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해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1962년생 임인년 범띠 아프리칸 미국 남자. 아버지와는 전혀 소통 없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는데 이 책엔 오직 아버지와의 관계만 두드러져 오호,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작가 가운데 <캐치-22>를 쓴 조지프 헬러와 커트 보니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를 하고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문예창작으로 예술학 석사를 추가했다. 심리학 석사. 작품 중에서 주인공이자 화자 ‘나’의 아버지가 웨스트 리버사이드 커뮤니티 칼리지 심리학과에서 20년간 임시 학과장을 지낸 인물로 설정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중요하지는 않지만 인지부조화, 책임감 분산, 스키너의 심리상자 같은 개론 수준의 심리학 용어가 출몰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그것 참. 이래서 작가의 바이오를 아는 것이 작품 읽고 독후감 쓰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니까. 2015년에 발표한 <배반>은 비티의 네번째 장편소설로 같은 해에 부커상을 받은 대표작이다. 그러나 우리말 제목이 좀 불만이다. 영어 제목이 <Sellout>. 이걸 출판사 열린책들 편집부와 역자 이나경은 <배반>이라고 표기하기로 합의했고, 위키피디아는 <매진>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Sellout>은 작품 속 주인공이자 화자 ‘나’의 별명이다. 눈을 뒤집어 책을 읽어봐도 ‘배반’이나 ‘매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서양소설에서 항용 그러하듯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별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써서 <셀아웃>이라 했으면 어땠을까? 뭐 내 의견이 그렇다는 거다. 출판사와 역자 사이의 계약이 끝나 절판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시 찍으면 어떤 제목일지 조금, 아주 조금 궁금하다.
작품의 무대는 로스엔젤레스와 면한 디킨스 카운티. LA 남부 외곽 빈민지역으로 노예해방 직후인1868년에 디킨스 시로 출발했지만 LA가 거대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LA의 한 카운티로 흡수됐다. 지역 이름이 하필이면 ‘디킨스’? 뭔가 사연이 많을 거 같지? 세상에 사연 없는 도시가 있으면 두 개만 대봐라. 이 카운티도 당연히 사연이 많지만 그것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디킨스’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애초에 ‘디킨스 시’를 설립할 당시 주민들이 “설립헌장”에 명백하게 밝혔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러하였다.
“디킨스는 중국인, 온갖 피부색과 방언과 모자를 지닌 스페인인, 프랑스인, 빨간 머리, 전형적인 도시인, 재주 없는 유대인이 없는 도시로 남을 것이다.”
이들을 제하고 남는 미국 내 인종은?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니그로, 깜둥이, 겁쟁이로 불리는 유색인. 이른바 흑인 커뮤니티다.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백인의 연간 가구평균소득이 113,149달러일 때, 히스패닉은 6,325달러, 흑인이 5,677달러였다고. 그리하여 원래는 넓고 넓은 지역이었지만 주변 LA의 더 부유해지는 커뮤니티에 의하여 디킨스 카운티가 점점 좁아지다가 화자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나 디킨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카운티 자체도 사라져버렸다고. 그래도 다른 지역의 특히 백인이 ‘나’에게 “어디 사세요?”하고 물어봐서 “디킨스요.”라고 대답하면 물어본 사람이 즉각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물어봐서 죄송해요!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줘요!”하고 탄원을 했단다. 한 마디로 극강의 우범지대라는 뜻이다.
‘나’의 아버지는 작은 말 농장의 마구간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꽤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대학의 임시 심리학 학과장을 20년간 해 자셨으니 나름대로 입신양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플로리다에서 사는 한 아가씨 로럴 리스쿡이 흑인을 위한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한 걸 보고 한눈에 반해, 1977년 9월호였는데, 잡지를 보자마자 소름끼치는 시를, 탱탱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노출한 자신의 사진을 동봉해 우편으로 보내 극적인 청혼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해 ‘나’ 셀아웃을 만들었다. 심리학자는 스스로 심리분석이 필요한 인간들만 할 수 있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이후 엄마 로럴 리스쿡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책에 나오지 않는다. 심리학자 아버지는 아들을 범죄의 온상이자 미래의 전과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학교에 보내는 대신 소위 홈 스쿨링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나’는 대가리가 커짐에 따라 깡마르고 멍한 검은 실험쥐로 성장했다. 주로 흑인과 백인 또는 타 유색인종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실험에 바쳐졌다. 심리학과 임시 학과장이자 아버지의 프로젝트를 위하여 늘 사회학 실험의 재료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기보다 역할을 피할 수 없었던 ‘나’는 기상천외의 실험마다 건건이, 사실 이건 발음하는 대로 ‘껀껀이’라고 써야 제 맛인데, 하여간 실험할 때마다 건건이 실험 상대방에 의하여 몸과 마음에 깊은 물리적 타격을 입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과 흑인 전체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을 부숴버린, 통계학적으로 무의미한 아들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로럴 양에게 ‘나’를 낳게 한 일과 연계해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사회심리학 실험 자체가 변태 엽기적이라 실험쥐가 줘 터지지 않을 수도 없었겠지 뭐.
키 크고 건장하고 깊고 호소력 있는 바리톤 음색의 아버지는 심리학 임시 학과장답게, 극악의 우범지대인 디킨스 카운티에서 난동을 벌이는 흑인 범죄자를 진정시키는 ‘니거 위스퍼러’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 카운티의 내로라하는 흑인 지식인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흑인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 디킨스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인 ‘덤 덤 도넛’으로 작품에서 중요한 장소와 모임이지만 독후감 분량을 감안해 생략한다. ‘니거 위스퍼러’가 주로 상대해야 하는 범죄자 니거들이 피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 바로 경찰. 또 니거 위스퍼러의 주요 활동 시간도 깜깜한 야밤이란 것도 수긍하시지? 어느 날 범, 아버지는 무척이나 어두운 밤에 털털거리는 자기 차 옆에서 총알 네 방을 맞아 절명하고 만다. 범죄자 니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LA 경찰관이 확인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발사한 총에 복부를 맞아 죽었다. 이래서 ‘나’ 셀아웃은 정부로부터 아버지의 사망 배상금으로 2백만 달러를 받아 LA 카운티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 지역이자 우범지대이며 척박하기가 달 표면 같은 디킨스의 버나드 애비뉴 205번지에 있는 2에이커의 땅을 구입해 농장과 과수원, 목장을 만든다. 이름하여 도시 농장.
특히 미국 소설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난데없이 상속받아 한 순간에 부자가 되는 거. 그게 저 에우리피데스 시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비슷하게 작품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는 건데, <배반>에서는 아버지가 초장에 총 맞고 죽어 ‘나’ 셀아웃이 디킨스에 정착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니 이 비슷한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직 괜찮은 농업학과가 있다는 이유로 진학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농학과 부전공을 동물학을 공부한 ‘나’는 처음에 농장에서 타조 부화장을 만들어 래퍼, 프로 운동선수, 잘 나가는 배우한테 타조를 팔려고 했다가, 문화적으로 (특히 니거들한테)가장 가까운 식물인 수박과 마리화나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네모난 수박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째 반응이 좋지 않아 오렌지 말고 귤mandarin과 사과를 높은 당도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근데 2백만 달러의 부자가 그깟 농사가 잘 되는지 잘 안 되는지 뭐 그리 크게 신경쓸 거 있나? 하지만 한 가지.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수백 편의 영화에 출현한 전직 배우, 늙은 호미니가 스스로 ‘나’의 노예로 들어오기를 자처한다. 어린 시절 나름대로 은막 스타로 각광을 받았다고 착각하며 평생을 산 늙은이가 옛 시절, 흑백 분리 정책이 성행하던 자신의 황금기를 그리워해 ‘나’를 ‘주인님’이라 칭하며 조금 잘못한 것을 가지고 등에 채찍질을 하라고 안달을 하기도 했으니, 이거 미친 거 아냐?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당연히 픽션이지만 이후에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나 디킨스의 공립 중학교 가운데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사회 중산층 정도의 교양인으로 성장할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고민하는 교감 카리스마 여사. 교감과 ‘나’는 여러모로 궁리하고 경험적으로 판단해보니, 오히려 흑백 분리가 되었을 경우에 니거들이 백인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고 싶어 더 애를 쓰는 경향을 발견한다. 이때 늙은 노예 호미니의 생일을 맞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나’의 첫사랑이자 지금은 유부녀인 버스 운전사 마페사가 뜻을 모아 버스 안에서 생일 파티도 하고, 그가 원하는 흑백 분리를 위하여 특정 좌석에 이런 스티커를 붙인다.
“노약자와 백인 승객 전용좌석”
주인공의 여자가 항용 그러하듯이 현명한 마페사는 호미니의 생일이 지나도 이 스티커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운행을 하고, 스티커 문구를 본 흑인들은 오히려 더욱 긴장해 서로 인사도 하고, 예의도 반듯해지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놀랍지? 기억하셔야지. 작가 폴 비티도, ‘나’의 아버지도 심리학 전공자이다. 그러나 아무 곤란 없이 생각한대로 잘 나가기만 하면 재미없지. 21세기. 버락 오바마가 두번째 임기 중인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시절에 흑백 분리? 인종차별? 이게 말이 되나? 그리하여 사건은 당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
분리와 평등의 문제. 21세기에 분리해서 평등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진퇴양난의 딜레마. 반면에 디킨스에서 니거들이 도모했던 “분리되고 별로 평등하지 않지만 전보다 형편은 훨씬 나아지는” 것이 미국의 헌법가치에 (합당하지는 않지만)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기한다. ‘분리’와 ‘평등’ 사이에 ‘흑인’이라는 매개변수가 들어갈 경우에.
미국의 아프리카계 시민한테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생 동아시아의 끄트머리에 살고, 덩치가 산만한 흑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아시아 인들이 얻어 터지는 뉴스나 동영상에 숱하게 노출된 입장에서 뭐 지들끼리 그러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겠지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 주로 중국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3국 사람들은 부지런한 공부벌레 출신이라 백인을 능가하거나 동등한 수준의 연 수입을 얻는 (별로 바람직하게 묘사하지 않는) 종족으로 치부할 뿐이다.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과 말장난이 과하다. 대단한 입심인 건 알겠는데 참 다양하게 말이 많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어쩌면 내일 독후감을 쓸 작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것도 다인종사회의 흑인병 가운데 하나? 아니, 취소.
그래도 재미있다. 적당히 야해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충분히 읽을 만하다. 아쉽게 품절. 헌책방이나 도서관 이용하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