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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의 크리스토프 하인이 1997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바이오그래피와 비교하면, 다분히 자전적 성장소설로 봐야 할 터이다. 13세. 폭풍 같은 사춘기를 시작하는 시기. 사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체득하고, 감각하기 시작하는 시절. 그건 동서도 없고, 남북도 없으며, 체제의 다름도 관계없다. 세상의 모든 열세 살에게 닥쳐오는 폭풍의 시절.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이 그러하듯, 공산주의 체제에서 교구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작중 주인공 다니엘의 세상살이는 처음부터 쉽지 않게 만들어졌다. 종교가 아편인 세상에서 목사의 아들이라니.
커트 보니것은 인디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인디애나폴리스 대학 졸업식 연설문 원고에서, 1840년대의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아편”, 여기서 아편이라 함은 당시에 가난한 인민들이 구할 수 있었던 가장 저렴하고,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21세기였다면 “종교는 타이레놀”이라 했을 거라나? 졸업식 직전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그의 소원대로 고향인 트리팔마도어 행성으로 떠나는 바람에 의사 아들이 대독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여간 당시, 그때가 1950년대 중반이었는데, 책에 의하면 아버지의 직업과 외조부모의 신분이 구 동독에서는 공부 잘하는 두 아들이 인문계 고등학교 과정인 김나지움에 입학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학업능력은 요구 수준을 능가하지만 과업을 성취해갈 사회주의적 인성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았다는 이유. 그걸로 동독 체제 안에서 교구 목사님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연달아 김나지움 진학을 거부당했다. 그게 나라냐고? 나라지. 세월이 문제였을 뿐. 공부만 잘해 서울법대를 졸업했어도 파르티잔이나 월북 빨갱이를 아빠로 두었다는 거 하나 때문에 사법, 행정, 외무 고시는커녕 공기업도 아니고 사기업에 취직도 못하던 시기가 우리나라에도 몇 십 년이나 있었는 걸 뭐.
다양하게 지역사회 인사들, 당연히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포함해서, 나름대로 발언 좀 한다는 이들과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잘한 충동과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 교구 목사님도, 그렇다고 자기 두 아들의 진학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맏아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먼저 둘째 아들 다니엘을 자기가 운전하는 낡은 차에 태워 라이프치히든가 하여간 가까운 도시의 기차역까지 데려가서, 함께 기차를 타고 서베를린에 있는 친척 방문이라 구라를 풀어 검문 경찰을 속여 서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미리 서신으로 연락을 해 둔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에 입학시켜버린다. 이미 서베를린에는 동독 출신 학생들을 위한 클래스가 있을 만큼 동쪽 출신 학생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다. 다음날 아이와 함께 시내에 나가서 초콜릿으로 겉을 감싼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아이가 배웅하는 기차역에서 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집에 도착하면 된다. 책 속에서는 엄마도 함께 따라 나섰다.
작품은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주인공 다니엘이 아빠 차를 타야 하는 순간에, 다니엘이 막달레나 고모에게 작별인사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 장면을 제일 앞에 놓고 시작하는 거다. 게다가 다니엘의 외할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홀츠베델에 있는 농장의 감독관으로 있었지만, 과거에 귀족 집안에 속한 농장의 충실한 마름이었다는 출신성분과 계속되는 당국자의 공산당 입당 권유를 끝까지 물리쳐 올해 감독관 자리에서 해고당하고 이젠 다니엘 집으로 와 함께 살고 있으니, 하여간 여러가지로 형 다비트와 다니엘을 도와주지 않은 건 맞다.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도 다니엘과 같은 또는 아주 조금만 다른 이유로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 작품을 쓰고 몇 년 지나면 잘 쓴 체제비판 소설 <호른의 죽음>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이이가 1990년 10월 3일, 독일재통일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런 청소년기의 학습 좌절 경험과 서베를린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크리스타 볼프와 더불어 독일의 재통일에 반대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그룹 가운데 한 명이었다. “솔직히”라는 부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하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종이다. 즉, 1940년대부터 근 반세기 동안 유효했던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이런 빗나간 공산주의 체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인을 제외한 모든 인민이 프롤레타리아인데, 딱 한 명이 나머지 모든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독재를 펼치는 체제를 의미했을 뿐이다. 한 번 더 솔직히, 스탈린과 우간다의 이디 아민이 뭐가 다른데? 이디 아민이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날 것으로 먹은 거 말고.
호른과 볼프는 경제체제로의 공산주의와 정치체제로의 민주주의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1990년의 독일 재통일이 이런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행위라고 봤던 것이겠지. 기형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한 동독 안에서 호른과 볼프는 공산주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 체제를 비판하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체제를 지양하는 방편으로. 사는 게 다 그렇다니까.
작품 속에서는 적극적인 체제 비판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겨우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다니엘에게 숱한 사람들이 “비밀”을 요구한다는 것. 동베를린도 아니고,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도 아닌 시골 구석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관해 속닥이는 것도 “비밀”을 약속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 지. 체제가 전체주의적이었다는 뜻이다. 경찰국가였다는 말과도 같고. 내 부모가 조금이라도 정치적 발언이다 싶으면 새끼들 알아듣지 못하게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를 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행여 그냥 우리말로 했다가 얼핏 보니 옆에 나 및/또는 형이 있는 걸 알아차리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내 부모. 밖에서 절대 이런 말 하지도 말고, 어디서 들었다는 말도 말아라. 큰일난다.
아주 사소한 대화도, 행위도 마찬가지. 비록 정말로 아버지의 누이는 아니지만 고모라고 부르는 막달레나 고모의 집에서 1차세계대전 이전에 만든 소년용 놀이인 “바다에서의 전쟁”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도 비밀, 형 다비트가 2년 전에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에 가서 지금 열공중이라는 것도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비밀. 공화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가끔 교구 목사인 아버지를 찾아와 깊이 악수하는 걸 본 것도 당연히 비밀, 러시아호lake에서 필레의 벗은 허벅지 사이 음모에서 물방울이 똑똑 듣는 모습을 훔쳐본 것도 당연히 비밀, 이건 정말로 비밀 중에서도 특급비밀. 심지어 순서대로 다비트, 다니엘, 도얼레, 미하엘, 마르쿠스를 두었음에도 엄마 배 속에 또 아들 하나가 들어 있어 몇 달째 엄마가 아빠한테 말 한 마디 안 하는 것도 비밀. 당연히 주인공 소년 다니엘은 이 비밀들을 다 지켰다가는 입에서 쉰내 날까 싶어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떠들고 다니지만, 이게 다니엘을 탓할 일인가? 애초에 언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 없었으니, 다니엘, 무죄다.
그래서 이 책을 <호른의 죽음> 비슷하게 1950년대의 동독에 대한 체제 비판적인 작품으로 보지 않는 편이 좋다. 열세 살 먹은 소년 다니엘이 사춘기를 맞아 정서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열세 살이라는 애매한 나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교실에서는 훌렁 벗은 여성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정말로 성 경험이 있는 친구는 아직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는 꼬맹이들. 불과 1, 2년만 더 지나면 알 거 다 아는 걸 지나 해볼 거 다 해본 본격적인 반항기 시절을 맞을 예비 까칠이들. 정말 동성애를 하는 남자들도 있다는 얘기를 직접 듣기 시작하고, 두어살 더 많은 아이들이 호숫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라이브로 감상하면서 처음으로 사정을 경험하는 다니엘. 이때 얼마나 힘차게 사정을 했는지 일부가 필레의 자전거 안장까지 튀어 몇 달 지나 필레가 임신을 했단 얘길 듣고 혹시 자기 정액을 깔고 앉아 임신한 거 아닌가? 그럼 필레의 배 속에 내 아이가 들었을 수도 있겠네? 노심초사하기까지 하는 불쌍한 다니엘. 뭐 그러면서 크는 거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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