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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성가신 사랑
  • 엘레나 페란테
  • 13,780원 (5%430)
  • 2019-06-24
  • :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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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에 읽은 페란테의 “나폴리 사부작” 가운데 1책 <나의 눈부신 친구>는 미국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백대 소설” 중에서 제일 윗자리를 차지한 작품이다. 내가 나폴리 사부작을 읽은 감상은, 걸작이나 명작이란 찬사를 가져다 바치지는 못할지언정 참 재미있는 소설, 이라고 당시 독후감에 썼는데, 이후 아쉽게 생각하는 건, 시간이 별로 많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작품에 대한 기억이 별로 뚜렷하지 않다는 점, 한 방에 휘리릭 사라졌다는 거였다. 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와 사르데나 같은 섬 지역 말고 아직도 벤데타 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지역. 내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을 나폴리로 간다 해서, 거기 가면 당연히 소매치기 조심하고, 행여나 코 흘리는 아이들 귀엽다고 건드리지 말고, 예쁜 아가씨 훔쳐보지 말라고 훈수를 둔 곳이다. <성가신 사랑>에서도 나온다. 집 앞 벤치에 앉은 다 늙은 할배가 주인공 화자에게 아이들을 가리키며, 저 아이들 한테 손을 대기만 하면 그건 죽은 목숨이라오.

  하여간 페란테의 사부작은 다 읽었고, 근데 사부작, 하면 내 마음 속 사부작은, 가시는 길 뿌려준 진달래꽃잎을 사부작, 사부작 밟고 가는 님 발자국 소리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폴리 사부작을 읽은 기념으로 페란테라는 이름은 내 기억에 콱 박혀 있었던 바, 그의 새로운 삼부작, 이번엔 제목을 “나쁜 사랑 삼부작”으로 한 삼부작이 나왔다는 걸 알았지만, 나폴리 이야기를 무척 재미나게 읽고나서 기억이 금세 휘발되고 만 것이 생각나, 나중에 읽지 뭐, 하고 내버려둔 것이 어영부영 6년이 넘었다.


  “나쁜 사랑 삼부작” 가운데 1권 <성가신 사랑>. 첫 작품부터 기대 이하이다. 뭐, “나쁜 사랑”에 관한 소설 세 편을 썼는데 그 가운데 제일 나쁜 사랑일 수 있으니 읽은 소감도 제일 나쁜 독후감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책은 주인공 화자 ‘나’ 델리아의 시각으로 쓰였으나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델리아는 43~44세의 만화가로 로마에 산다. 나폴리에서 시골 화가와 재봉사 사이의 세 딸 가운데 맏이로 이제 나폴리에는 부모가 각각 다른 집에서 살고 아이들은 모두 객지에 터를 잡았다. 자매는 일년에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고, 그나마 가족 일원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하여 아주 가끔 서로 전화를 한 번씩 하는 걸로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한다. 모두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 사는 건 꿈에도 바라지 않는다. 말투에서도 어느새 나폴리 사투리는 거의 사라졌다. 할 수 없이 나폴리에 가야 할 경우에도 갑작스런 상황이 아니라면 또박또박 로마 또는 각자 살고 있는 곳의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그만큼 나폴리에 정이 뚝 떨어졌다는 뜻이다. 심지어 두 동생의 이름은 나오지도 않는다. 남은 아니지만 남보다 못해 웬수가 되지 않으려 마지막 발돋움을 하느라 종종거리는 모습.


  막이 올라가면 델리아의 생일인 5월 23일 밤에 어머니가, 예전에 가족들이 여름에 농가 한 채를 빌어 해수욕을 가곤 하던 스파카벤토 해변 인근에서, 평소에 입던 누더기 같이 다 헤진 브래지어 대신에, 섬세한 레이스 처리를 한, 나폴리의 부잣집 사모님들이 즐겨 찾는 ‘보시’ 고급 속옷가게 제품을 착용하고, 다른 옷은 스타킹 하나 걸친 것이 없는 시신 상태로 발견되었다.

  엄마는 죽기 전 몇 달 동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델리아의 아파트를 찾아와 며칠씩 묵어 갔다. 하도 오래 떨어져 살던 모녀 사이라 지내다 보면 조금 불편한 것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 델리아가 엄마 때문에 힘든 기색을 보이면 바로 나폴리로 돌아갔다. 그러니 얼마 동안 머물겠다는 언질을 주었던 적은 없었다.

  어머니가 죽어, 아무리 유럽이라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발전이 늦은 지역이라 온갖 관청에 뒷돈을 주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서류처리를 한 다음에 장례식을 할 수 있었는데, 장례식에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쯤 가슴을 노출한 집시 여인을 그린 그림을 건장한 흑인청년 네 명이 들고 성당의 복도를 걷게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좀 이상하지?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신경정신과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오래 전, 아버지는 아내와 세 딸을 집에서 쫓아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유부남이기도 한 훤칠하고 잘 생긴 카세르타 씨와 정분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를 두드려 팬 다음, 처남, 델리아의 외삼촌 필리포와 함께 카세르타의 집에 가서 카세르타 역시 자근자근 밟아주고 돌아와, 아내를 쫓아냈는데, 가톨릭 사회에서 서류작업을 끝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혼을 기어이 해버린 건지, 법적 가족분할은 하지 않고, 즉 혼인 상태는 유지한 채 서로 보지 않겠다는 졸혼을 한 건지 확실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렇게 갈라졌고, 이때 세 딸 모두 어머니를 선택했다.


  책을 넘기면 “어머니에게”라는 헌사가 나오고 한 장 더 넘기면 이런 경구가 씌어 있다.

  “유년 시절은 과거시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짓말의 공장이다.”


  이 책에서 사실인 것은,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성격이라는 것 말고는 없다. 아버지가 하필이면 불행하게도 편집증적인 증세가 심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한 상태였다는 거. 아버지가 어머니를 의심할 때 처음부터 아내를 두드려 팼겠느냐만, 일단 손찌검을 시작하게 된 후에, 그 심각함이 날로 더해졌겠지. 많은 이탈리아 남자가 가지고 있던 주취폭행 성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작중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온전히 편집증, 신경정신과적 증상이다. 작중 시점이 휴대폰도 나오지 않았을 때이며,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드려 팬 시기는 작중 시점부터 30년 이상을 더 과거로 밀어내야 하니까 1960년대쯤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아무리 이탈리아가 G7 가입국이라도 의처증이라는 이름의 편집증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편집증은 누구나 갖고 있는 질환이기는 하지만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의 중증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하고, 심하면 입원도 해야 할 질병이다. 이런 상태를 환자라고 생각해야지, 나쁜 인간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다. 편집증 증세가 있는 여성에게 시달림을 받는 남성도 많다. 폭력 같은 가시적 증거로 나타나지 않아서 모르고 있을 뿐이지.

  델리아가 나폴리의 한 골목에서 살 때, 델리아도 틀림없이 어머니가 카세르타와 함께 있는 것을 봤다고 믿는다. 이때 델리아가 네 살. 이 기억이 틀림없을까?

  확실한 건,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드려 팼고, 코피를 터뜨렸으며 옆구리를 발로 찼다는 거. 아버지와 필리포 삼촌이 카세르타를 찾아가 곤죽이 되도록 엎어치고 메쳤다는 거. 이제는 늙어서 많았던 검은 머리카락이 거의 빠져 뾰족한 머리통을 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가 이야기해주듯, 카세르타가 집으로 어머니 선물로 장미꽃다발, 나폴리식 맛난 쿠키 같은 걸 자주 선물했다는 거. 그때마다 편집증이 유별난 아버지는 발광을 했다는 거. 카세르타도 미친놈이지 남의 아내한테 장미꽃다발 선물을 왜 하니?

  그렇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필리포 삼촌과 카세르타 씨의 시절까지는 하여간 자기들이 저질렀거나 기질로 가지고 있는, 당시엔 ‘성격’이라고 불리던 의처증 또는 편집증 때문에 인생을 조졌다고 치고, 그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조진 것인지, 어머니의 자살을 계기로 로마에서 고향 나폴리로 돌아온 화자 ‘나’, 만화가 델리아 선생은, 어머니의 빈 옷장과 고급 남자 셔츠 한 장, 그리고 어머니가 입던 누더기 속옷을, (조금 후 알게 되겠지만 어머니가 델리아의 생일선물로 주려고 가져간) 옷가방을 교환하자고 제의하는 카세르타 등등을 감안하여 과거를 추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보탤 다른 기재는 자신의 기억. 만 네 살짜리 어린 아이의 기억. 과거시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짓말의 공장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의 결말 가운데 70~80퍼센트는 가정hyposesis이다.

  ‘가정’보다 더 허구적인 건 없다. 이 작품 속 작가의 기억은 그래서 완전히 거짓말이다. 하다못해 폭력의 장면도 그러하다.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발로 차이는 바람에 어머니는 침실 장롱까지 날아갔다. 어머니는 일어서서 벽에 걸린 그림을 모조리 찢어버렸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거침없이 다가가 머리채를 붙잡고 장롱 거울에 머리를 박아 거울을 깨뜨렸다.” (p.228)

  네 살 유아의 기억. 자라면서 TV를 많이 봤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거울을 박아 깨뜨렸으면, TV/영화처럼 깨진 거울이 중력에 의하여 한 번에 와장창 쏟아졌을 터이고, 깨진 거울면은 생각 외로 날카로워 TV/영화와 달리 아버지의 손등과 팔뚝, 어머니의 뒤통수와 불운했다면 목의 혈관까지 다 절개해버렸을 터이다. 어머니의 머리는 인체에서 가장 두꺼운 두개골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었겠지만 혈관이 유별나게 조밀한 머리피부도 다양한 열상으로 말도 못할 만큼의 피가 터졌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기억에 사무칠 엄청난 피칠갑에 대한 묘사는 없다. 유리가 깨져 사람이 다친 현장을 본 경험이 있는 독자는 이 장면도 진실이 아니라 네 살 먹은 유아의 상상이 만든 그림이라고 여겨 마땅하다.

  몇 가지 되지 않는 증거로 엘레나 페란테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남성들을 창조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것도 페미니즘이라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이런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는지, 혹시 페란테의 유년시절에 델리아가 자신이 당했다고 상상하는/믿는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자 김지우가 쓴 해설을 보면 결론이라서 내가 여기서 대놓고 말할 수 없지만 델리아가 결말부에서 “기억속에 묻혀 있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p.290)고 했다. 나는 이 “충격적인 진실” 역시 정확한 사실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저 작품의 결말에 어울릴 만한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픽션”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그래서 작가도 “유년시절은 거짓말의 공장”이라고 제일 앞에서 말했던 것이라고. 독자는 가끔 자신이 지금 픽션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나쁜 사랑 삼부작? 나는 이걸로 삼부작은 그만 읽기로 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이젠 독한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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