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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달과 불
  • 체사레 파베세
  • 9,000원 (10%500)
  • 2018-02-28
  • :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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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쿠네오 지방의 산토스테파노벨보(Santo Stefano Belbo)에서 1908년에 태어난 소설가, 시인, 역자, 문학평론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후 교육은 서부 알프스 남부를 면한 토리노의 마시모 다젤리오 고등학교에서 받았는데, 특히 영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월터 휘트먼의 시에 관한 논문을 써서 토리노 대학을 졸업한다.

  1908년생이 20대를 맞으면 1930년대. 이탈리아는 일 두체, 무솔리니가 집권하여 반도 전체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파시스트들이 창궐한다. 파베세 주변에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비정치적인 성향의 파베세도 반파시즘 서클에 가입했을 지경인데, 1935년에 정치범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죄목으로 체포당해 잠깐 형무소 구경을 하고 남쪽으로 유배 비슷한 confine(유배, 추방) 당하기도 했다. 이후 파시스트 군대에 소집되었으나 천생 약골인 파베세는 마침 천식이 도져 군병원에서 반년 동안 천식만 다스리고 돌아온 꼴이 되었으니, 이걸 뭐라 그래? 맞다. 새옹지마塞翁之馬. 다시 토리노에 돌아오니 그곳엔 벌써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친구들 대부분은 항 독일 파르티잔을 꾸려 산으로 들어갔다. 파베세는 마음은 굴뚝이지만 차마 파르티잔까지는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토리노에 남아 있으면서 독일군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북부 이탈리아 시골의 한 언덕에 몸을 숨긴다.

  전쟁이 끝난 후에 파베세는 이탈리아 공산당에 입당해 당의 신문인 <루니타>에서 일했다. 종전이 1945년이고 파베세의 몰년이 1950년이니 이 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때가 그가 가장 활발하게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시기였단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고향인 피에몬테의 랑게 지방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당연히 출생지인 산토스테파노벨보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달과 불>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족이 다 고향을 떠 대도시에 살았으면서도 해마다 파베세와 파베세의 아버지가 태어난 산토스테파노벨보에서 여름을 지내는 걸 행사처럼 했던 모양이니.

  이후 파베세는 여배우 콘스탄스 다울링과 짧지만 격렬한 연애를 시도했다가 장렬하게 걷어 채이고, 그래서 우울증이 조금 도졌나 싶은데, 정치적 환멸까지 덮치는 바람에 엣다 모르겠다 싶어 안정제, 바르브투르산염을 한 주먹 꿀떡 삼키고 그 길로 천국의 안녕을 찾아갔으니 그의 나이 마흔둘, 한반도에선 낙동강 전투가 한참이던 1950년 8월이었다.


  <달과 불>의 무대는 파베세가 태를 묻은 땅 산토스테파노벨보 마을이다. 화자는 이곳에서 태어나 세상을 둘러보고 재산을 불린 상태로 일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돌아와 여름을 지내는 ‘나’. 얼핏 생각하면 ‘나’가 작가 체사레 파베세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다. 이 책은 픽션. 그래도 작가가 외부에서 얻은 경험이 없었더라면 작품을 이렇게 쓸 수 없었을 터이니 당연히 작가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어머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당연히 산토스테파노벨보, 즉 살토 마을에 집도 없다. ‘나’는 살토 마을의 알바 성당 계단에 버려졌다. 서양에서는 사생아를 낳기는 했는데 키울 자신이 없으면 대개 성당이나 교회 계단 앞에 바구니에 넣어 버리는 모양이다. 우중충한 소설 <리틀 라이프>에서도 주인공 주드 역시 교회인가 성당 옆 쓰레기더미 위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발견된 거 기억하시지? 이런 아이들이 크면 다 주인공 한다니까?

  알바 성당의 주임신부는 ‘나’를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에게 키우라고 했는데, 이 부부는 벌써 두 딸 안졸리나와 줄리아를 둔 지독하게 가난한 농부였다. 훗날 생각해보니 혹시 ‘나’를 거둔 이유가 내 덕분에 빈민구제원에서 매달 5리라씩 나오는 양육비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는 했다. 당시 맡겨진 사생아를 기르는 유일한 사람/계급은 가난한 (주로)농부 부부로 그나마 현금을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농부 파르디노는 ‘나’가 좀 더 자라면 여기 ‘가미넬라 오두막’을 떠서 더 큰 농가로 이사해 ‘나’와 함께 일하면서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키우려 했던 듯하다. 바르질리아와 파르디노는 결코 ‘나’에게 티가 날 만큼 못되게 굴지 않았고, 두 딸 역시 친형제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면 합리적인 남매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낸 듯하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 ‘나’가 열두서너 살에 이르자 바르질리아가 병들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디노는 가미넬라 집을 팔아 두 딸을 데리고 코사노로 이사했다. 나는 가미넬라 오두막에 비해 무척 큰 모라 농장의 하인으로 보내 버리고. 알고보니 파르디노 역시 코사노의 농장 하인으로 들어간 거였다. 나중에 나오는데, 두 딸 모두 결혼했지만, 동생 줄리아는 결혼하자마자 들판에서 일하다 번개를 맞아 즉사했으며, 안졸리나는 아이를 일곱인가 줄줄이 낳고 없는 살림에 엉망으로 살았던 모양이다. 파르디노는 사위들한테 핍박을 받으면서 나중에는 코사노 마을의 성당 부근에서 동냥을 하다가 거리에서 죽었나? 하여간 비슷하게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모라 농장에 하인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당당한 성인으로 자라 관리인도 함부로 소리치거나 채찍을 들지 못하는 지위를 얻는다. 농장 주인 마테오 씨는 먼저 세상을 뜬 첫 아내와의 사이에 다 큰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를 두었고, 두번째 결혼하여 얻은 계모 사이에 작고 예쁜 딸 산티나를 낳았다. 이곳에서 온전하게 사춘기를 보낸 ‘나’는 당연히 농장주의 두 딸 이레네와 실비아에게 상당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과정을 지극히 무난하게 거쳤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를 했더라면 잘 했을 거 같다. 사춘기의 폭격을 잘 다스리기가 쉬운 게 아니거든. 특히 어린 수컷들 말이지. 근데 이레네와 실비아는 지금이 딱 십대 말부터 이십대 초기이니 어찌 혼담과 연애담이 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라 농장에 피어난 두 꽃을 따기 위해 탐욕스런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고, 꽃송이 둘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꽃 모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불행한 생각은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분방한 실비아는, 동네에서 1번은 아니더라도 꽤 있는 집의 음전한 처녀지만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뱄고, 자기 딸이 이런 신세가 됐다는 걸 안 마테오 씨가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재수없게 딱 시기가 맞아서 그랬는지, 이 사실을 알자마자 뇌졸중이 발생해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다. 실비아는 자기 일이니 자기가 처리한다고 독한 마음을 먹고 당연히 무면허 산파를 찾아가 중절수술을 해버렸는데, 다음 날 돌아와 매트를 피범벅으로 만들더니 그 길로 죽어버렸다.

  이레네는 집안이 이렇게 어지러워지자 어쩔 수 없이 동네에 좀 사는 집 건달 아르투로와 결혼했다. 집 재산의 절반을 뚝 잘라 지참금으로 만들어서. 결혼하자마자 아르투로는 농장으로 들이닥쳐 이레네 소유의 모든 부동산을 팔아버리고 토리노로 이사한다. 워낙 술과 도박에 일가견이 있는 사위 아르투로는 금세, 정말 눈 깜빡 할 새에 이레네의 지참금을 날려 버리고, 이제 이레네를 들들 볶기 시작한다. 아무리 볶아도 이젠 평소 얌전하고 착한 심성에 피아노까지 잘 치는 이레네를 눈에 가시처럼 싫어한 계모한테 5리라짜리 지폐 한 장 얻어내지 못하자, 아르투로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숨이 넘어가지 않는 이레네를 때리기 시작한다. 이레네, 조금만 참아라. 세월은 빨리 갈 것이고, 술 처먹고 도박하는 네 남편이 너보다 훨씬 먼저 약해질 터이니 그 때가 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복수할지어다.


  한편, 젊은 시절의 동네 악사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누토. 행사나 축제, 무도회가 있으면 그곳이 벨보강 인근의 지역사회이기만 하면 악단을 꾸려 달려가 밤새도록 몇 날 며칠 동안 클라리넷 불고, 트럼펫 불고, 술 한 잔 마시고, 또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다시 연주하고, 춤추고, 포도주 마시고, 연주하고, 술과 고기 먹고, 새벽놀이 지고, 춤꾼들이 전부 뻗어버리는 것을 보고난 다음에, 식당 옆 아무 곳에서나 악단들과 찌그러져 자다가 변변치 않은 수고료를 받으면 단원들끼리 또다시 포도주와 걸진 고기를 먹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상 최대의 낙으로 삼았다.

  그래도 머리가 깨어 일찍 글자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워, 하여간 활자가 찍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면 무조건 읽고 보는 성격이라 아는 게 많았다. 특히 유산자와 무산자, 재산의 생성과 분배, 그리고 계급에 관해서는 아주 빠삭해 훗날 공산주의자가 될 충분한 자질을 쌓았다.

  음악을 연주하면 신나고 좋기는 하지만 집에 가져가는 것이 거의 없는 걸 깨달았다.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이제 인생을 탕진하는 것이 지겨워졌고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업인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손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라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음악은 자기를 지배하는 나쁜 주인이란다. 인생을 탕진하는 악습만 붙여주는 주인. 누토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음악 대신 차라리 여자한테 빠지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누토는 ‘나’에게 달과 불에 관한 미신을 말해준다. 예컨대 보름달이 떴을 때 소나무를 자르면 벌레들이 다 먹어버릴 것이라는. 나무통은 초승달이 떴을 때 씻어야 하고, 접붙이기도 초승달 무렵에 하지 않으면 잘 붙지 않는다는 미신. “만약 달과 불이라는 미신을 이용해 농부들을 강탈하고 무시 속에 머물게 한다면, 바로 그가 무지한 자이며, 그를 광장에서 쏘아 죽여야 한다.”고 즉 미신을 퍼뜨려 가난한 농부나 생산자를 강탈하는 계급, 부르주아 계급을 척결해야 한다는 누토의 공산주의적 생각이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자며 공산당 기관신문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작가가 쓴 작품인 것을 읽는 내내 감안하는 것이 좋다.


  ‘나’는 전쟁 전에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밀라노에서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전쟁 기간 중에 제법 돈을 만진 다음,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큰 돈을 일구었다. 작가 체사레 파베세가 그랬듯이 작품 속 주인공 ‘나’는 작년부터 8월 중에 그래도 ‘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고장 산토스테파노벨보에 와, 광장에 있는 안젤로 여관에서 두 주일 정도 묵었다. 이 기간 동안 성모승천대축일, 8월 15일도 끼어 있어 옛 생각을 하며 가톨릭 축제와 무도회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구경할 수는 있다. 예전 친구 누토가 미친듯 클라리넷을 연주하던. 가톨릭 믿는 사람들은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시가행진, 축구시합, 가면무도회 등 시끌벅적한 축제를 벌인다. 성모승천대축일. 성모가 승천했다니까 죽었다는 얘긴데 성모 마리아가 죽은 게 그리 기뻐서 축제를 연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우리가 아는 죽음이 아니라, 성모니까 성자 즉 그리스도와 성부聖父이자 성부聖夫인 하느님 가까이 곁으로 가는 길이니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올해도 ‘나’는 고향에 왔다. 마흔이 넘었고, 떠나기 전보다 더 커진 몸을 가진 건장한 사내. 사람들은 ‘나’가 집을 사러 돌아왔다고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서,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일 것이라 여겨 자기 딸들을 인사시키는 데 여념이 없다.

  ‘나’는 고향을 둘러보기 원한다. 벽돌 하나, 나무 하나하나, 포도밭과 염소, 개울, 수풀, 밀밭 등등. 다 자신의 흔적이 묻은 곳. 그리고 가미넬리 오두막과 모라 농장의 변한 모습과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을 향한 일종의 그리움과 회한과 이젠 흐려져 없어지고 만 언짢음. 특히 당시 자기보다 조금 더 위, 그리고 또래나 약간 작은 나이의 아가씨들은 어떻게 됐을까?

  공산주의자 친구 누토와 함께 ‘나’는 고향 살토 마을 인근을 걸으며 만나고, 보고, 듣는다. 이탈리아 작가들의 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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