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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 9,000원 (10%500)
  • 2019-06-26
  • : 4,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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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매체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한 거 같은데”라고 썼으니, ‘전적으로 그렇다’고 주장하기엔 뭔가 애매하다와 비슷한 수준으로 받아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말해자면, 출판사들이 더 이상 최영미의 시집을 찍어주지 않아서, 혹은 찍지 않을 거 같아서, 최영미가 아예 자기 출판사, 흔히 말하기를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자기 책을 내게 됐다는 걸 본 것도 같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도 같고 뭐 그렇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2024년 4월 17일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


  “최 시인은 2019년 1인 출판사(이미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이후 주요 문학 전문 잡지의 원고 청탁이 끊기면서 시를 발표할 창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에도 문단의 '왕따'긴 했지만, 이젠 확실히 왕따가 된 느낌’이라며 웃었다.”

  최영미가 문단 내 최고급 괴물을 건드렸거든. 누군지 아시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 같다고, 매년 가을이 되면 입 가진 자들이 떠들고 다니던 전직 중이자 꼰대. 최가 En의 개판무인지경 손버릇을 까발린 것이 2018년. 그해 2월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하 좍 붙여넣기 했다가 싹 지웠다. 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여간 “이미출판사”의 사장이자 영업담당 상무이자, 홍보이사, 재무이사, 총무부장, 사환, 청소부를 겸하는 최영미는 2019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자신이 쓴 한 두 권의 시집과 소설책을 출판했다. 내 책꽂이에 꽤 오래 꽂혀 있던 <청동정원>은 은행나무에서 찍은 것이었고, <서른, 잔치…>도 창비시선이었다가, 계약기간이 지나가도 출판사들이 정말로 중판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몽땅 다 이미출판사에서 다시 냈다. 하긴 뭐 시 청탁을 받지 못하는 시인 신세였으니. 최영미의 왕따는 아직도 지속중인 거 같다. 전적으로 최영미 개인사정이니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겠다. 차라리 그게 도와주는 일인 거 같아서. 독자는 시나 읽자.

  이 시집은 한 편 빼고 모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쓴 시를 모았다. 이 기간 동안 문단 내 성추행, 소위 En 사건이 터졌고, 비슷한 시기에 생활보조금 신청대상자 최영미가 유명 호텔에 1년간 무료 숙박을 요청했다는 소식도 매스컴에 크게 소개되었으며, 이것저것 합쳐서 최영미가 최고 왕따로 등극했던 시기 아닐까 싶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써야 했겠지. 평생의 업이니 할 수 없지 뭐. 이미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는 조금 알만 했던 때라, 시집의 첫 노래는 이랬다.



  밥을 지으며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전문. p.11)



  읽는 순간 뭘 이야기하는지 탁, 알아챌 수 있어서 좋다. 원래 사는 게 그렇지. 힘들지 않으면 그건 사는 일도 아닌 걸 뭐. 밥 지어먹는 일을 대충 했다는 건 사는 일도 비슷하게 대충 살았다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인 자신의 말대로 개나 소나 다 따는 박사학위가 없어서 대학 강사 노릇도 못하고, 개나 소나 다 듣는 교육학 학점을 따지 않아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도 못하니 차라리 서울대 나온 게 밑지는 장사 같고, 열라 시 써서 시집 내 봤자 인세 받는 걸로 먹고 사는 건 애초에 포기해서 그나마 돈 좀 될까 싶어 소설도 써봤건만 그것도 별로 팔리지 않는다. 도무지 되는 게 없는 팔자. 이런 팔자를 타고난 인간을 아마 ‘슐레밀’이라고 할 걸? 토머스 핀천의 책에는 확실하게 나오고,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도 나오던데 그 책 제목과 작가는 벌써 잊었네. 그래서 대충대충 살았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 이 시에 큰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전쟁만큼 힘들”었다고? 전쟁, 전쟁, 전쟁?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이란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에는 “시작 메모”라는 글이 붙어 있다. 전문을 옮긴다.



  엄마의 병실에서 돌아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를 읽으며 여름을 보냈다. 어느 가수가 실비아에게 바치는 노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를 듣는데 가슴 속에 뭔가 꿈틀댔다. 익숙한 쓰라림,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왔다. 가슴에 불이 켜져도 시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사는 게 피곤해서인가. 너무 피곤해도 시가 달아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시가 도망간다. 생각하지 않고, 만들지 말고, 받아 적어야 좋은 시가 나오는데, 만들어지면 그래도 다행이다. 언젠가 아무것도 끄적거리고 싶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니.    『시인수첩』 2016년 겨울호   (p.17)



  “시작 메모”를 시인은 무슨 생각으로 붙였을까? 차라리 소설을 쓰지. 헛되이 벽을 때렸다는 시를 썼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뭐가 아쉬워 본문 정도의 분량으로 사족을 달았는지, 최영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 이상하다. 이것도 현대 자유시의 한 표현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시 한 수로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시작 메모”를 써야 했다면 어째 곱게 보이지 않는다. 밥 지어먹는 것도 힘들고, 사는 게 피곤해서 시가 써지지 않을 정도라면 잠깐 쉬어야지 그걸 어떻게 하겠어? 물론 시인의 가오가 있어서 식당에 가 설거지 알바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딱 자기 입으로 사는 게 피곤하다는 걸 노래가 아니라 문자로 밝혀야겠느냐는 말이다. 오히려 이게 더 가오 죽는 일 아닌가 싶다.

  시로, 노래로 하자면 아무리 궁상스러운 삶을 토해내도 읽는다. 독자에 따라 시인과 함께 흑흑 흐느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혼자 울게 내버려둬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제발 그냥 내버려둬  (전문. P.21)



  시인이 까칠한 건 맞는 거 같다. 시를 읽어보니 여러가지로 왕따 당할 짓만 골라 한 시인. 전투력 95, 그러나 사회성 17. 그렇게 사는 일도 좋기는 한데, 그러려면 인생이 외로운 걸 우짜나. 하긴 뭐 어쩔 수 없다. 팔자가 그런데 어떻게 고쳐. 다 업이지, 업. 시집을 냈을 때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 57세. 우리 나이로 하자면 59세. 윤석열 정권에서 딱 하나 잘한 일이 나이를 만으로 세게 한 거다. 57세와 59세는 불과 2년 차이지만 느낌이 어마어마하잖아? 그럼에도 벌써 아쉬운 게 있으니, 최영미의 시에서 늙음을 숨기지 못했다는 거. 예컨대.



  지하철 유감



  내 앞에 앉은 일곱 사람 중에

  청바지를 발견할 수 없다면

  청바지를 앉히지 않은 의자가 있다면,


  내 앞에 앉은 일곱 남녀 가운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이 스마트한 문명을 용서해줄 수 있다  (전문. p.63)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쳐다보느라 일상에 거치적거리는 인간을 싫어하는 족속의 일원으로, 최영미의 시에, 좋은 시라고 하긴 어색하지만, 동감 또는 공감하는 바이건만, 대개 이런 공감 또는 동감은 꼰대들만 이 비슷하게 생각하더라고. 하다못해 남자 화장실 가면 소변기 위에다 휴대전화 올려놓고, 한 손으로는 물건 지탱하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열나게 스마트폰 조종하는 것들도 있다니까? 도서관 복도를 정상속도로 걷다가 갑자기 우뚝 서서 뒤 따라오는 나하고 우당탕 부딪히면, 이 아가씨한테 어쨌든 몸이 부딪혔으니 남자인 내가 미안해다 해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 갑자기 서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를 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하고. 이런 마음 가지면 그건 꼰대라니까. 영미씨, 사느라 애썼다. 이렇게 사는 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예정에 없던 음주



  위로받고 싶을 때만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하는 척했다  (전문.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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