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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 9,900원 (10%550)
  • 2012-03-30
  •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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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안 크라흐트는 2020년에 세 권을 읽고 4년만이다. 이래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크라흐트 네 권을 모두 읽었다. 1966년 스위스 베른에서 출생해 스위스, 독일, 미국의 각급학교를 다녔고 최종적으로 뉴욕의 사립 예술대학인 사라 로렌스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세계 각국을 누비고 다니며 온갖 것을 경험했는데, 세계 각국이란 동남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망라한다. 부럽지? 그럼 당신도 부잣집 아이로 태어날 걸 그랬지? 크라흐트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시니어는 스위스의 잘 나가는 출판사 수석 대표였다. 주니어는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영락없이 양아치였는데 이제 나이 들어 수염도 좀 기르니까 제법 교양 넘치는 얌생이 유럽인처럼 보인다. 2021년까지 모두 여섯 편의 소설 가운데 두 편은 아직 번역하지 않았다. 그것도 나오기만 하면 읽어보겠지만 어째 소식이 없다. 문학과지성사와 크라흐트 대리인 간의 계약을 끝난 거 같다. 새 출판사가 얼른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이후 “여기 있으리”라고 씀. 염병한다고 제목을 이렇게 길게 쓰고 자빠졌는지 원 참.>은 대체역사소설. 만일 어떻게 했더라면, 만일 어떻게 안 했더라면, 으로 시작하는 역사소설인데, 대표적인 것이 최인훈의 <태풍>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대개 “어떻게 안했더라면”이다. 만일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지 않아 태평양전쟁이 터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조선이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인데 내선일체 사업을 워낙 고도로 치밀하게 진행해 조선 사람들이 죄다 자기도 일본사람인 줄 알고 있다면? 뭐 이런 식의 이야기.

  <여기 있으리>의 전제사항은 1917년의 레닌이다. 같은 해 2월(구력 기준. 서기력으로는 3월) 혁명이 일어나고 마음이 바빠진 레닌은 제정을 무너뜨린 뒤에 들어선 러시아 공화국을 얼른 접수하기 위하여 망명중이던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실은 열차를 전세내 타고 갔지만 스테판 츠바이크마저 잘못 알고 있던 ‘봉인열차’를 타고 독일을 관통해 덴마크에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스웨덴으로 건너가, 다시 열차로 스웨덴 관통, 핀란드 관통, 완전히 초토화된 러시아도 관통해 모스크바까지 달려 가야 했건만, 작품에서는 레닌이 그냥 스위스에 머물렀으며, 레닌의 직업이 프로 혁명가인만큼 소비에트 혁명을 엉뚱하게 스위스에서 일으켜 수십 년간의 전쟁을 치룬 후 마침내 취리히와 바젤, 뉴베른에서 소비에트 SSR, 스위스소비에트공화국을 건설했다는 전제다.

  당시 러시아는 원인 불명의 대형, 초대형 폭발사고가 나는 바람에 중앙 시베리아의 쿤구스카에서 민스크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 몽땅 바이러스에 오염되고 말았다. 이래서 끝없는 툰드라 평원과 우랄 산맥의 비옥한 밀 곡창지대가 영원히 사람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으로 바뀌어 러시아 제국은 유독한 먼지와 죽음을 부르는 검은 재만 횡행하는 거대한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

  웃긴 건, 영국, 독일의 부르주아들이 바로 아랫동네인 스위스 빨갱이들이 자기 나라에도 공산주의 바이러스를 옮길까봐 덜덜 떨다가 그냥 동맹국이 되어 버린 것. 독일은 여전히 반유대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도, 사실은 전 유럽이 조금 차이는 있지만 반유대적이기는 했는데, 하여간 똘똘 뭉쳐 소비에트 스위스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지 백년에서 조금 모자란 96년. 그러니까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은 단 한 번도 평화의 공기가 어떤 맛인지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전쟁으로 인한 무기의 발달을 뺀 문화적 발전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글자 문화도 대화 문화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주인공 ‘나’처럼 글자를 쓸 줄 알고, 직접 메모까지 해가며 사는 인간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영국하고 독일이 동맹을 맺었다는 건 말했고, 그러면 SSR과 동맹을 맺은 나라들은? 오렌지색 군복을 입은 공포의 대상 힌두스탄과 놀랍게도 저 동쪽에서 진군해 지금 뉴민스크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 대오스트레일리아도 있다. 하여간 2차 백년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전세계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든지, 아니면 소비에트 씨를 말려야 끝날 예정이다. SSR 인민들은 이 전쟁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며 자신들은 전쟁을 이어가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말끔하게 세뇌가 되었다. 전쟁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지구에서 계절의 구분, 사철의 변화(비슷한 말인가?), 밀물과 썰물, 해수면의 파도, 달의 주기적 변형 같은 것도 사라져버려, 동양의 힌두스탄인들은 지금을 칼리 유가, 악마 칼리의 시대라고 부른다.

  근데 스위스소비에트공화국은 인구가 영국과 독일보다 적다. 적어도 많이 적다. 그런데 무슨 전쟁? 그리하여 SSR은 아프리카에서 똘똘한 인간들을 데려와 계급과 관계없이 병사로 육성했다. 아니, 병사로 육성한 다음 스위스로 데려왔다. 화자 ‘나’도 말라위 출신이다. SSR, 소비에트에서 인종차별이라는 건 없다. ‘나’는 SSR 군대, 그중에서도 뉴베른의 스위스 5군단 당 지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쉬운 얘기로 베른의 새로운 지명 뉴베른에서 제일 높은 고위급 당원이다. 군단장도 ‘나’가 작성한 보고서, 그것도 아니고 그냥 전화 한 통이면 목이 달아날 수 있다. 왜 전화 한 통이냐 하면, 문자언어가 급격하게 소멸하고 구술언어 중심의 사회라서 그렇다. 아직 영국과 독일은 책과 문학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소유하고 있어 SSR을 저급인류, 시골뜨기 문맹자라고 선전하고 있다. 지나간 소비에트에서 문학은 사실상 죽은 상태였으니까 단박에 이해가 된다.

  ‘나’ 스위스령 잘츠부르크 혁명위원회에게 브라친스키 대령이라 불리는 폴란드 유대인을 체포해달라고 전보가 왔다. 브라친스키가 운영하는 점포에 가보니 유리창이 깨져 있고 벽에 붉은 글씨, 찍어서 냄새를 맡고 돼지 피라는 걸 알았는데 그걸로 큼지막하게 “죽어라, 유대인!”이라 쓰여 있다. 그리고 브라친스키는 사라졌다. 놀랍지?


  ‘나’는 큰 꿈을 키우고 있다. 독일이 8년 동안 점령하고 있던 뉴베른. 철저하게 파괴괸 이곳에 극장을 세울 것이고, 소비에트 위원회 건물을 웅장하게 지을 것이며, 공장과 국립은행도 문을 열 것이다. 붉은 칠 위에 하얀 십자가를 그린 미사일을 만들어 영독귀축을 무너뜨리기 전까지 바젤에서 밀라노까지 일곱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지하 철도를 개설한 것이다. 알프스를 관통하는. 그러니까 SSR은 다른 건 몰라도 정밀기계와 땅굴 파는 거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왜 난데없이 땅굴 이야기를 하느냐고? 이유가 있지. 뉴바젤에서 대령이라 불리는 브라친스키가 바로 이 알프스 지하 요새로 들어갔기 때문에. 나도 여태 몰랐는데 정말로 스위스에는 알프스 지하 요새가 있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요새를 만들기 시작해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시기가 오자 방치하다시피 했다가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맹렬하게 파고 또 파기 시작했단다. 히틀러 성격으로 봐서 중립국이라고 사정을 봐주리라 여기는 건 지독하게 순진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은 스위스 지형이 북한하고 비슷해서 그곳에 쳐들어가 완전한 승리를 얻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스위스는 알프스에 땅굴을 파고 또 파서 대외적으로 스위스 사람인들의 저항정신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공불락이 아니고 아예 공격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요새. 이 속에 브라친스키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가 생활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SSR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비에트의 노예가 되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

  요새 안에서 브라친스키는 뉴바젤의 당 지도원 동지 ‘나’에게 항변한다.

  “반혁명이니, 반공산주의니, 이단이니, 그런 건 전부 애들 말장난에 불과하니까. 당신을 스스로를 재교육할 필요가 있어요. 알고 계시나요? 당신은 스위스의 노예라고요.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훈련받고 노예로 만들어진 거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답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한 편의 위조입니다.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타르망귄이 고망귄을 지배한다’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타르망귄이 고망귄을 지배한다’는 말은 “털 없는 흰 원숭이가 털 없는 검은 원숭이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나’처럼 피부색이 검은 인간은 노예라는 말. 소비에트에서는 소수의 엘리트가 모든 인민을 지배한다는 것이겠지. 결국, 세상에 바뀐 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되고.

  나는 그러나 작품의 반 밖에, 반 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국 브라친스키도 허망하고 허망하도다 하는 것을.

  크리스티안 크라흐트는 흥미롭다. 과작은 아니지만 소설 말고 다른 글을 많이 쓴다. 그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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