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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위대한 집
  • 니콜 크라우스
  • 13,500원 (10%750)
  • 2020-06-03
  • :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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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은 귀에 못이 박이게 익숙하다. 그래서 이이의 작품을 몇 권 읽은 줄 알았다. 확인해보니까 서점 보관함에 그리고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만 올려놓고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어째 이랬을까? 저런, 니콜 크라우스와 결혼해 10년을 살면서 두 자녀를 낳아 키운 전남편 조너선 샤프란 포어가 쓴 발랄하고 발칙한 작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밝혀졌다>만 읽은 것을 그의 엑스 와이프가 쓴 것도 그랬거니 했던 거 같다. 이제 정신차리고 크라우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니콜 크라우스의 조부모는 헝가리와 벨라루스, 외조부모는 독일과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이며, 십년을 함께 산 포어 역시 유대인이었으니 거의 완벽한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다. 이스라엘이 아닌 아메리카와 유럽에 거주하는 많은 유대인이 자신의 유대 정체성을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에 반해 (당연히 유대 정체성을 고수하는 사람도 많겠지), 실제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크라우스는 유대 뉴요커라기보다 그저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라는 의식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이, 경제적으로 특히 금융 방면으로 세계적인 패권을 쥐고 있으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사력 역시 중동 인근에서는 당할 커뮤니티가 없는 강국으로 이슬람권과의 싸움 정도는 마치 애들 팔목 비트는 수준으로 해치워버리는 (전쟁은 누가 뭐라해도 역시 돈 싸움이다!) 이스라엘의 요즘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나이 전쟁 등에서 이스라엘 국민의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위를 확 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만 제외하면 정말 별점 다섯 개, 만점을 줄 터인데 말이지.

  1974년생 범띠 여사님 니콜 크라우스는 이제 꼴랑 한 편의 소설만 읽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교만일지라도, 소설 참 잘 쓴다. 놀라운 건 소설을 쓰기 전에, 1992년에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소련에서 추방당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를 사사하며 시를 썼단다. 작품 속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나디아 역시 시를 쓰다가 후에 소설로 이름을 내는 여성이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의 자전적 모습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스탠포드와 옥스포드를 거쳐 세계에서 미술사 쪽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쿠톨드 예술 대학에서 렘브란트 연구로 미술사 PhD를 획득했다. 미술사 박사.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뉴욕에서 가장 폼나게 살 수 있는 전공과목과 학위를 얻었다는 말이다. 조금 역겨운 책 오테사 모시페그 쓴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 의하면. 크라우스가 부르주아 유대인이라는 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내가 나도 싫군, 흠. 근데 앞에서 말했듯이, 소설은 재미나게 참 잘 쓴다.


  <위대한 집>의 주인공? 진정한 주인공을 고르라면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그라시아 로르카 Federico Gracia Lorca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거대한 책상이다. 1898년 그라나다에서 태어나 서른여덟 살에 고향 그라나다에서 프랑코에 의하여 총살당해 생을 마친 로르카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도 존경을 받았는데, 토지를 매개로 한 부르주아 집안의 자제 답게 그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책상은 무려 열아홉 개의 서랍이 달렸으며, 이 가운데 가장 오른쪽의 가장 꼭대기에 붙은 서랍은 유일하게 작은 열쇠로만 열 수 있는 자물쇠로 봉인되어 있었다. 이 책상이 정말로 로르카가 사용했던 것인지는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아마 아닐 듯하다. 그러나 예술적, 박물학적, 고가구적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명품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직감할 정도로 여기면 될 듯하다.

  작품은 이 책상에 관한 스토리가 있는 네 명의 주인공이 각각 한 파트에 등장해 자신의 입장에서 책상을 전해준, 물려준 이야기를 1부, 2부에 한 번씩 두 번을 하는 구성이다. 네 명의 주인공 가운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앞에서 작가와 같이 시인 출신의 소설가 나디아이다. 나디아의 1인칭 시점으로 쓰였지만 독후감을 쓰는 편의상 3인칭으로 하겠다.

  1972년 겨울에 나디아는 애인 R과 헤어졌다. R은 이별의 변辯으로 “나디아가 모르는 R의 비밀이 있는데 그게 비겁하고 역겨워 나디아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 스스로 그걸 개선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도 되겠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병든 짐승처럼 물러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쉬운 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개소리다. 거의 2년 동안 함께 살았던 R은 며칠 후, 자기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인부를 몇 명 보내 자기가 산 모든 가구와 그랜드 피아노를 몽땅 실어갔다. 이때 나디아는 스물네 살. R은? 모른다. 많이 먹어봤자 서른 안쪽이겠지. 그런데 ‘모든’ 가구와 그랜드 피아노를, 다른 곳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뉴욕에서 그런 가구와 악기를 놓을 수 있는 공간에서 살 수 있는 부르주아가 아파트에서 이것들을 홀랑 가져가 버리니까, 나디아는 말 그대로 침대가 아니라 그냥 매트리스 하나만 달랑 남은 거하고 비슷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별을 당한 직후 특유의 공황상태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학창시절의 친구 폴 엘퍼스가 불현듯 나타나더니, 미국식으로 다시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운 건 아니고, 칠레에서 온 젊은 시인 다니엘 바르스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친구 폴은 말 그대로 친구, 요즘 말로 남사친 자체여서 나디아의 R도 알고 R과 헤어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R 역시 많아봤자 서른 안쪽으로 보는 거다. 이렇게 나디아는 다니엘 바르스키를 만나, 미국식으로 그와 사랑을 불태우는 건 역시 아니고, 칠레 출신이라니 당연히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조개껍질 수집가이며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도 하다가, 분위기가 삼삼해져 심각하지 않은 키스 한 번을 나누고, 다니엘이 칠레에 가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기간 동안 나디아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보관해주기 바란다며 문제의 책상과 훗날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가 들이쳐 썩어버리고 마는 소파, 그리고 몇몇 가구를 인계 받았다. 그랜드피아노가 놓였던 집이니 그깟 책상쯤 아무리 커봤자 그게 그거겠지? 천만의 말씀. 책상은 나디아의 공간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책상의 그늘에 매트리스를 놓은 채 잠을 청해야 했단다. 그동안 좀 작은 셋방으로 옮겼다는 말은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 1년 반이 흐른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다니엘 바르스키는 한밤중에 피노체트의 국가정보국장 마누엘 콘트레라스가 이끄는 비밀경찰에 끌려가 친구들은 그가 고문 끝에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디아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칠레에 있는 다니엘의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내 책상과 가구 일습의 처리를 상의했지만 회신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1999년 3월 말이 됐고, 자신이 다니엘 바르스키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레아 바이스. 다른 가구는 됐고 책상만 돌려 받았으면 한다면서. 당연히 레아 바르스키인 줄 알았는데 바이스였으며, 산티아고가 아닌 예루살렘에 살고 있단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인 레아의 어머니가 70년대 초반에 잠깐 산티아고에서 살았는데 이때 다니엘 바르스키와 연애를 했다가,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벌이자마자 칠레를 떠나 이스라엘로 갔단다. 벌써 레아를 임신한 상태였고, 예루살렘에서 여러 번 칠레로 편지를 했건만 이미 체포당한 이후였다고. 나디아는 레아를 본 첫눈에 이이가 다니엘의 딸임을 알아보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책상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곧바로 밀려드는 공황. 나디아는 그동안 시에서 소설를 썼는데, 전부 이 책상 위에서 쓴 거였다. 나디아 입장에서는 이 책상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작품의 원형이 든 ‘위대한 집 Great House’이었을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게 자신의 한 마디에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니 어찌 공황을 맞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인생이 그렇다. 둘은 약속을 마치고 집 밖으로 나와 환한 태양빛 아래 섰고, 다시 레아의 모습을 관찰한 나디아의 눈에는, 이제 레아의 모습과 어투에서 다이넬 바르스키와 비슷한 것을 거의 찾지 못하겠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디아가 한 파트. 누군가가 책상을 다니엘 바르스키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가 책상을 사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다니엘에게 책상을 물려준 영국의 늙은 작가가 한 파트, 나디아에게 책상을 가져간 이스라엘 사람이 또 한 파트. 그러면 이제 한 명이 남는다. 그건 직접 확인하시라.

  재미있는 것이, 스토리 소개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나디아는 S와 결혼생활 10년을 하고 아이 없이 이혼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2010년. 4년이 지난 2014년, 작가 니콜 크라우스는 자기하고 작풍이 완전하게 다른 작가 남편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10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다.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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