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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크리스티네 라반트. 이 책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 출판한 라반트인 모양이다.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을 떨쳐 국제 크리스티네 라반트 학회도 만들었고, 크리스티네 라반트 문학상도 제정되어 2016년부터 상을 주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크리스티네 톤하우저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이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1915년 7월 오스트리아 카린티아의 라반트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광부 아버지와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톤하우저Thonhauser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하던 1948년에 이름을 자기가 태어난 고장인 라반트Lavant로 바꾸었다.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패전국 산골의 다산 가정 자녀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줄 수 없었겠지만, 이중에도 불행한 아이들은 그로 인해 치명적 질병을 앓아야 했다. 이 악마의 발톱이 크리스티네를 할퀴었다. 신생아는 훗날 유방으로 성장할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음낭’ 또는 ‘왕의 악마’라고 불리는 질병, 마이코박테리아 경추 림프절염에 걸렸다. 사진처럼 목 부분에 만성적인 종괴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음낭처럼 생겼다고 ‘음낭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빈민 특별의료를 지원해 1924년, 아홉 살 때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종합병원에 입원, 안과과장 아돌프 프루처 박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 거의 잃을 뻔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와 그의 아내 폴라 프루처 여사가 크리스티네의 문학적 소질을 알아보아 릴케의 시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출판사를 알아봐 주는 등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아돌프라고 다 나쁜 종자만 있는 건 아니다. 원래 흔한 이름이었다가 전쟁 이후에 다시는 “아돌프”를 구경하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시력을 완치한 어린 크리스티네는 집까지 갈 교통비가 없어서 엄마와 함께 6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던 모양이다. 이때 병원에 입원하고, 병동에 입원한 소녀들, 주임의사, 간호사, 기타 관리인, 그리고 엄마/언니와 함께 퇴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 《정신병동 수기》 제일 앞에 실린 <어린 아이>에 고스란히 나온다.
대개 이 림프절염이 결핵부터 시작을 한다고. 그럴 확률이 청년일 경우는 대부분이고, 유소년일 경우엔 10퍼센트 미만이라지만 크리스티네는 1927년, 열두 살에 결핵까지 걸렸다. 혹은 결핵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다시 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 크리스티네한테 병원은 고선량의 뢴트겐을 사용해 “실험적으로” 치료했는데, 이것에 효과를 얻었는지 결핵은 거의 완치, 림프절염도 놀랄만큼 좋아졌다. 다만 고선량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머리 부분이 온도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성향을 지니게 됐다고. 그래서 이이는 이후 종종 머리에 스카프를 착용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1930년대 초반, 직업교육을 받다가 중도에 그만 둔 크리스티네는 다시 부모의 비좁은 아파트로 돌아와 그림과 글쓰기에 전념했다. 작품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 거의 출판을 할 듯하다가 결국 거절을 당했을 때 이이는 이미 깊은 우울증 상태에 돌입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35년에 수면제 서른 알을 한꺼번에 먹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사흘만에 다시 깨어나, 또다시 극빈층 의료지원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6주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하니, 이 때의 경험으로 쓴 작품이 이 책의 표제작인 <정신병동 수기>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당이 유대인 멸절에 앞서 시행한 것이 아리안 족의 탁월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형이나 불구, 유색인과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는 크리스티네 입장에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1938년은 1년 안에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생을 접은 다음이었다. 이제 특별히 기댈 만한 의지가지가 없던 라반트는 더욱 불안에 휩싸여 숨죽이고 살다가 39년에 서른다섯 살 연상인 화가이자 지주출신인 하버니히씨와 결혼했다.
특히 오스트리아 병합 후 불안 속에 살던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이의 여러 산문 또는 소설 작품은 스스로 발표하기를 꺼려해 결국 사후에 출간되기도 했는데, <정신병동 수기>도 이 범주에 든다. 아마 작가적 부끄러움이 그렇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책에서 표제작을 제일 먼저 읽었다. 생소한 시각과 생소한 문법을 사용하여 사물과 인물을 응시하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을 출판하는데 머뭇거렸을까? 실제 경험을 묘사한 작품이라 자신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많았으리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는 1964년에 과부가 되고 9년을 더 살다가 1973년 6월, 쉰여덟 살 생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뇌졸중으로 삶을 접었다.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를 길게 쓴 것은, 책에 실린 세 작품 가운데 처음 두 편, <어린아이>와 <정신병동 수기>의 내용이 작가의 경험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번째 작품 <마귀 들린 아이>는 앞의 둘과 다른 내용, 서양 중세시절부터 내려오는 기형아이에 관한 미신을 아직도 믿는 시골 지역 이야기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체인즐링Changeling.
아기가 기형이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녀 치타는 소리를 듣고 내용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 아마 선택적 실어증 같다. 아이들과 놀 때,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짧지만 한 문구를 우물우물 말하고는 한다. 북쪽의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렌츠라는 이름의 하인이 등장할 때까지는 그나마 어린아이 답게 천진하고, 귀여움도 받고, 벙어리라 은근히 더 배려도 받으면서 잘 지냈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일 터이니까 자연스럽기도 하다.
렌츠가 체인즐링, 아기 바꾸기 이야기를 한다. 젖먹이 치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마귀가 나타나 치타의 몸에 자기 새끼를 씌우고, 치타는 마귀가 데리고 갔다는 거다. 유럽 지역마다 마귀가 아니라 집시일 경우도 있다. 하여간 렌츠는 마귀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진짜 치타를 다시 데려오려면 치타를 발가벗겨 놓고 외눈박이 하녀 엄마 부르가가 아주 힘껏, 모질게 아홉 번을 때려야 한단다. 너무 아파 마귀의 새끼가 치타의 몸에서 살 수 없어 자기 엄마인지 아빠인지 하여간 부모 마귀를 찾아간 다음에야 마귀가 진짜 치타를 치타의 몸에 보내줄 것이라고. 아니면 치타를 거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물에 빠뜨려야 한다고. 하지만 엄마 부르가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딸 치타에게 그런 모진 일을 할 수 없다. 완벽하게 그렇다. 엄마가 무슨 이유로 사는 데? 근데 어떻게 치타를 때리거나 흐르는 물에 빠뜨릴 수 있을까?
그러나 소설작법 7장 2절. 불운한 예언이나 주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기억하시지?
처음에 <정신병동 수기>를 읽고, 별 다섯 만점, 했다. 이어서 <마귀 들린 아이>와 <어린아이>까지 다 읽은 다음에는 넷 반 정도. 하긴, 별점이 뭐가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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