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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너의 단편집은 한 두 권 읽었는데, 독후감을 써놓지 않은 모양이다. 쓰긴 썼는데 술 한 잔 마시고 들여다보니 마음에 차지 않아 싹 지워 버렸든지. 뭐 그렇게 사는 거지. 찌질한 독후감 하나 써놓고도 그게 부끄러워 나중에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세상에 그리도 많은 책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책을 내는 순간에는 자기가 쓴 것이 특별하고, 기발하고, 명문장으로만 채운 거 같아서 그걸 책이라는 하드웨어까지 갖추어 시장에 내보낸다. 그러면 어깨가 으쓱거리고, 친구 모임에 가면 생맥주 한 조끼 크게 한 모금 하면서, 이번에 내가 책을 냈는데 조금 부끄럽군, 하며 가오도 잡을 수 있겠지.
문제는 그후에 온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써 놓은 것이 조금씩, 처음엔 아주 조금씩, 그러다가 가속도가 붙어 점점 화끈거린다 싶고, 그것 참 못난 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건 내 경우이겠지만, 이러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 내가 쓴 독후감을 지워버린다. 그걸 읽은 분들의 댓글도 달리고 몇 분은 공감 표시도 누르셨지만 아마도 여태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라 믿으면서. 내가 사용하는 SNS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근데 책으로 만들어 소량이지만 돈을 주고 사서 읽은 독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책에 실린 활자는 죽어도 지워지지 않으니까. 끝까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하나? 아니면 정말로 끝까지 자기가 쓴 소위 ‘작품’이 명작이라고 오해하면서 죽어야 해?
윌리엄 포크너를 읽으며, 그의 작품을 읽고 쓴 독후감을 언제 한 번 삭제해버린 기억을 떠올렸으며, 글을 쓰는 일의 엄정함이랄까 줄타기랄까를 생각하게 됐고, 이미 쓴 글의 부끄러움까지 생각이 연장되어, 만일 책을 낸다면, 자기가 쓴 결과물이 윌리엄 포크너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라고 자부심을 가질 정도라면 책을 내도 괜찮겠다, 즉, 카프카나 포크너, 발자크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될 꿈을 꾸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몽상까지 했다.
실제로 1950년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세상의 거의 모든 소설가에게 강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들 가운데 포크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근데 그의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가 만만하겠어? 지금 이 책에 관해 한 마디도 못하면서 버벅거리고 있는 중이다.
소설집 《헛간, 불태우다》에는 다섯 단편소설과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이 들어 있다.
다섯 작품 모두 포크너의 영토인 요크나파토파 커미티, 제퍼슨 시 인근이 무대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역주의 작가라서 자신의 문학적 영토 요크나파토파 안에 마치 구약성서의 여러 도시들이 들어 있거나 구약에 쓰인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게 결국 사랑이나 연민 또는 희생 등과 연결이 된다는 걸, 단 한 권의 포크너를 읽었을 뿐인 독자라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편소설집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단편 속에 그가 쓴 장편소설의 등장인물이 다시 등장해 조연을 맡는다. 같은 영토 거주민이라서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포크너가 기억하거나 들은 이야기들 속의 기간이 대강 미국내전과 1차 세계대전, 그리고 2차 세계대전까지. 《헛간, 불태우다》에서는 내전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자들과, 참전군인이 해야 했던 남성의 일을 한 강한 여성, 그리고 약간명의 흑인이 등장한다. 법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법적으로 차별을 당했던 흑인. 여성이 함부로 오해해 흑인의 범죄를 고발하면, 진짜 그 흑인이 범죄를 저질렀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백인 여성이 한 말을 유일한 진실로 확정하고, 아무런 법적 판결 단계를 생략한 채 주민들에 의한 즉결 처분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했던 시절이다. 이 즉결처분이 가능했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날은 9월이건만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먼지만 횡행하는 제퍼슨 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불쾌지수 수치에 짓눌리는 사람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귀향 군인들. 검둥이 하나 정도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남부연합 출신 내전 참전자들. 즉결처분에 반대하지만 이들을 결국 말리지 못한 한 명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앞에 실린 <가뭄이 든 9월>.
젊은 시절 말 중개일을 해, 말을 관리하거나, 다른 소유주가 있는 말을 훔쳐 자기 말인 양 꾸며 팔아버리는 일에 통달한 아버지도 등장한다. 이 단편의 제목이 표제 <헛간, 불태우다>.
소작인 애브너 스놉스씨의 돼지가 해리스 씨의 옥수수 밭에 들어갔다. 돼지가 밭에 들어가면 상당한 피해를 끼친다. 해리스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이웃 스놉스에게 돼지를 돌려주었다. 근데 그게 다시 밭에 들어왔고, 이번에는 돼지와 함께 돼지 움막을 지으라고 철조망까지 넉넉하게 보태주었다. 그럼에도 돼지가 다시 해리스 씨의 옥수수 밭을 침공해버렸다. 이번에는 화가 난 해리스 씨가 돼지를 자기 돼지 우리에 감금하고 직접 스놉스 씨의 오두막에 찾아왔다. 그랬더니 돼지 움막을 만들 때 쓰라고 보내준 철조망이 마당 구석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걸 보았다. 더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네 돼지 우리 사용료 1달러를 보내면 애브너의 돼지를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이날 저녁에 해리스 씨네 집에 처음 보는 검둥이가 1달러를 가지고 와서 돼지를 받고 돌아갔다.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장작이랑 건초는 불에 잘 탄다고 전하라고 하더군요.”
장작과 건초, 소와 말, 양 같은 가축과 농기구 같은 모든 건 큰 목재 건물에 넣어 두는데 그걸 헛간이라 부른다. 대륙 농가의 헛간을 우리나라 농가의 작은 헛간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헛간에 불이 났다. 바로 그날 밤에. 해리스 씨가 헐레벌떡, 어떻게 해서 가축들은 모두 대피시켜 목숨을 건졌지만 나머지는 모두, 홀랑 타버렸다. 재만 남았다. 아무리 마음 좋은 해리스 씨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근데 애브너 스놉스는 백인이다. 마음 같았으면 주민들 모아 죽여버리고 싶었겠지만, 치안판사에게 고발을 해 제퍼슨 시에서 제일 큰 가게에 임시 재판장을 꾸려 애브너의 막내 아들 커널 사토리스이 증언했어도 판사와 해리스 씨는 아무런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뒤 정황으로 보아 애브너와 그의 맏아들이 불을 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증거도 없으며, 불을 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뭐라 할 말도 없다. 그리하여 판결하기를:
“스놉스, 당신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충고 한 마디 해야겠소. 이 마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
애브너 스놉스는 대답한다. “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사는 마을엔 살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뒤로 돌아 30년 전에 훔친 말을 타고 가다가 남부 연방 헌병대 초병이 쏜 총에 발 뒤꿈치를 맞은 부상 후유증으로 뻣뻣한 걸음을 걸으며 임시법정 복도를 빠져 나갔다.
임시법정 앞, 그러니까 가게 앞 광장 주변에 세워둔 마차 속에는 엄마와 이모, 두 명의 뚱뚱한 누나가 타고 있었고,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 몇몇 소년들은 스놉스의 막내아들 사토리스한테 돌을 던지며 “헛간에 불을 지른 놈”이라고 욕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 애브너는 아들을 마차에 태우고 그길로 제퍼슨 시를 떠난다. 이미 이런 판결이 날 줄 알고 얼마 되지 않는 살림살이를 다 싣고 떠날 준비를 다 해둔 터였다. 이렇게 해서 단편의 앞부분이 끝난다.
뒷부분은 2~3일 후에 도착한 요크나파토파의 다른 시골지역.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저택. 지주댁인 드스페인 소령을 찾아오기 전에 작은 판자집에 이미 식구를 다 내려놓고 화자인 막내 사토리스만 데리고 지주를 찾아간 길. 대문 앞에 말이 방금 싸 놓은 똥무더기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걸 피하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간다. 저택의 현관까지 가서 문을 열어준 흑인을 무시하고 장화에 묻은 말똥도 닦지 않은 채 그대로 응접실까지 진출하는 애브너. 2층에서 드스페인 부인이 내려와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양탄자를 말똥 밟은 발로 짓이기고 있는 애브너를 보고 경악,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옆에 섰던 흑인 하인은 이 사태가 결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창백한 얼굴로 변명하기에 급급하며 애브너를 집 밖으로 몰아낸다.
이튿날, 드스페인 소령이 직접 양탄자를 말아 말에 싣고 애브너를 찾아온다. 이어서, 게으른 누나 두 명이 세탁한 양탄자를 다시 돌려주고,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소령은 100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하는데, 지금은 돈이 없을 터이니 가을 탈곡하고나서 옥수수 550kg으로 갚으라 한다.
그래서 애브너 스놉스 씨는 또 한 번 헛간에 불을 지를 수 있을까? 기회가 오긴 온 것 같은데. 여러 정황을 보면 이 가족의 가장 애브너 스놉스 씨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사이코패스 쪽에 조금 더 가깝지만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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