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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나 같은 기계들
  • 이언 매큐언
  • 15,120원 (10%840)
  • 2023-08-16
  • : 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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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반 정도 읽다가 도서관 사물함에 책을 두고 왔었다. 그리고는 추석 연휴가 휙 지나갔다. 닷새만에 중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니까 좀 헛갈렸다. 이게 별점을 조금 깎아 먹었을 수도 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이름은 찰리 프렌드. ‘나’는 서른두 살에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남부 런던의 따분하고 황폐한 거리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의 습기 찬 일층에 산다. 아빠는 재즈 콰르텟을 이끄는 관악 주자로 대부분 연주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여성과 지나가는 바람을 피우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 같다. 어머니가 공중보건 간호사로 일하며 외동아들인 ‘나’를 키우는데 전념해 ‘나’의 유소년 시절엔 문화적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책과 예술, 심지어 음악을 접할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이른 나이에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중부지방 남쪽의 삼각지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좀 더 잘 먹고 살기 위하여 법학으로 편입해 한때는 정식 세법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세무 문제로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해고를 당하고, 길지 않을 교도소 신세를 질 뻔했지만 대신 백 시간 사회봉사 명령에 따라야 했다. 이후 다시는 정규직 직업을 얻지 못했다. 이후 경제적, 직업적, 개인적 실패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해야 했으며, 지금은 온라인으로 주식과 외환거래를 해먹고 사는 중이다. 따는 날도 있고 잃는 날도 있어서 1년 동안 평균을 계산해보면 발품을 파는 우체부만큼의 소득은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가 죽었다. 잘 살지 못한 어머니는 대신 집이 있었다. 그동안 땅값이 비싼 개발지역으로 변하는 바람에 집을 팔아 ‘나’ 찰리 프레드는 가만히 앉아서 뜻밖의 거금이 생겼다. 없는 사람한테 갑자기 큰 돈이 생기면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 ‘나’도 그랬다.

  인간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해야 하나? 희망이 허락한 종교적 열망이자 과학의 성배는 창조신화를 인간의 손으로 실현하기 위해 기괴한 자기 대적행위를 향해 전력을 다해 뜀박질했다. 그리하여 결과가 어떻든 창조의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건 인조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오래 전부터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있었으나, 1982년에 드디어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가능한 스물다섯 대의 인조인간을 정말로 만들었다. 열두 개의 아담과 열세 개의 이브. 일찍이 전자공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한 다음에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써 약간의 수입을 올린 적도 있는 ‘나’는 어머니가 죽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 가운데 8만6천 파운드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최초의 제조인간을 시판한 시제품 가운데 아담 하나를 사서, 초라한 아파트로 귀가한다.


  1982년이라 해도, 인조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훨씬 능가하는 지적 능력을 가진 기계였다. 이미 컴퓨터는 체스 세계챔피언을 가볍게 이기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는 2016년에야 바둑 세계챔피언을 여러 번 지낸 이세돌을 걲었지만 작품 속에서는 1982년에 벌써 바둑의 무한 경우도 스스로 학습을 통해 인간을 능가한 수준이 되었다. 물론 <제5원소>에 나오는 밀라 요보비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건 애초 가능하지 않은 역사를 새로 썼다는 건데, 이언 매큐언은 스토리에 개연성을 주기 위하여 영국 현대사에서 한 수학자를 호출한다. 앨런 메시스 튜링. 이이는 수학자이면서 컴퓨터 과학자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나치 독일군의 애니그마 암호를 풀어달라고 부탁했고, 튜링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전쟁기간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으며 1,4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효과를 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민간인으로 복귀한 후 1952년에 당시엔 엄격하게 범죄로 처벌받던 동성애자로 체포당해 화학적 거세형을 받아야 했는데, 정말로 거세형을 받았는지 형 집행 전인지 모르겠지만 2년 후인 1954년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중독으로 생을 마쳤다. 이 튜링이 남긴 업적은 컴퓨터 중에서도 인공지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매큐언은 1982년에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인조인간이 출현할 수 있는 근거로, 앨런 튜링 박사는 1952년에 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 화학 거세 전에 형 집행이 취소되었고, 따라서 시안화칼륨을 마실 이유도 없어서 1982년에도 생존해 있으면서 70세의 노인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전제를 깔았다. 나는 70세의 노인이 모발도 풍성하고, 이도 건강하고 피부 트러블도 없다는 설명을 듣고 혹시 튜링 박사 자신도 벌써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인조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튜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구성과에 특허를 걸지 않았다. 연구결과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능력이 있는 누구라도 일부 인류의 꿈인 인간 창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는 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는 아담 말고 이브를 사기를 원했다. 그런데 아랍의 부호가 한 방에 이브 몇 개를 사가는 바람에 먼저 이브가 품절이 되고 만다. 여우와 포도. 그랬더니 당장 이렇게 바뀐다. “아담이라도 상관없어.” 20세기의 가을이라 할 수 있는 1982년. 12개의 아담과 13개의 이브는 각기 다른 민족적 특징을 지니게 고안되었다. ‘나’가 가져온 아담은 투르키예나 그리스인과 비슷한 외모에 몸무게가 80킬로그램쯤 나간다. 그런 기계가 담긴 박스를 혼자 옮기기 쉽지 않아 위층에 사는 스물두 살 먹은 대학생 미란다를 불러 ‘나’의 집에 들여놓았다.

  섹스 토이는 아니지만 섹스도 가능하다. 실제로 기능하는 점막도 보유한다. 점막의 습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에 반 리터의 물을 마셔주어야 한다. 아담한테는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꽤 큰 성기와 풍성한 검은 음모가 나 있다. 이걸 본 미란다는 보스푸루스 해협의 어느 부두노동자를 닮았다는 의견을 내기도. 광고전단에는 아담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설거지와 침대정리를 하고 ‘생각’도 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지적 논쟁 상대. 친구이자 잡역부. 단 운전, 수영, 샤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외출, 사람의 감독 없이 전기톱 사용은 불가능하며 허락 받지 못함. 두 시간에 17km 달리기 가능. 12일 동안 쉬지 않고 대화할 수 있으며 수명은 20년임.”

  책 좀 읽는 독자가 이 전단을 보면, 저 뒤에 가면 전기톱으로 사고 한 번 치겠구나. 그러다가 수영장이나 강물 같은 데 빠져 죽겠구나. 이러고저런 짐작을 할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 말한다. 아니다. 전기톱은 나오지도 않고,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가도 크게 손상입지 않는다. 아담은 궁극의 장난감이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 혹은 그 죽음의 천사라고도 썼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을 읽는 재미다. 그래서 알려드릴 수 없다.

  그런데 독자의 바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아담을 계기로 여태까지는 친절한 이웃관계로 만족하고 있던 ‘나’ 찰리 프렌드와 위층 학생 미란다 블랙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

  아담의 사용설명서를 보면 성격의 특성을 정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친화성, 외향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이란 5대 성격 요인 모델에 각 1에서 10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나는 아담이 친구이자 손님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아담이 ‘나’ 주변에 등장함에 따라 미란다와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격 업데이트 다운로드를 할 때 ‘나’가 절반, 미란다가 나머지 절반을 입력해 마치 아담이 둘의 아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고,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을 본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나’는 미란다와 자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와 미란다의 사이가 약간 서걱거리는 일도 당연히 발생했는데, 미란다는 아담을 불러 아담과 섹스를 했고, 여태까지 느꼈던 가장 강렬한 쾌감보다 79배 더 강력한 오르가슴 맛을 본다. 아래층에서 미란다의 침대가 요동치는 소리를 들으며 애꿎은 자기 연장만 굳세게 쥐고 벌겋게 밤을 세운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무생물 컴퓨터를 질투한 게 되고, 그런 ‘나’를 미란다가 비웃는다. 근데 아담의 정서적 민감성 항목이 어떻게 처리가 됐는지, 아담도 미란다를 사랑한다니 이걸 워쩌? ‘나’는 아담에게 다시는 미란다의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명령하는 걸로 그친다. 그랬더니 훗날, 많이 시간이 지나서 아담은 사랑하는 미란다 앞에 가서, “섹스를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요, 대신 당신 앞에서 자위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미란다는, 좋아. 대신 단 한 번이야.


  일흔 살의 튜링 박사도 아담 또는 이브를 한 개 이상 소유하고 있다. 급기야 결혼까지 약속한 ‘나’와 미란다가 그걸 기념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남자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러 온 앨런 튜링 박사를 우연히 만난다. ‘나’가 조심스럽게 ‘나’도 아담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튜링이 관심을 표했고, 며칠 후에 자기 집을 방문해달라는 내용의 통지가 온다. 그렇게 만나 세상에 퍼진 아담과 이브들의 한정된 소식을 듣는다. 아랍으로 간 두 이브는 스스로 인공지능을 포기해 인간으로 치면 자살한 수준으로 됐고, 어떤 아담은 사라져버렸으며, 또 몇 아담들도 지능을 거의 포기한 수준이란다.

  진짜 인간의 세계. 때로는 좋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거짓말을 적절하게 생활에 섞을 줄 아는 인간을 아담과 이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람 속에서 선하고 악한 양면을 발견할 때도 회로가 꼬일 수 있었나보다. 그렇게 구성이 된 아담과 이브가 스스로 회로멈춤,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아담의 뒤통수 가운데 작은 단추가 있어서 그걸 누르면 전원이 멈춘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 번 눌렀고, 일을 처리했고, 다시 켜서 재생시켰다. 아담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두번째 시도할 때 아담은 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그래도 ‘나’가 하려고 하자 기꺼이 ‘나’의 오른손을 강하게 쥐고 놓아주지 않아 손목의 주상골을 부러뜨려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시스템을 통해 전원 차단 장치를 삭제한다. 이제 아담은 다시는 잠깐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고, 모든 방면에서 ‘나’와 미란다를 능가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의 돈벌이인 주식과 환율을 아담이 대신하니까 수십만 파운드를 벌어들이니 이제 집안에서 위계가 어떻게 되겠어? 이런 아담한테 설거지를 시키고, 빗자루질, 미란다가 외로울 때 위무용으로? 그러나 아담은 스스로 학습을 계속한다. 사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럼 좋겠다고? 혹시 위협이 되지는 않을까?

  이언 매큐언은 학습능력이 있는 인공지능 탑재 인조인간을 왜 인간으로, 인격으로 상대하지 않는지,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 이 작품을 쓰고 있으나, 재미있게 다 읽은 나는, 급기야 인공지능 인조인간을 만들어낸 인간의 무모한 과학기술의 발달을 탄하고 싶다. 제발 과학기술은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아니라고?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래봐야, 길어야 3만년이다. 과학이 발전하면 더 짧아질 수도 있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주구장천 인간이 살 수 있을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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