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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홉 편을 실은 소설집. 읽는데 딱 일주일 걸렸다. 지난 주 화요일에 빌려 이번 주 월요일에 다 읽었으니. 아, 오해하지 마시라. 재미있게 잘 읽었다. 내가 언짢아 하는 요즘 작가들의 비슷비슷한 작품들과 다르게 요사스럽게 매혹적이고, 맹랑하고, 발칙하기도 하고, 우울해도 귀엽게 우울하다.
이 책이 2015년에 나왔으니 김엄지가 스물일곱 살. 서울에서 태어나 조선대학 문창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학과 사회』의 신인문학상을 통해 2010년에 등단했으니 첫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부터 책등에 전통의 빨간 허리띠를 두른, 또는 빨간 빤쓰를 입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기분 좋았겠는 걸?
작품집의 맨 앞에 실린 작품이 <돼지우리>. 이 첫 작품. 김엄지 개인사로는 2010년 문학과사상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며, 데뷔작을 제일 앞에 배치했는데, 정말 기발했다. <돼지우리>에 나오는 돼지우리는 삼겹살과 소주를 파는 돼지고기 집이다. 출연진은 화자 ‘나’와 ‘나’의 친구이며 주인공인 우라라. 그리고 돼지우리 주점의 사장과 사장의 아내이자 주방과 홀 서빙 아줌마. 이렇게 네 명이다. 시작부터 ‘나’와 우라라는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 중.
우라라. 대학 시절에 공부도 잘 했고, 생긴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근데 조금 골통. 말하는 폼새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입에 달고 다니는 단어가 “떡”. 라라의 말을 그대로 쓰자면 어릴 때, “떡을 먹다가 뒈질 뻔했어. 숨구멍으로 넘어갔거든.” 그때부터 “인절미 콩가루만 봐도 토할 거 같”다.
이후 라라는 떡의 질감과 향, 목 넘김이 인류가, 좁게 말해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것으로 상정했다. 뭐 누구든지 이런 거 하나씩 가지고 있을 듯. 주로 어릴 때 먹은 음식에 관해서라면, 내 경우엔 잘 익은 토마토를 앞니로 베어 물었다가 앞니가 쑥 빠진 경험이 있다. 그리 흔들리지 않은 젖니였는데 뭐에 걸렸는지 아프지도 않지만 잇몸에서 쑤욱, 빠지는 이상망측한 감촉. 그래서 이후 건강, 특히 발기 유지에 그리 좋다는 채소이기도 한 토마토를 한 십년 가까이 먹지 않았다.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 누구는 역시 어릴 때 굴, 그 흐물흐물한 단백질 덩어리를 먹고 체해 밤새 물찌를 싸대는 바람에 나이 먹어 아가씨하고 키스도 못했다는 거다. 아가씨의 혀가 자기 입 속으로 쑤욱 들어오는데 혓바닥의 뭉글뭉글한 감촉이 저기 저 멀리 있던, 어렸을 때 목을 넘어가던 생굴하고 비슷한 거 같아서.
하여간 우라라는 어릴 때 하마터면 뒈질 뻔한 인절미를 먹었을 때는 안 그랬지만, 가랑이 솜털이 검게 바뀌는 사춘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욕설을 섞은 말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라라가 “떡 됐다.”라고 말했다면 그건 “개 같다.”나 “좆 같다.”와 같이 치명적인 표현이라고.
정말이다. <돼지우리>의 두번째 문단에 김엄지는 이렇게 말했다.
“떡이나 개, 가끔은 좆. 라라는 본인의 면접 결과를 늘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 (p.9)
본인의 면접 결과? 흠. 그러면 ‘나’와 라라는 대학 졸업반이거나 졸업생, 즉 취준생이겠구나. 근데 좀 더 읽어보면 조금 이상하다. 생기기도 잘 생겼고, 욕만 하지 않으면 말도 기막히게 하는데, 거기다 지방대학이지만 공부도 잘해서 당연히 학점도 좋고, 서울에서 굳이 먼데까지 유학을 왔으니 집안도 좀 넉넉한 거 같은데 왜 면접을 볼 때마다 미끄러지느냐는 말이지. 지방 소재 대기업이나 공기업이라면 라라 정도의 ‘지방인재’는 서류 넣자마자 볼 것 없이 그냥 쑥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건만.
아무리 ‘나’와 독자가 뜻을 모아 팀을 만들어 앞뒤로 관찰해 보아도, 라라는 애초에 금융기관을 포함한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 기타 등등에 취업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라라의 주장대로 예의상 면접을 봐준 것에 불과할 뿐.
면접을 보는 족족 탈락하기만 하는 라라. 아마도 면접장에 가기만 하면 일부러 찐따 짓을 해서 남들에게 나도 회사에 취직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행위였지 않았을까 싶다. 라라는 그들의 속에 들어가 정형화된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이겠지. 아마 생활인의 80퍼센트는 라라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다만 억지로라도 그 짓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을 수 없고, 장가도 들지 못할 거 같고, 장가를 들지 못하니 어여쁜 마누라와 금쪽 같은 새끼들도 생산해 키울 수 없으니 그저 그렇게, 남들 다 하듯 취직하고, 이후 작품의 출연진들과 마찬가지로 상사 새끼들한테 후진 소리 들어가며 월급 타서 그 돈으로 삶을 이어갈 뿐이지.
내가 아무 일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자기만의 방”과 5백 파운드의 연수입이 보장되기만 하면 염병을 한다고 취직을 하고, 드러운 상사 새끼들한테 후진 소리 들으며 직장생활하고, 소주 맥주에 닭 뜯어가면서 드러운 상사 새끼 흉보고, 택시 타고 집에 오면서 택시 안에 토하겠느냐고? 라라도 백 년 전의 여성들처럼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가 보장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라라는 참 특이하다. 먹는 걸 무진장 좋아한다. 먹으면서 오르가슴을 느낀다. 저 오래 전 원조 포르노처럼 최고의 성감대가 “목구멍 깊숙이” 있어서 그걸 자극해야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자극을 위하여 온갖 음식물을 씹고, 넘기는 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오르가슴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막 조리한 따끈한 육류를 택해야 하며, 급히 먹되 잘 씹을 것. 입과 이빨을 최대한 사용할 것. 입 주변 근육이 조이고 이가 잇몸에 콱콱 박히는 듯한 느낌이 올 즈음부터 목 넘김에 최대한 집중할 것. 입안에 가득한 고기를 한 번에 삼킬 것. 이때 목구멍과 씹힌 고기의 접촉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먹는 자의 테크닉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p.11)
아하, 입안 가득한 고기가 죽상 상태가 될 정도로 씹혔을 때 그걸 한 방에 목구멍으로 넘기고, 이때 목구멍 전체의 조직과 음식물의 마찰이 오르가슴을 만들어내는구나! 어째 삽입섹스의 프로세스와 그렇게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당시 스물두세 살의 라라는 벌써 음식, 특히 고기를 먹으면서 다른 건 몰라도 오르가슴 하나에 대해서는 확실히 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디 함부로 취직이나 할 수 있겠어?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개울 치고 가재 잡는 일도 생기는 법이라서, 놀라지 마시라, 라라는 드디어 취직을 했다. 바로 ‘돼지우리’에. 벌써 고용계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한 번 보시라.
채용 계약서
1. 한 달 급여 1백만원. 우라라의 신체 변화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한다.
2.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출근한다.
3. 일주일에 한 번은 삼겹살 외 사장이 추천하는 부위를 먹는다.
4. 우라라는 돼지가 될 때까지 돼지고기를 먹는다.
5. 일방적 계약 해지시, 월급과 고깃값의 8배를 보상한다.
화자 ‘나’와 우라라는 계약서에 라라가 먹는 돼지고기는 무료로 제공한다는 조항이 빠졌음을 발견한다. 당연히 이 조항을 추가하기로 사장과 약속한다.
사장하고 약속했다고? 그렇다. 이 계약서를 볼 때까지 고깃집 “돼지우리”에 사장이 무대에 나오지 않는다. 드디어 등장한 사장. 돼지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여태 몰랐는데 라라는 알고 있었다. 서빙 아줌마가 사장의 아내인 것을. 서빙 아줌마는 정말 돼지 같이 생겼다. 나중에 보면 꼬랑지도 달렸다. 그냥 꼬리 말고 꼭 “꼬랑지”라고 써야 제 맛인 돼지 꼬리가.
사장이 보기에 라라야말로 훌륭한 돼지가 될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단다.
작품에 관해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고,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유쾌했으며, 엽기적 그로테스크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도 생각했는데,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영화가 한 편 있었으니, 장피에르 죄네가 감독하고 도미니크 피뇽이 주연한 1991년의 명작 <델리카트슨>. <돼지우리>와 <델리카트슨> 두 편을 읽고 본 사람은 내 의견에 그리 반대하지 않을 듯한데, 물론 내용은 다르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김엄지. 괜찮군. 앞으로 주목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근데 왜 도서관에 김엄지 책이 별로 없지? 거 별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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