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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상하이 폭스트롯
  • 무스잉
  • 13,500원 (10%750)
  • 2024-12-02
  • :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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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무스잉. 한자어로 목시영穆時英. 《상하이 폭스트롯》이 단편집인데, 열강들의 중국 조차지가 득시글했던 상하이를 무대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청춘들이 세상이야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댄스홀, 카바레 등지를 휩쓸면서 춤과 젊음을 즐기는 작품이 많아서, 하여간 무대가 20세기 초중반이니까 이렇게 생각했던 걸 용서해준다면, 작가가 여성인 줄 알았다. 이름에 꽃부리 영英자를 쓴 것이 그리 단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기도 했고. 외갓집에 여동생이 일곱이 있으니 순서대로 선영, 은영, 수영, 혜영, x영, 신영, 지영, 아이고, 다섯 번째는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딸들한테 마지막에 돌림자로 영英자를 썼다. 이런 내력 때문에 무스잉을 여성인 줄 알았으니 웃기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든 자기 형편을 기준으로 생각해버리는 거. 설마 세상에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무스잉은 1912년 중국 저장성에서 은행가이자 금 투자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위키피디아 기록에는 아들과 성씨가 다른 무武 씨로 썼는데, 친아버지 맞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무穆씨가 맞을 듯하다. 세상의 위키피디아도 타이포 에러는 생기나 보다. 주목할 것은,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에서도 나오는 바, 1932년에 동아시아를 휩쓴 대형 사건이 있었으니 관동대지진. 당시 천하 진재를 바로 앞두고 무스잉의 아버지 모징팅 선생이 금을 대량 사들였던 모양인데, 일본의 천재지변 때문에 하루 아침에 금값이 6백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 쳐버렸단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이해가 될 듯하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상황인데, 이런 거 따지기 전에 하여간 무스잉 집안은 마른 하늘에 번개를 맞아 하루 아침에 쪽박을 차게 된 거다. 책에 실린 <나이트클럽의 다섯 사람>에서 “황금왕 후쥔이”라는 등장인물이 있어 하루아침에 자산이 6백분의 1로 줄어들어 마지막으로 애인이자 왕년의 은막 스타 황다이첸과 함께 상하이의 최고급 나이트클럽에서 최후의 만찬과 댄스파티를 즐기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관동대지진 1년 후인 1933년에 죽었지만 어떤 형태로도 자살은 아니고 쫄딱 망한 후유증으로 탈진과 우울증을 겪다가 숟가락 놨단다. 이것도 위키피디아에서 따 왔다.


  1920년대부터 중국의 문단 역시 세계 사상계의 주류에 맞추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 팽배했다. 그렇단다. 내가 뭐 아나. 검색하다 보니 2017년에 고려대에서 있었던 심포지움 내용이 눈에 들어와서 냅다 인용한 것뿐이다. 독후감 하나 쓰려고 별것을 다 검색한다. 이렇게 한 문예사조가 팽배할 때, 작가가 그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양식만 고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봤다. 1980년대 중반, 연도로 보면 1985년 이전의 시부터 시작해, 이후로 전 문예장르가 일제히 리얼리즘 참여문학으로 기울었다. 이때 함부로 서정시나 모더니즘 문학을 거론하면 입 떼기가 무섭게 발언의 장에서 물러나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 모더니즘 계열, 당시 표현대로 문지파들은 전부 사망했느냐고? 아니지. 일종의 지하에서 끈질기게 흐름을 이어갔지. 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스잉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를 읽어보고 그리 짐작했다. 작품집의 표제 《상하이 폭스트롯》와 어울리지 않는 작품 <팔이 잘린 사람>은 아들 하나를 키우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남편)이 벽돌 공장의 기술자가 아닌, 단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숱하게 많은 노동자의 팔, 다리, 목, 그리고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허리까지 한 순간에 싹둑 절단해버리는 절삭기에 한 손을 잃어버리고, 회사로부터 보상금 30위안을 받고 해고당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무스잉은 애초에 서양문학에 경도되었다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해 중국으로 유입된 ‘신감각파’에 뜻을 둔 작가로 <팔이 잘린 사람>이라는 작품을 (뭘 알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읽기로는) 무지하게 한심한 수준으로 쓰고 (염치도 없지!) 작품을 팔았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초장에 다른 것도 아니고 ‘꿈’을 빙자해 복선을 와다다닥 쏟아버리면 그게 ‘현대’ 소설이야? 같은 기계가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사고를 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이 1도 없는 것이 어째 사회주의 리얼리즘, 쉽게 말해 소설 같지도 않은 고리키의 <어머니>나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에 비할 수 있느냐는 말이지. 무슨 말이냐고?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보다 못하다는 얘기지 뭐. 아이 씨. 너무 과하게 썼다. 반성한다. 그래도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출판사와 역자에게 미안하지만.


  그리하여 무스잉, 이이의 본류는 1930년대에 돈과 시류와 정치와 외세의 침략과, 마오와 장의 투쟁과는 전혀 관계없이 노동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부르주아 자제들, 이 가운데서도 서양, 그리고 일본의 신문물에 흠뻑 취해 신세대 연애와 폭스트롯을 선봉으로 하는 댄디즘 신봉자들의 풍속도만 그려도 충분했을 듯하다. 누구나 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혁명에 대한 봉사로 문학을 구상할 때였다. 그래도 그런 가운데 천생 부르주아의, 그것도 적수공권에서 시작해 대부분 중국인들의 로망인 거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빠 물총 잘 맞아 날 때부터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으로 태어나 사타구니에 터럭이 돋고 처음엔 은근히 시작해 조금 지나 노골적으로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이 쏟아질 무렵에 대도시 상하이, 베이펑(北平: 베이징 이전 이름)에서 나이트클럽, 카바레를 섭렵하며 연애활동에 매진하는 모습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라고?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차라리 무스잉은 그쪽 방면으로만 몰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기 홈 그라운드 장르가 그쪽이면, 그쪽에서만 열라 글을 써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아닐지언정 그나마 세계문학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있으면 “중국 신감각파의 스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

  그러나 비극이 탄생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신감각파”라는 것이 유럽의 모더니즘이 일본을 거쳐 일본 작가들 특유의 아리삼삼한, 미안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아리삼삼한 경항을 본뜬 것이라 당시 문학은 물론이고 살벌한 정치와 사상으로 양분된 중국 영토에서 무스잉은 잠시 홍콩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신감각파”의 나라 일본과 친한 친일신문 “중화신문”의 문예 부록지 편집을 하다가 반대파에 의하여 암살당해 죽었으니 1940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당연히 부일 친일파였던 이이의 작품이 읽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친일파 작품이라고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뭐 돈과 시간을 내서 읽을 필요까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도서관의 신간 입고 탁자 위에서 발견해 읽었다. 무지하게 조심하면서 이야기하자면,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죽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지적재산권에서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작가들. 근데 말씀인뎁쇼, 그리 오랜 작가들의 작품인데 왜 이제야 처음으로 책을 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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