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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숲노래  2025-02-18 08:10  좋아요  l (0)
  • 우리말이라면 ‘비(非)-’를 안 붙인다. 우리말이 아니라서 ‘非-’를 붙인다. 우리말이 아닌 쓰레기 ‘非-’는 먼저 옆나라 일본 우두머리가 ‘비국민’이라는 말을 지어서 퍼뜨리는 곳에서 싹텄다. 일본 우두머리가 일으키는 싸움짓을 따르지 않으면 “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 하고 윽박지르면서 두들겨패고 사슬에 가두었고 죽였다. 일본 옆나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숱하게 ‘비국민’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어야 했고, 일본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비국민’ 손가락질에 따돌림을 받으며 죽었다.

    제대로 읽는 사람이라면, ‘모든 일본놈’이 우리나라를 사슬터(식민지)로 삼지 않은 줄 안다. 제대로 안 읽는 사람이라면, ‘그저 일본놈’이라고 뭉뚱그린다. 그런데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얼뜬 일본 우두머리’하고 맞섰는가? 아니다. 일본총독부가 남긴 밑동(기초자료)을 보더라도 이 나라 ⅓쯤은 오롯이 ‘일본바라기(친일부역)’를 했다고 여긴다. ⅓쯤은 슬쩍 발을 담갔고, ⅓쯤은 일본에 맞서거나 시골에 숨었다.

    한겨레라 하더라도 일본 우두머리보다 모질고 사납게 한겨레 등골을 파먹은 무리가 버젓이 수두룩하다. ‘일본놈’이라지만 일본에서도 ⅓쯤은 앞장서서 일본 우두머리를 나무라고 맞서다가 이슬 한 방울로 스러졌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백인 부르주아 약탈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터럭만큼도 옳을 수 없다. ‘흰살갗(백인)’도 ⅓쯤이 힘꾼(권력자)이라면, ⅓쯤은 살짝 발을 담그고, ⅓쯤은 맞서거나 종(노예)으로 뒹굴었다. 나고자라기로는 하늬(유럽)이되, ⅓쯤은 시골과 들숲바다에서 맨손으로 논밭을 일구고 살림을 지었기에, 이들 살빛은 ‘까무잡잡’했다. 일본을 거쳐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사랑받은 《초원의 집》이라고 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라는 ‘흰살갗 집안 시골 할머니’가 쓴 글이 있는데,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뿐만 아니라, 이녁 언니동생도, 이녁 엄마아빠도 그저 ‘까무잡잡한 살결인 흰사람(백인종)’이었다. 하루 내내 들에서 해를 쬐면서 일했으니, 적잖은 ‘흰사람’이라 하지만 ‘까무잡잡 살갗’인 사람이 많다.

    겉모습(인종)만으로 사람을 가를 적에는 언제나 잘못 보면서 ‘안 옳은 말’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외치게 마련이다. 모든 한겨레(한국사람)가 참하거나 착하거나 옳지 않다. 모든 일본놈이 끔찍하거나 멍청하거나 꾀바르지 않다. ‘겉모습으로 뭉뚱그리는 굴레’가 아니라, 낱낱으로 ‘사람’을 보고, ‘사람이라는 마음과 숨빛’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흰살갗이라서 모두 사납빼기(약탈자)이지 않듯, 돈꾼(부르즈아)이라서 모두 사납빼기이지 않았다. 가난뱅이(프롤레타리아)라서 모두 착하고 참했을까? 터럭만큼도 아니다. 가난뱅이여도 사납빼기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난뱅이여도 돈꾼보다 넉넉하면서 아름답게 살림을 지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겉모습이 아닌, 껍데기가 아닌, 허울이 아닌, 허깨비나 허수아비가 아닌, 이제는 그저 “일하는 나”와 “일하는 너”와 “일하는 우리”를 마주보고 이야기할 때라고 본다. “살림하는 나”와 “사랑하는 너”가 만나서 “푸른별을 푸르게 일구는 새길”을 이야기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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