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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비극의 일인자
  • 김성민
  • 10,000원 (100)
  • 2016-05-20
  • :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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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작가 김성민이 극단 ‘피오르’의 대표라는데, 200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당선한 중견 극작가이고, 이러저러한 상을 받았다는 수상 경력 이외의 바이오는 찾기 힘들다. 같은 이름을 한 인사들도 참 많다. 극작가, 작가, 소설가, 만화가, 화가, 연극인, 심지어 몇 년 전에 잘 나가다가 마약 복용이 들통나 TV에서 퇴출당하고 스스로 삶을 거둔 전직 연기자 김성민까지.

  《비극의 일인자》를 읽은 다음이면, 특히 제일 뒤에 실린 <마지막 물방울 너는 영원해>를 읽고 김성민을 검색하면, 이 극작가가 여성이라는 걸 알고 뭥미? 할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세 편의 작품을 실은 희곡집. 표제작 <비극의 일인자>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창작팩토리 대본공모에 당선한 것을 필두로 2013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 지원에 선정되고, 2014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우수작품”재공연”지원작품에 다시 선정되었단다.

  <비극의 일인자>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읽힌다. 2012년 작품이니 소설가 한강보다 훨씬 앞서 우리나라의 극작가 고일봉 씨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시기, 고일봉과 고일봉의 (죽은)아내, 고일봉씨의 처음 모습일 수도 있고 그럴 것 같은 젊은 작가, 젊은 작가의 아내, 고일봉 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작가의 첫사랑 등이 출연한다.

  하여간 고일봉 씨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아직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각 매체의 기자들이 고일봉의 집에 들이닥쳐 인터뷰를 하려 하지만 고일봉은 특별히 할 말도 없다. 서둘러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빠져나가자, 이미 죽은 고일봉의 아내의 노래소리가 들려오고, 드디어 부부가 만난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큰 성취를 이룬 작가가 옛 시절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고, 회한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연출가가 어떻게 극을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을 듯. 이 작품이 부조리극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극처럼 연출하는 것도 상당히 그럴 듯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두번째 순서로 실린 <숲 없는 숲>은 귀신들의 난장판이다. 약자로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  말이 그렇다는 거다. 죽음과 탄생. 아이를 원하는 처녀와 농부. 출산 행위가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은, 인간의 가장 오랜 본능을 잇고 싶어하는 처녀의 소원을 들어주려 저승 명부 순서를 뒤바꾸는 저승사자. 저승의 염라대왕급은 아니지만 대신 급의 판관들, 이런 이들이 등장해 삶과 죽음과 생명의 연속, 즉 근본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여차하면 나처럼 ㅆㄴㄹ 정도로 읽을 수도 있다. 극작가 김성민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숲 없는 숲>은 공연을 해도 보러 가지는 않았을 거 같다.

  그런데 사실, 연극의 대본인 희곡을 읽고 근본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라는 말보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표현도 없다. 연극 자체가 삶의 의미에 관한 다양한 도구라서. 수다한 연극과 희곡을 보고 읽으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2 곱하기 2는 4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하품나는 말일 터이다. 그러니까 이런 독후감을 쓰는 게 사실은 면목 없는 일이다.

  노르웨이 소설가 프로데 그뤼텐의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에서도 주인공인 뱃사람 닐스가 입센의 연극을 보고 “3막에 걸친 연극이 펼쳐지는 동안, 그는 조명 아래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그래, 연극이 바로 그거라니까? 삶의 의미에 관한 것. 자기 삶이 아니라면 유사 이래로 그렇게 많은 관객이 공감을 했겠느냐고.


  제일 뒤에 실린 <우주의 물방울 너는 영원해>는 왕년의 잘 나가는 연극배우이자 지금은 늙어 서울 변두리의 룸살롱에서 기타 반주해주고 받는 팁으로 먹고 사는 악사 일봉의 이야기. 그렇다. 일봉 씨가 또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극작가 고일봉 씨가 아니라, 왕년의 연극배우 일봉 씨. 남성의 로망, 우뚝 선 봉우리 한 개, 일봉 씨. 제대로 서는지 아닌지는 확인한 바 없지만 젊었던 한 시절엔 꽤 대단했던 거 같다. 아무리 연극판에서 날고 뛰어도 TV 조연으로 한 번 뜨는 것보다 훨씬 배고팠던 시절이니까 그냥 알아서 판단해도 좋을 듯. 일봉씨가 평생 사랑했던, 그러나 연극 배우들의 생활에 비추어, 그리 호강시켜주지는 못했던, 호강? 호강 비슷한 것도 바라지 않았으니 그저 크게 불편함 없이 살게 해주지도 못한 아내 화수는 지금 뇌경색으로 오늘 내일 한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나 한참 예쁠 때 사고로 죽은 아들 동수. 화장해서 산골을 하지 않고 매장을 했다. 당시엔 죽은 아들 생각나면 한 번씩 둘러보겠다고 했겠지. 이제 화수가 자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 무덤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일봉씨 부부와 일봉의 친구 만수, 만수의 아들이자 일봉이 악사로 일하는 룸살롱 웨이터 병만, 이렇게 넷이, 화수의 휠체어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밀어 나중엔 병만이 화수를 들쳐 업고 동수의 무덤에 가, 무덤의 풀이나마 한 번 쓰다듬고 내려온다. 화수는 죽고, 일봉은 월세방에서 쫓겨나고, 월세방에는 새로 신혼부부가 와서 자리를 잡고,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이런 작품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쪽. 죽음, 귀신, 사후세계, 영적 교류 같은 4차원적 이야기들이라 그냥 훅훅 읽었다. 이런 책 읽으면 괜히 극작가한테도 미안한 기분이 든다. 김성민 씨, 미안합니다. 이렇게밖에 쓰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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