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솔뮤직 러버스 온리
  • 야마다 에이미
  • 9,000원 (10%500)
  • 2010-03-19
  •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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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절 민음사에서 “모던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될성부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골라 소개했던 적이 있다. 면면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시리즈 1번으로 200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배치한 것은 1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미 상당한 성취를 이룬 작가를 선택했다고 쳐도, 조나단 샤프란 포어, (포어의 엑스와이프인) 니콜 크라우스, 러셀 뱅크스, 지넷 윈터슨, 잉고 슐체, 제이디 스미스, (대중소설의 백미)톰 울프, (킹즐리의 아들)마틴 에이미스, 존 맥그리거, 다니엘 켈만,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코맥 맥카시, 유디트 헤르만, 제프리 유제니디스, (역시 좋아하지 않는)가즈오 이시구로, 모옌, 모신 하미드, 나딤 아슬람 같은 작가들을 이 시리즈를 통해 만났다. 파묵과 모옌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읽은 작가의 (좋아하지 않는 두 명만 빼고)썩 괜찮은 작품이라 이제는 이들의 신작이 나왔다 하면 무조건 찾아 읽을 정도이었다. 그러니 내가 왕년의 시리즈, “모던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고. 물론 이 가운데 괜히 읽었다, 시간이 아깝다, (전에는 거의 책을 사서 읽어서)돈이 아깝다와 비슷한 평만 얻어들을 수 있는 별볼일 없는 작품들도 간혹 끼어 있었지만. 시리즈 중에서 안 읽은 책은 눈에 띄면 꼬박꼬박 챙겨 읽는 편이다.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집 《솔뮤직 러버스 온리》 역시 책방에서 “모던 클래식”을 검색하다가 읽지 않은 것 가운데 동네 도서관에도 있어 눈이 번쩍 띄어 단박에 대출한 책이다. 그리고… 똥 밟았다.


  1959년생 야마다 에이미는, 작가다. 더 알 필요 없고, 알 생각도 없다. 이이의 작품은 이제 읽지 않을 거라 작정했으니까. 나는 이 책을 다른 것들도 흔히 그러했듯이 그저 “모던 클래식” 가운데 한 권이라 읽은 것이다. 만일 돈 주고 사서 읽었다면 본전 생각이 나겠지만 그래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팀이 그동안 내 독서생활에 끼친 좋은 영향을 염두에 둔다면 타박할 생각은 없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좋은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대박일 때도 있고 폭망일 때도 있다. 다 사는 일이다. 근데 저럴 때, 나쁠 때, 폭망일 때는 굳이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연히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아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서. 하지만 이 책에 관해 과감하게 “똥 밟았다”라고 말하는 건, 야마다의 책 거의 전부 품절이나 절판 딱지가 붙어 있으며, 이 책도 복간을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할 수준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다.

  야마다 에이미山田詠美, 산전수전 다 겪은 이이는 메이지 대학 4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뜻한 바가 있어서 도쿄의 클럽에서 서빙, 모텔 잡부 같은 일을 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학교 다니면서는 소설을 쓰지 못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공에 따라, 교수진에 따라 소설 쓸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경우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여기까지는 좋은데, 작가 자신이 클럽 서빙, 모텔 같이 주로, ‘주로’다, ‘모두’가 아니라, 주로 허리 위아래로 분방한, 이 가운데 특히 허리 아래로 분방한 사람들이 야마다의 관심 대상이었는지, 작품 목록도 <베드 타임 아이즈 Bedtime Eyes> <솔뮤직 러버스 온리 Soulmusic Lovers Only> 같이 극도로 자유분방한 청춘의 베드 타임, 침대 속 생활을 탐구한(것 같)다. 이를 일본의 비평가들은 “문학적인 것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일상어를 자유롭게 작품 속에 끌어들인 일본 신세대 문학”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정작 작품 속 주인공들이 벗어던진 건 문학적 선입견이 아니라 브래지어와 팬티 등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눈만 맞으면 당장 서로가 서로의 팬티를 벗겨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 한 눈에 딱 봐도 당시 및/또는 현재의 선진국 도시에서의 청춘. 장소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도 상관없다. 그저 눈만 맞으면 상대가 아빠의 새로운 연인이며 그래서 ‘나’의 의붓엄마가 될 예정자이거나 의붓엄마일지라도 그냥 단번에 한다. 남편과 함께 들른 클럽에서도 아직도 멋진 몸매를 가진 옛 연인을 만나도 며칠 후에 한다.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린 작품집이지만 내용은 다 이렇다. 일본 비평가는 야마다를 두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에 필적하는 유일한 여성 작가”라고 했으며, 이이의 작풍을 “솔직하고 자유로운 사랑, 이국적 감성, 성애의 발현”으로 요약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자유로운 사랑, 이국적 감성, 그리고 무엇보다 “성애의 발현”으로 읽히려면 좀 그럴듯한 베드 씬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더욱 좋았겠는데, 이미 우리나라 중학생들도 읽지 않을 정도의 시시한 베드 씬만 득실거려, 한 편에 적어도 한 씬 이상 나오니까, 모두 여덟 편이니 적어도 여덟 번 이상 나오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시시하다. 시시해도 너무 시시하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듯하다. 야마다 에이미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 시절 휙 유행을 타서 쓴 작품마다 알뜰하게 이런 저런 상을 골라 타고, 영화와 TV 극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떼돈을 벌어 한 시절을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굳이 다시 찾아서 보거나 읽을 이유는 발견하지 못하겠다. 인기는 있었던 작가인 모양이다. 도서관 서가에도 이이의 책이 빼곡하게 놓인 걸 보더라도. 그것도 손때가 잔뜩 묻은 채로.

  근데 작가는 후기에 이런 문구를 쓴다.

  “나는 흑인을 좋아한다. 친숙하기 때문이다. 자기 멋대로이면서 상냥하고 감정을 그냥 드러내는 강렬한 자의식을 지녔고, 사랑에 탐욕적인 그들이 정말 좋다. 나는 몇 년 동안 그들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남자가 무작정 좋다. 남자를 좋아하는 그 여자는 제 멋대로 헤프게 살면서 때로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사탕처럼 집요하게 핥으며 소설을 써서 돈을 벌고 있다.”

  음. 그러니까 책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일본인, 남자는 흑인으로 생각해도 되겠군. 먼저 후기를 읽어 이런 생각이 머리에 박히면, 아이쿠, 작품 속 별볼일 없는 베드 씬을 읽으면서도 거대한 뿌리를 덜렁거리는 흑인 남자를 연상해서 실제 묘사보다 더 야한 기분도 들 수 있겠다. 읽을지 말지, 선택은 당신들이 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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