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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물처럼 단단하게
  • 옌롄커
  • 16,650원 (10%920)
  • 2013-02-15
  • :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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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롄커. 이 58년 개띠 아저씨, 말빨 하나는 정말 우주 침략군 수준이다. 읽다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혀가 쑥 빠져 도무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가 숱하다. 쑥, 빠진 혀를 그냥 빼 버리면 다른 혀가 다시 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얼른 자라나고, 그런 다음에 <물처럼 단단하게>를 이어서 좀 더 읽으면 다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혀가 쑥 빠져 도무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기어이 손가락으로 빠진 혀를 잡아당기면 쑥 빠진 혀가 정말로 몸에서 두 번째로 쑥, 빠져 버림과 동시에 역시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다시 한번 쑥 빠져 버릴 세 번째 혀가 슬금슬금 기어 나올 것 같은, 우주 침략군처럼 일말의 것에도 거침없이 쏟아져 흐르는, 창장(長江)이나 황허(黃河)처럼 도도한 말빨에, 조심하시라, 여차하면 빠져 죽겄다.

  옌 선생이 이 작품을 2001년에 발표했는데, 당시에 공식적인 직업이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군대에 속한 직업군인이었다. 이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만일 할 것이 없어 중국에 가 중국사람들 한테 맞아 죽고 싶으면 베이징 톈안먼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마오쩌둥 욕을 세 번만 외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부터 사반세기 전에, 현직 군인이, 1978년에 입대해 23년 동안이나 국방부 밥을 먹고 있는 직업 군인이 마오쩌둥 주석의 거의 모든 업적을 이리 꼬고 저리 비틀면서 한낱 희화로 다시 썼으니, 옌롄커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배포 역시 지극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체제에 가장 협력해야 할 국방 공무원이 국부이자 위대한 태양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초등, 중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같이 학교에 다닐 무렵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비극과 사극과 희극과 무수한 소네트를 발표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천재이자 십사억 인민의 어버이를 이리 꼬고 저리 비틀었다니, 당연히 담당 공무원은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를 회수하여 읽어보고, 이왕 검열을 했으니 검열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도 뭐 하나쯤 꼬투리를 잡아야 해서, 엣다 모르겠다, 땅땅땅, 아마도 옌롄커 처음으로 판매금지 도서로 판정했을 걸? 이후 옌롄커의 모든 작품은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애정을 담은 관심을 받아 줄줄이 <레닌의 키스>,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사서>로 이어지는 5연타석 안타를 치기에 이른다. 5연속 판매 금지. 나는 우연히 이 5안타를 다 읽어봤는데, 아이고, 그래도 <물처럼 단단하게>처럼 마오쩌둥 본인을 이리 꼬고 저리 비튼, 오리지널 중국인이라면 심하게 언짢은 수준에 다가가는 건 없을 걸? 그렇게 기억한다.


  주인공 ‘나’ 가오아이쥔은 1942년 섣달에 옌롄커 문학의 고향인 바러우 산맥의 청강진에서 태어났다. 진鎭은 그냥 마을 정도, 조금 더 인심을 쓰면 면 단위 정도로 생각하면 무난하다. 1942년이니까 동네 근처에 일본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아이쥔을 낳으려고 몸을 트니까, 아버지는 산파를 부르러 나갔다가 일본사람의 칼을 맞고 그 자리에서 토막 나 죽었다. 그래서 날 때부터 가오아이쥔은 혁명가의 자식이라 불렸다. 일본군한테 칼 맞아 죽은 아이니까 당연하지.

  아이쥔은 자라면서 키 크고, 근육 좋고, 당연히 힘도 좋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딸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 한 번 셈해 볼 정도였는데, 청강진의 청촌(程村: 청程씨 집성촌) 지부 서기를 하고 있던 청텐칭 씨가 유독 마음에 들어 아이쥔을 불렀다. 청톈칭 씨야말로 혁명가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중일전쟁 당시 팔로군의 편지를 전해준 눈부신 과업을 이루었기 때문에. 누군가 팔로군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를 주었고, 그걸 호주머니에 갖고 있다가, 마침 팔로군 행렬이 동네 앞으로 지나가길래 편지 생각이 나서 전해주었다니 이 아니 혁명적인가 말이지. 청톈칭은 딱 한 번 이룬 혁명과업 덕분으로 청촌의 지부 서기에 올라 어깨에 후까지 단단히 잡고 다녔다.

  청톈칭은 가오아이쥔을 불러 (세수를 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얼룩덜룩한 피부에 얼굴 전체에 잔잔한 점이(아마도 파리똥이라고 부르던 주근깨였겠지) 촘촘히 났고,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다리미로 빡세게 다린 것 같은 젖가슴을 단 것과 달리 펑펑한 엉덩이를 흔들고 다니는 못생기고 게으른, 봉두난발의 딸, 구이즈, 성까지 합해서 청구이즈와 결혼을 하면, 당시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군대에 입대하게 해주겠으며, 제대하고 돌아오면 자기는 뒤로 물러날 테니 자기 자리의 후임으로 앉으라, 이리해서 촌에서 제일 덜 생기고 지저분한 청구이즈와 혼인했고, 맏이 홍성을 구이즈의 배에 실은 후에 입대해버렸다. 그러니까 ‘나’의 아들 홍성은 친할아버지가 왜놈의 칼에 맞아 죽은 혁명가, 외할아버지는 팔로군에게 편지를 전해준 혁명가, 아버지 역시 혁명군의 총아니까 역시 혁명가, 가히 혁명 집안의 적자였던 거다.


  가오아이쥔은 1964년, 22세 때 공병대에 입대해 3등 공훈장 네 번, 중대장 표창 다섯 번, 대대장 표창을 무려 여섯 번 받은 빛나는 업적을 이루고 있었다. 입대하고 2년이 흐른 1966년에 처음으로 아내 청구이즈가 부대로 면회를 왔을 때는, 1년 8개월 동안 터널 작업을 하느라 전 부대원이 여자 냄새는커녕 구경도 한 번 못한 상태였는데, 하여간 그런 시기를 제대로 맞추어 면회를 온 구이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홍성이 두 돌을 지났으니 딸을 하나 낳아야겠어.”

  밥을 먹고 창문 없는 토굴 비슷한 면회소에 요강 하나 들고 들어가 구이즈가 요구한대로 딸 하나 만들려 구이즈의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여태 달걀 프라이 수준이었던 가슴이 오호, 제법 봉긋, 봉긋을 넘어 풍만하기까지 하다. 이 와중에도 우리의 혁명가 가오아이쥔은 궁금한 건 물어보고야 만다.

  “홍성이 아직도 젖을 먹지?”

  그렇단다. 여전히 수유중이라 젖이 불어 퉁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아내가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딸을 낳게 하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려 손을 배꼽 또는 그 아래로 내려 슬슬 더듬기 시작한다. 결혼하면서 본 아내의 알몸이 기억에서 흐릿하다 못해 깡그리 사라져버렸으니 아내가 아무리 못생기고 지저분해도 어찌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고 3년 말린 나무껍질처럼 목이 타들어가지 않겠는가.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소련 수정주의자들한테 본격적인 폭격이라도 가할 태세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양물을 앞세워 아내의 입을 맞추고 손을 내려 아내의 아랫부분에 닿았다. 이때 갑자기 폭발한 아내 청구이즈. 벌써 폭발? 아니, 그 폭발이 아니고 이런 폭발.

  “가오아이쥔, 당신은 전 국민의 모범인 해방군이잖아. 그런데 2년 못 본 사이에 어째서 건달이 된 거지? 아이를 낳으려면 그냥 그 일만 하면 되지, 왜 건달처럼 몸을 더듬는 거야? 머리하고 얼굴을 더듬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참았는데 윗도리를 더듬다 못해 이제 아래로 손을 뻗다니 대체 당신이 건달이야, 해방군이야?”

  아오. 하여간 청구이즈가 말한대로 단도직입적으로 교미, 아휴 이건 너무 심한 표현이다. 뭐랄까, 하긴 했다. 수정. 좋아. 수정하는 데는 성공했고, 아홉달이 지나 원하는 대로 딸 홍화를 낳았다.


  윗 단락에서 아마 그저 훌쩍 읽고 넘어가셨을 것이 틀림없는데, 가오아이쥔이 딸 홍화를 만들 당시 1년 8개월 동안 투입된 작업이 터널 뚫기였다는 거, 이게 중요한 거다. 다 훗날을 위해 공병단에 입대한 아이쥔으로 하여금 교량공사나 도로공사, 건물, 지뢰매설 등이 아니라 땅굴을 파게 했는지, 다 이유가 있겠지? 있다. 근데 그건 나중의 일이니 넘어간다.

  청구이즈가 찾아와 아이를 만들고 1년이 지난 1967년. 부대를 해산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돌았다. 이때 대대장을 비롯한 많은 간부들은 가오아이쥔이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매사 열렬히 맡은 바 과업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을 인정하여 다른 부대로 전출해 계속 인민을 위해 복무하길 권했다. 그러나 가오아이쥔은 자신이 군 조직에서는 그동안 충분히 혁명적 과업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다시 고향 바러우 산맥 인근의 청강진으로 돌아가 세상 어느 곳과 비교해도 낙후되고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변하지 못한 지역에서 제대로 혁명적 과업을 이루어보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했다. 1960년대 중국은 군 제대 수속을 복무한 부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적이 있는 현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랬나? 1980년대 초반에 나도 아마 동사무소 병무담당한테 제대했다고 신고했던 것도 같고. 그때 내 주민등록증에 담당자가 ‘병장’이 아니라 ‘상병’이라고 써서 그깟 병적, 아무 관심없다, 이렇게 산 건 좋았는데 친구 몇 명이 그것 때문에 내가 헌병이 아니라 방위병 출신인 줄 알았다. 맞다. 우리도 그랬다. 염병할 병무 담당자라니. 하긴, 고쳐달라고 하지 않은 내 잘못이기도 하지.

  청구이즈가 제대 증명서를 가지고 현성에 도착한 것이 1967년 여름. 당시 현성에 휘몰아치고 있던 크고 큰 격랑이 있었으니, 문화대혁명. 많아봐야 하이틴으로 보이는 소년들과 20대 초중반까지의 청년이 늙은 봉건잔재와 재산을 숨긴 부르주아, 혁명사상에 반대한 배 나온 간부, 간음한 남녀, 기타 등등 자기들 눈에 비정상이거나 하는 짓이 좀 더럽다 싶은 모든 인간들을 체포해 두드려 패고, 고깔을 씌워 조리돌림을 시키고 있었다. 가오아우쥔의 눈이 핑, 돌아갔다.

  이게 혁명이야. 혁명의 파도가 제대로 넘실거리고 있어. 나야말로 혁명가의 적자. 현성에서 3일 동안 대기하면서 다양한 것을 목격한 아이쥔은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물 때 철길에 앉아있는 한 여인, 숙명의 혁명 여인을 만난다. 샤홍메이. 붉은 매화. 캬. 첫 만남부터 옌롄커의 필봉이 장난 아니다. 이건 정말 읽어보셔야 아는데, 엣다, 맛보기만 조금. 아주 조금. 지독하게 조금. 1만분의 1만.

  “그런데 그때, 그 위대하고 신성한 순간, 제가 그녀의 선홍색 발톱을 만지려고 할 때 갑자기 그녀가 발을 거두었습니다. (중략) 그녀는 그렇게 잠시 발을 거뒀다가 수줍게 웃으며 이전처럼 달밤에 꽃이 피듯 다시 내밀었습니다. (중략) 저는 꽃을 입에 물 듯 그녀의 두 발을 들어 꼭 붙인 제 다리 위에 올려놓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붉은 발톱을 쓰다듬었습니다. (중략) 그녀의 발가락이 제 손안에서 톡톡 튀고 그녀의 발에서 피가 강물처럼 미친 듯 흐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게 몇 페이지를 넘긴다니까.

  첫날 이렇게 만난 여자 샤홍메이. 그녀를 곧 다시 만난다. 전임 진장 청톈민 집안의 며느리로. 현성 동관 사람이며 청톈민의 아들이자 아이쥔의 고등학교 동창 청칭둥의 아내. 그리고 가오아이쥔의 평생 혁명 연인이 될, 백옥 같은 피부, 칠단 같은 머리카락과 삼각형의 복슬한 음모, 진지한 마오쩌둥의 숭배자이자 혁명가 가운데 혁명가. 가오아이쥔과 함께 죽음을 맞을 때까지 조금의 후회도 없이 한 목숨 혁명과 사랑을 위하여 아이쥔의 온몸을 붙들고 쇠를 녹이는 혁명의 화염 속으로 투신할 미와 사랑과 혁명의 화신.


  그런데 이런 주인공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중국 당국에서 판매금지 조치를 해버렸다고? 이해되지 않지?

  이들이 말하는 혁명이 문제다. 청촌의 서기가 되고, 진의 진 서기나 진장이 되고, 현의 현장이나 현 서기가 되고, 성의 성장이나 서기, 시의 시장이나 서기, 그리고 베이징. 이런 식으로 단계를 올라가는 권력을 쥐는 것이 불행하게도 가오아이쥔이 생각하는 혁명이었다.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 앞을 막는 건 모두 혁명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법. 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거니까. 옌롄커는 애당초 말도 되지 않는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식 공산주의를 깔아 뭉개 버렸던 거였다. 당국자라고 그걸 모르겠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더 높은 당국자의 눈치를 봐야 하니 뿅망치 세 번 땅, 땅, 땅, 두드리면서 판매금지 판결을 내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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