장해야만 하는 무거운 것도 있는 법이다.
이틀 뒤에 대제사장과 대신들이 파라오 쿠푸를 알현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직진했다. 파라오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존이시어. 피라미드 건설의 의도는 무덤이나 죽음과 관계가 없나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숨기지 못하는 쿠푸. 하지만 대신들은 계속한다.
피라미드를 건설하자는 것은 한 시절 위기의 시대를 맞았을 때 나왔다. 즉 파라오의 힘이 약화된 시기에 시작한 것이 피라미드 건설이었다는 것. 위기의 원인은 기근이나 늦은 나일강 범람 또는 흑사병 창궐이 아니라 나라가 너무 풍요로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지금 보고하고 있는 이 원인을 밝혀낸 사관들은 전부 사형 또는 유형에 처해졌지만 자신들의 목숨은 보전해주기 바라면서 말한다고 주장하는 노신들. 이들이 계속 말한다.
도가 넘치게 풍요로워진 이집트에서 사람들은 독립심과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파라오의 권위에 더 반항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앞서 경험했던 어떤 위기보다 심각해서 왕의 직접 수하에 있던 점성술사와 마술사인 소베코테프는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을 떨쳐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이때 하렘의 환관 문지기 레네페레프가 나타나 말한다.
이집트가 누리던 부의 일부를 고갈시킬 수단. 상상을 초월하는 과업을 시도하자고. 메소포타미아가 말도 안 되는 운하를 건설하느라 국부의 거의 전부를 쏟아 부어 미미한 이익만 내고 있는 것에 착안한 거였다. 하렘 문지기가 말하기를 일이 커질수록 백성의 체력소모가 심해지고 이에 따라 정신이 피폐되어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할 수 있는, 철저히 쓸모 없는 일이지만, 국체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 게다가 언젠가는 마무리되지만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일이며, 결과물이 눈에 확실히 보일 수 있는 것. 그건 이집트의 제일 가는 건축물이어야 하며, 신전도 왕궁도 아닌 무덤이어야 한다고. 파라오가 즉위하면 동시에 피라미드 건설을 시작한다. 완공과 더불어 기념비적 건축물은 백성 모두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로 기능하다가 파라오가 죽으면 그 속에 안치하고, 안치와 동시에 새로이 파라오가 즉위하면 또다시 새로운 피라미드를 건설하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다.
즉 왕권, 왕의 독재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국가의 부와 힘을 낭비하며, 건설 중에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하고 마음껏 고통을 줄 수 있는 장치로서의 피라미드. 이스마일 카다레는 현재의 알바니아를 말하고 있는 거였다. 그리하여 이 소설 <피라미드>는 제1장만 가지고 충분하다. 이하 나머지 장은 모두 디테일에 관련되었을 뿐. 재미있는 비유, 풍자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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