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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벨칸토
  • 앤 패칫
  • 13,050원 (10%720)
  • 2019-01-10
  • :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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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칸토>를 읽기 위하여 1963년 12월에 훗날 LA 경찰서장을 지낼 경찰 간부 아버지와 간호사였다가 소설가도 될 어머니 사이의 두 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앤 패칫의 개인사, 경력, 가방끈 기타 등등을 알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성장과정 중에 경험했던 일은 물론 이 책의 어디선가 뾰족하게 드러나기는 하겠지. 패칫은 1996년 12월에 일왕 생일 축하연이 진행중이던 주 페루 일본 대사관애 테러단체인 투팍아마루 게릴라 14명이 난입해 우리나라의 이원형 대사를 비롯해 7백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면서 시작한 무려 126일 간의 인질극이 있었는데,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전면 무시하고 1997년 4월 22일, 특공대원 150여 명을 투입하여 최종 인질 71명을 구출하고 인질 한 명과 열네 명의 게릴라 모두 사살하면서 종결한 사건을 작품의 모델로 선택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에서 출생한 일본계 페루 국민이다. 당시 대통령 투표에서 최종투표까지 후지모리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가 결국 영광의 준우승을 차지한 인물이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였다. 후지모리는 대통령 직을 괜찮게 수행하다가, 아마도 일본 출신이라는 배경으로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페루에 산업시설을 지을 수 있으면 코카나무와 양귀비의 재배 인구가 대거 도시로 유입되어 공장에 들어갈 수 있으니, 페루 경제를 이끌어 가던 동력을 코카인과 헤로인에서 공산품으로 이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었으리라. 하여간 어지러운 페루 현대사에서 후지모리가 가장 빛나던 시기가 바로 투팍아마루 게릴라의 일본대사관 점거 사건이었다. 후지모리는 자신이 직접 흰 와이셔츠 위에 검정 방탄복을 입고 대사관 너머에서 소총을 들고 지휘하는 흉내를 기가 막히게 냄으로써 잠시동안 국민들의 지지율을 팍 끌어올리기도 했다.


  앤 패칫이 이 사건의 부분을 가져와 소설로 쓰기로 했다. 그냥 그대로 복사를 하면 제대로 된 소설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새롭게 만든 등장인물이 벨칸토와 베르디, 푸치니, 드보르자크, 오펜바흐와 비제의 작품 공연을 위하여 세계만방에 연주여행을 다니는 당대 최고의 미국산 소프라노 록산 코스를 캐스팅했다.

  장소는 일본 대사관이 아니라 부통령 관저. 일왕 생일 파티가 아니고 일본 최대 전자회사인 난세이사의 호소카와 가쓰미 회장의 쉰세번째 생일을 맞아 이 나라의 일본계 마스다 대통령이 허락을 해 부통령 관저에서 쇼타임을 벌이고 있다. 한 나라가 일본의 전자회사의 회장 생일 파티를 해준다고? 파티의 목적은 앞에 써 놓은 것과 같다. 혹시 일본 자본으로 공장을 짓는다면… 하는 기대. 호소카와 회장이 미쳤나? 아무런 인프라도 되어 있지 않은 밀림 속에 공장을 지어 놓으면, 수시로 쿠데타가 벌어져 정정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밀림 속의 공산주의 무장 게릴라들 캠프에서 언제 바추카포가 날아들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동네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 직원을 뽑아 놓으면 십중팔구 직원 안에 마약 카르텔이나 공산 게릴라 요원들이 잠입해 공장을 점거할 것이고, 어떤 형태로도 끝내 공장을 거덜내고 말 터인데, 아무리 돈이 많은 회사라고 해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럼? 자기 생일 파티에 이 나라 정부가 거액의 돈을 써서 현 시대의 최고라고 불리는 소프라노를 초청해 생일파티 석상에서 오페라 아리아 여섯 곡을 노래할 것이고, 이 가운데 한 곡은 호소카와 회장이 신청한 곡을 노래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호소카와 회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열한 번째 생일이었던 1954년 10월 22일,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이 살만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정신적 황량함이 가시지 않았던 때로, 이런 집단 각성은 실제 나이보다 사람들을 각성시켜 누구나 좀 일찍 철이 드는 법인데, 이때 아버지 호소카와 씨가 아들 가쓰미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도쿄 메트로폴리탄 페스티벌 홀에서 베르디의 열여섯번째 작품이자 중기의 황금시대를 여는 명작 <리골레토>를 함께 관람한다. 원작 <환락의 왕>을 쓴 빅토르 위고가 훗날 이 공연을 보던 중 3막의 4중창을 들고, 환상적인 하나의, 같은 멜로디로 네 명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초 연극적 표현에 턱이 쑥 빠졌다는 일화가 있는 작품이다. 훗날 호소카와 회장이 되는 가쓰미 소년은 공연에 더없이 매료되어, 이후 누구보다 엄격하게, 열심히 사업을 넓혀가는 와중에도 “진정한 삶이란 결국 음악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페라 공연에 가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세계적 대기업의 회장이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라서. 그래 주로 CD를 통해 오페라를 들었는데 특히 슈바르츠코프와 서덜랜드의 음반이라면 보이는 족족 다 모았다. 칼라스는 워낙 특별하니까 별개로 놓고. 이제 회사가 무지하게 커지고 자리를 제대로 잡아, 이왕 출장을 갈 바에 근처에 근사한 오페라 홀이 있고, 마음에 드는 공연이 있는 곳에 회의장소를 정해, 그곳에서 공연을 관람하고는 했다. 일본인 특유의 드러내지 않는 마음으로 R석 말고 S석 정도에서. 이러니 일년에 한 서너 편의 오페라를 볼 수 있었을 듯.

  아빠의 생일 선물로 다 큰 딸이 준 것이 바로 록산 코스의 음반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프라노. 회장이 들어보니, 물건이고, 천재라고 판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록산의 공연도 출장 코스에 끼어 한 일곱 번 정도 보았다. 아무리 회장이라도 공연만 보고 나왔다. 인사도 하지 않고. 추앙하는 마음만 속으로 전했다. 근데 라틴아메리카의 낯선 나라에서 자기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록산 코스까지 데려와 축가를 부르게 한다니, 비록 거금을 투자하라는 의미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참석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가기로 했다. 이 나라에 투자할 생각은 정말 1도 없지만, 일단 약속을 했다가 철회하는 방법쯤이야 아랫것들이 수백가지 알고 있을 터. 걱정할 필요 없으리라.


  대기업 회장이 떴으니 회사의 프로젝트개발부장 야마모토 아키라, (나중에 큰 역할을 하는)부사장 가토 데쓰야 등 임직원 몇 명, 일본 대사, 스미토모은행 부행장 오가와 사토시, 일본은행 부행장 아오이 요시키를 비롯해 이 나라에 대사급으로 와 있는 거의 모든 외교관들, 그리고 황망하게도 일본계 이민자 출신의 마스다 대통령도 직접 참석할 예정이었다. 다만 마스다 대통령은 갑작스러운 다른 행사 때문에, 사실은 매주 화요일의 중요한 TV 드라마가 오늘 클라이맥스를 방영할 예정이라서 그걸 보느라고 행상에 불참했다. 호소카와 회장은 전혀 섭섭하지 않다. 오히려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을 속셈이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했을 뿐.

  소프라노 록산 코스는 노래하기 전에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록산이 아리아를 다섯 곡 부르고, 마지막 곡으로 호소카와 회장의 신청곡으로 록산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 드로브자크의 <루살카>에서 루살카의 아리아 <달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첫곡 벨리니부터 차근차근 더없이 아름답게 노래하기 시작하는 록산 코스.


  한편 이 시간, 공산주의 게릴라 라 파밀리아 데 마르틴 수아레스단은 직접 부통령 관저에 침입해 입수한 설계도를 연구한 후 송풍구를 통해 소년병을 투입시켜 기다리고 있다가, 가수가 여섯 곡을 부른다고 했으니 그때를 맞추어 모든 조명을 끊어버릴 계획이었다. 세 명의 장군과 14세에서 20세 정도로 보이는 병사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중소형 부대. 이들은 전혀 몰랐다. 여섯 곡을 노래하기로 했으면 딱 여섯 곡만 노래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 가운데 장군이라고 불리는 사람 세 명은 나름대로 현지인 또는 산악지역의 원주민 가운데 괜찮은 교육을 받은 지도층 출신이지만 오페라는 그만두고 음악공연 한 번 보지 못해, 공연이 끝나도 의례적으로 앙콜곡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달의 노래>가 딱 끝나자마자 볼룸의 모든 조명이 암전 되었으며, 이 짧은 완전 어둠의 순간, 관객들은 거구의 스웨덴인 반주자가 록산 코스를 안고 키스를 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심지어 테이블 위의 촛불까지 모두 꺼졌는데도 누구 하나, 전기가 나간 건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맞춰 촛불까지 꺼졌는지에 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이 한 것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박수치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휙휙 날리며 앙코르, 앙코르를 연호할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준비한 앙코르 곡을 노래할께요, 불 좀 켜주세요.

  록신 코스의 아름답고, 귀엽고, 그러면서도 고귀한 품격이 깃든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때쯤 처음으로 프랑스 대사 시몽 티보는 주방으로 향하는 문의 아래 틈에서 전기 불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무엇인가 불안한 기색을 감지해, 아내 에디트의 팔을 가볍게 쥐고 그쪽으로, 일종의 도피를 시작한다.

  그러나 소용없다. 갑자기 천장을 향해 들어올린 총구에서 천둥처럼 들려오는 총소리 세 발. 세 명의 장군 가운데 한 명이 외친다. 마스다 대통령은 나와! 이들은 대통령만 데리고 가능한 최소의 시간 안에 밀림으로 복귀할 작정이었다.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정부를 전복시킨 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낭만적 공산주의 게릴라들. 이 가난한 나라와 대통령은 시청률 50%가 넘는 연속극, 특히 연속극 주인공 마리아가 다 죽다가 살려냈다는 걸, 지금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후 몇 달 동안 부통령 관저에서 벌어지는 인질극.

  여기까지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물론 이후에도 재미있지만, 작품의 무대가 부통령 관저와 마당에 한정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재미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느낌. 그래도 이게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백대 저작에 포함된 책이다. 순위가 98번째가 되어 좀 그렇지만. 아, 거기 낀 게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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