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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코뿔소
  • 외젠 이오네스코
  • 10,800원 (10%600)
  • 2023-08-15
  • : 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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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극작가 이오네스코의 개인사를 조금 아는 게 좋다. 1909년 루마니아에서 루마니아인 아빠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서 나 곧 파리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여겼으나 사춘기 무렵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쿠레슈티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다. 1909년생이면 애매하다. 1차 세계대전은 아마 파리 소년 시절에 이오네스코를 그저 스쳐 지나갔을 터이지만, 히틀러와 무솔리니 등의 영향을 받은 1930년대의 루마니아에서 20대 혈기방장한 청년 이오네스코가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오네스코는 그러나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하고, 친구들 거의 모두 역시 다르지 않아 불화를 겪다가 다시 파리로 가버린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했던 조금 알아두면 좋은 이오네스코의 개인사는 그의 학력이나 연애경험 같은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에 출생한 지식인이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부당한 권력인 파시즘에 동조해 가는 것을 목도한 일을 말하는 거였다.

  애초에 파시스트 독재는 민주주의의 기치를 휘날리며 시작한다. 다분히 민족주의적 주장으로 민족 자긍심을 한껏 올려놓는 선전 선동을 통해 권력을 잡고, 이때부터 앞뒤 가리지 않는 애국주의와 비타협적 선동으로 자기 진영을 무한정으로 확보한다. 일종의 집단최면을 시전하여 투표율 90퍼센트 이상, 찬성률 80퍼센트 이상의 투표 결과로 공고한 권력을 쥔 다음, 국가의 모든 정책을 자신 또는 자신을 둘러싼 일단의 권력집단 마음대로 한다.

  이때 좀 골 때리는 일도 벌어진다. 옆에서 보면, 권력이 말도 되지 않는 주장과 선동을 하면, 평소라면 반대를 하거나 적어도 비웃어버리고 말 시민들도, 파시즘적 주장에 거부감 없이 동조하고, 어느새 그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거다. 이런 현상은 정치 성향이 높은 국가에서 한 정당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른바 압도적 지지당이 될 경우에는 여전히 발생한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론이지. “나는 사람한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 마디로 대통령이 된 인간은 자기한테 충성하는 사람만 골라 쓰다 골로 갔고,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가장 큰 핍박을 받은 정당의 지도부는 박과 전하고 거의 다르지 않은 입법권력을 사용하고 있다. 웃기지? 브레히트의 말대로 “파시스트들의 가장 나쁜 유산은 그들에게 저항했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파시즘의 씨앗을 심어놓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고 배운 게 그런 거밖에 없어서 그러니, 그이들도 알고 보면 불쌍한 것들이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도 이런 현상을 말한다.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한 거친 물결이 도시에 흐르기 시작한다. 진짜 물 H2O가 아니라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거대하고 폭력적일 만큼 거친 흐름이라고 여기면 딱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흐름이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라는 것. 거의 누구나 안다. 옳은 방향의 흐름이 아니고, 건전하지도 않고, 여차하면 절망의 구렁텅이 또는 세계사적 폭망의 시절로 질주하게 될 것임을. 당연하지. 지금 이오네스코가 말하는 거칠고 폭력적인 흐름이 파시스트들의 창궐을 뜻하니까.

  이들 가운데 특히 히틀러는 독일국민의 단결을 위하여 엉뚱하게 그들과 어깨를 걸고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기도 했던 유대인을 악의 노예로 콕 집어 극한의 탄압을 시도했다. 조금 있으면 수정의 밤이 있을 터이고 순정 게르만 예술만을 인정하기 위하여 온갖 예술품과 책을 베벨 광장에 쌓아놓고 불태워 버릴 것이며, 이에 절망한 이오네스코는 같은 해인 1933년에 나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루마니아를 떠나 파리행 기차에 올랐다.

  처음부터 나치 파시즘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저 정신이상적 행위를 비판하고, 아니면 적어도 뜻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건만, 이들의 거친 선전과 선동에 시민들은 하나 둘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파시즘에 동조하는 속도가 더 가팔라지고 어느 새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 파시스트 사무실을 찾아가 같은 일원이 되기를 자원하는 지경에 이른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혁명기를 거친 혁명가들의 놀라운 선동 방식을 그대로 배우고 발전시킨 파시스트들의 선동에 현혹되지 않는 시민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소수로 남은 외젠 이오네스코는 파시즘에 가담한 사람들을, 사람에서 코뿔소로 변신metamorphosen 하는 것으로 은유했다.


  1막은 지방의 작은 도시, 작은 광장이다. 카페와 가게가 있고 손님들이 모여 담소도 하고, 차도 마시고, 야채를 저쪽 가게에서 샀는데 될 수 있으면 우리 가게에서 사달라고 하는 등 정상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이때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 또는 막 뒤에서 큰 짐승의 짓는 소리가 부르르르 들리기도 하고 파시즘의 폭주를 나타내기 위하여 많고 많은 짐승 가운데 무거운 코뿔소를 골라 무거운 짐승이 뛰어가는 둔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군중들은 코뿔소가 한 마리였는지 두 마리였는지를 놓고 말다툼을 하기도 하며, 코에 뿔이 하나 있는 것은 아시아, 둘이 있는 것이 아프리카 코뿔소라는 등, 거꾸로 하나가 아프리카, 둘이 아시아 코뿔소라는 등 말다툼을 벌인다. 즉 이들에게 코뿔소는 북쪽 유럽지역에서 거의 보지 못한 동물이다. 당연히 익숙하지도 않은 덩치 큰 야수. 누구나 공감한다. 근데 어떻게 하다가 코뿔소가 거리에서 돌아다니게 되었을까?

  2막에서는 코뿔소가 늘어난다. 1장의 무대는 주인공 베랑제가 다니는 회사.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그냥 보통의 회사인데 당연히 바쁘다. 아마도 출판 관계 회사인 것처럼 보인다. 근데 평소 성실하게 근무하던 뵈프 씨가 갑자기 몸이 아파 출근을 하지 못하겠다고 뵈프 씨의 아내가 근무시간 조금 넘어 찾아왔다. 뵈프 씨가 코뿔소로 변신해버린 거다. 세상에. 그렇게 마음 여리고 성실하고 근면했던 뵈프 씨가 코뿔소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이때는 벌써 창밖에 내다보면 코뿔소가 떼로 질주해다닌다.

  2막 2장은 베랑제의 절친 장의 방. 1막에서 코뿔소가 아시아 산이니, 아프리카 산이니 가지고 말싸움을 해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베랑제가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기 위해 방문한 건데, 장은 침대에서 베랑제를 등지고 벽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 근데 정상이 아니다. 부르르르… 콧김을 자주 내뿜는다. 정의로운 남자 장이, 한 때 정의롭기도 했던 남자였지만 이제는 코뿔소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래서 베랑제는 온전한 양식과 정의감을 지니고 사는 장이라는 남자가 코뿔소로 변신하는 과정을 전부 목격한다.

  3막은 베랑제의 방. 놀랍게도 장의 방과 비슷하게 생겼다. 베랑제의 건강이 좀 언짢다. 이곳에 먼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뒤다르 씨가 베랑제한테 문병 겸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좀 하자고 찾아온 거다.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이 벌써 코뿔소로 변신했단다. 조금 있다가 같은 직장의 여직원이자 도시에 나타난 첫 코뿔소를 베랑제와 함께 목격한 데이지가 음식을 싸들고 베랑제의 방에 들어왔다. 아직 연인은 아니다. 이제 무대에 남은 인물은 오직 세 명. 관객은 파시스트 국가 안에서 여전히 양식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라고 연상할 수 있다. 이들의 변신 여부는 각자 읽어서 알아 내시면 좋겠다.


  작품은 재미있다. 근데 희곡은 눈으로 읽고, 머리로 극장 무대를 연상하는 장르.

  2막 2장 장의 방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3막, 장의 방과 거의 비슷한 무대에 역시 비슷한 침대에 계속 누워 있는 베랑제. 두 명의 등장인물이 더해지지만 이들의 동선이 거의 없다. 방이 좁아서 그런가? 넓은 방이라도 마찬가지겠지. 이걸 어떻게 생동감있게 연출해야 할까?

  나는 여기서 콱 막혔다. 작품 자체의 재미와 은유와 언제나 재미있는 변신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대를 연출한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했을까, 이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는 거. 책 한 권 까다롭게 읽는다고? 근데 이게 희곡 읽는 진짜 재미. 휴대폰 앱 “북적북적”에 별점 4.5 눌렀다. 내 연출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지 이오네스코의 작품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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