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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간과 강
  • 동이향
  • 16,200원 (10%900)
  • 2025-04-17
  • :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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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 살면서 아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공연문화에 소외된다는 거다. 하긴 모든 문화행위가 서울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대강 열 시가 훌쩍 넘는데 여차하면 버스 끊기고, 열차 끊기고 총알 택시 타고 가기는 싫고, 차 몰고 가려면 복잡하고 뭐 이런 저런 핑계로 저절로 멀어지게 되더라. 그리하여 이제야 동이향이라는 극작가를 알게 되었다니, 아무리 핑계를 대더라도 너무 무심했다. 올해 쉰살.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나 전공과는 무관한 학창시절을 보내 2학년 때 첫 희곡을 쓰고, 주로 연극판을 따라다녔단다. 졸업해서 잡다한 일을 하다가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공부도 좀 하고, 한겨레신문사 여성월간지 기자도 하다가 망원동에서 ‘이 행성의 이행성을 위한 극장’을 운영하는 ‘극단 두’를 만들어 극작과 연출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계속 하는지는 모르겠다. 5년 전에는 확실하게 그랬다. 윤영선 연극상,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경력이 있단다.


  동이향의 극작품을 평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어렵다거나 관념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한다고. 그럴 듯하다. 특정 스토리를 유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극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독자나 관객이 즉물적으로 이해하기가 거의 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뭐 관객이나 독자 나름이다. 작품마다 다 어렵거나 관념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극작가의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이지 확 내놓고 난해하지는 않다. 내 경우에는 다섯 편 가운데 뒤에 실린 소품 두 편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과 <지하철 존재론>이 낯선데 특히 <지하철 존재론>의 경우 “배우들의 신체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사운드와 공간, 말, 그리고 영상-브라운관들-을 공연의 매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움직임, 사운드, 공간, 브라운관 같은 것들을 종이 위에 문자로 표현했으니 연출자의 의도와 설명을 듣지 않은 독자가 도무지 요령부득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래전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연극 <산씻김>의 대본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씨, 그때가 그립네. 구경값도 헐해서 시간 나면 종종 극장에 들를 수 있었던 나의 20대.


  그런데 이제 나도 연식이 제법 돼서 그런가, 실제로 배우가 나와 공연을 하는 극작품에 살인과 자살(미수도 포함), 섹스가 나오는 건 점점 경원하게 된다. 물론 동이향의 작품이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 주제를 위한 장치로 사용하고, 심지어 어렵기는커녕 웃기는 장면으로 잘 윤색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어쩌랴. 내가 죽음이나 자살 같은 걸 경원하는 성향도 <암전>의 등장인물 조율사 H처럼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리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자주 사용해서 단지 식상했을 뿐이니까.

  재미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근데 아쉽게도, 오늘 낮에 읽었지만 이제, 많이는 아니고 조금 늦은 밤에 독후감 쓰려니까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 물에 빠져 죽으려 애쓰는 맥주 잘 마시는 여자 이야기 <간과 강>, 한 회사에서 스물 몇 명이 자살해버리는 <내가 장롤롤메롱문 열었을 때>, 삶(무대)의 한 가운데 갑자기 생긴 땅꺼짐에 떨어져 죽을 수 있는 <암전>. 이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독후감을 읽는 분들이 혹시 오해하실 지 몰라 덧붙이자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일 뿐 기본적으로는 무겁지 않게, 심각하지 않게 그리고 희곡으로 드물게 공들인 문장들로 된 작품이라는 거. 그래, 그래. 욕은 좀 나온다.

  신간 도서 서가에 있던 걸 찾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 말고 누가 희곡집을 희망도서 신청했을까? 궁금하다. 만나서 쐬주나 각 일 병씩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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