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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알바니아의 사랑
  • 수사나 포르테스
  • 10,800원 (10%600)
  • 2011-03-21
  •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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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나 포르테스는 어제 읽은 <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를 쓴 하들그리뮈르 헬가손과 같은 돼지띠 1959년생이다. <…청소가이드>를 어제 읽었다고? 그럼 <알바니아의 사랑>은 오늘 하루만에 읽어 치웠겠네? 맞다. 본문이 285페이지에서 끝난다. 글자가 크고 편집도 널널해서 점심에 백제 김치맛 쌀국수 후딱 먹고 빠져서 읽으니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뱅뱅 돈 생각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자치구의 폰테베드라에서 태어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과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지리와 역사를 전공한 여사님이 마흔세 살에 어쩐 일로 저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에서 벌어진 사랑 이야기에 관해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을꼬? 하는 거였다. 책을 읽으면, 포르테스가 대학에서 지리,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이렇게 짐작할 수밖에. 1930년대에 에스파냐에서 있었던 2차 세계대전 전초전 성격의 프랑코 내전. 이때 프랑코 파시스트로부터 에스파냐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하여 유럽 각지와 (라틴)아메리카, 공산 중국에서 많은 해외 지원병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공산주의 국가 알바니아에서도 대大 자눔이란 젊은 사령관이 ‘알바니아 여단’을 지휘하여 참전했다. 여단을 파병한 것은 맞는데 이때 ①사령관의 이름이 자눔인 것과, 그가 에스파냐에서 한 소녀를 만나 순전히 “구출”의 의미로 프랑스 국경의 친척집에 맡겨 놓았다가 패전에 임박해 ②소녀를 트럭에 태워 함께 시에라 산맥을 넘어 알바니아까지 데려온 건 포르테스의 허구일 것 같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허구, 거짓, 혹은 이야기. 이 정도면 소설 한 편이 탄생할 수 있는 충분한 재료는 준비한 셈이다.


  사령관 자눔이 귀환하자마자 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연에 휩싸이게 된다. 자눔은 또다시 병사들을 이끌고 이번엔 나치 파시스트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상,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뛰어들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전쟁에 승리한 1945년, 영광스럽게 귀환한다. 수도 티라나에 복귀해 며칠 간의 보고와 환영대회 같은 것들을 끝내고 순국선열로street와 엘바산 사이의 보기드문 저택인 빌라는 전쟁 당시에 독일군이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바람에 거의 다시 지어야하는 폐허로 변했지만, 에스파냐에서 데려온 소녀는 키가 훌쩍 큰 스무 살의 미인이자 완벽한 여성이 되어 있었다. 한눈에 반한 자눔은 ‘그 여자’한테 단박에 청혼, 이들은 결혼을 해 아들 둘을 낳는다. 큰 아이는 강건한 체격과 천생 군인체질의 빅토르. 작은 아이 이스마일은 훗날 시를 쓰는 자질이 어린 시절 성격에서 나타난 조금은 병약한 아이. 네 살 차이가 나는 형제 다 엄마를 많이 닮아 그런지 유난스럽게 우애가 깊었다. 공유하지 못하는 장난감 선물은 애초 받지도 않았고, 네 살 먹은 동생이 폐렴(훗날에 늑막염으로 밝혀짐)으로 사흘 동안 고열과 고통에 시달리자, 형 빅토르는 잠 한숨 자지 않고 침대 곁을 지켰다가, 이스마일이 깨어난 넷째 날 새벽, 탈진해버린 여덟 살짜리 빅토르가 혼절해버린 이야기가 오래 전해졌을 정도였다.

  빅토르 못지않게 힘들여 이스마일을 보살핀 가족 주치의 기오르크 박사는, 낫기는 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라서 요양을 권했다. 그리하여 네 가족과 기오르크 박사는 산악지역 페시코피 시에 있는 박사의 고향집에서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삶이 끝난 사람은 아팠던 이스마일이 아니었다. 에스파냐에서 알바니아로 이주해 온 ‘그 여자’가 죽었다. 이스마일이 다섯 살 때. 이후 빅토르와 이스마일의 어머니이자 알바니아의 실세 가운데 실세인 대 자눔의 아내인 에스파냐 여인의 이름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것이 ‘그 여자.’ 이제 ‘그 여자’는 초상 속 그림으로 남아 서재 벽에 걸려져, 자신을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만 기억시키고 있다. 며칠 동안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숨을 거둔 이스마일의 기억 저편 속 ‘그 여자’가 죽은 다음에도 형제간 우의는 전혀 틀어지지 않았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서, 빅토르가 군사예비 기숙학교에 들어가고 몇 년이 흘러 사춘기에 접어들자, 네 살 차이가 나는 형제는 여전히 우의가 깊기는 하되, 어딘가로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용맹한 군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빅토르와 새롭게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이스마일. 이들의 감정적 거리감은 지극히 자연적인 이격이라고 할 수밖에.


  사춘기가 지난 아들들은 다 자기 유전자 속 특징이 발현하는 곳으로 간다. 빅토르는 정통 군인으로 국무회의의 가장 높은 지위를 갖기도 했던 아버지의 길을 따라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준비하고 있고, 이스마일은 대학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에 강철 장벽을 친 채 무한정 강권통치를 펼치고 있는 엔베르 호자 정부에 대한 반체제운동에 가담한다. 젊은 시절을 통째로 반 파시즘 전쟁에 투신했던 아버지 대 자눔이 이젠 알바니아의 독한 파시스트가 된 것에 어이없어 하는 것도 세월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1930년대 40년대 젊은 자눔은 신념에 의하여 진심으로 그렇게 행동했고, 이젠 호자 정부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스스로 타당하다고 믿는 양심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물과 역사를 보는 시점이 변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파쇼타도를 외치던 70년대, 80년대, 90년대 민주투사들이 세월이 변하니까 이젠 스스로를 진보세력이라 굳게 확신하면서도 자기들의 꿈이 강남 건물주라고 서슴없이 말하게 됐잖아? 신진세력은 바로 이 (한 시절엔 옳았던) 늙은 것들을 때려잡아야 하는 거라고. 그래야 진보가 진화한다니까? 그게 변증이다.

  그래도 형제 사이는 여전히 좋았다. 알바니아도 의무 군복무 기간이 있는데, 8개월. 이스마일이 징집을 당해 훈련을 받고 있을 때 빅토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관습법이 여전했던 북부 지역에 장교로 나가 있다가 그곳 아가씨 헬레나와 연분이 나 북부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이스마일이 결혼식에 가려고 몇 번이나 아버지와 형의 빽을 썼지만, 짧은 복무기간 대신 빡세게 훈련시키는 군대는 형의 결혼식 참석을 위한 휴가를 거절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이스마일은 그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빅토르의 결혼식 때 혼수로 가져온 헬레나의 북부 알바니아의 전통 옷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고, 딱 하나, 조끼 주머니에 총알 하나를 담아, 장인이 사위에게 직접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만일 자신의 딸이 사위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생기면, 그 불명예가 집안 담벽을 넘어가기 전에 자기 딸에 대한 “명예살인”을 허락한다는 의미란다. 이게 발칸의 회교도다.

  작가가 굳이 이 대목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상 내비치는 건 틀림없이 복선이겠지? 그렇겠지? 아니면 혹시 독자가 그쪽으로 믿으라는 작가의 짓궂은 의도? 아이고, 소설 읽기도 쉽지 않다. 뭐든 과하게 발전하면 그렇다니까.

  만일 이 총알 하나가 혼수품이라면, 대 자눔 라드지크 가문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헬레나에 의한 불륜이 벌어지고, 그녀의 심장엔 비록 금으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총알 하나가 박히든지 관통해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또 사건이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불운은 언제나 홀로 오는 것이 아니라서 빅토르와 이스마일의 어머니이자 대 자눔의 젊은 아내인 ‘그 여자’의 불명예도 언젠가는 암시되고, ‘그 여자’의 죽음 역시 단순한 병사가 아니어야 할 터.

  에그머니, 너무 많이 떠들었다. 물론 내가 쓴 줄거리가 진짜 작품에 나오는지 아닌지, 당신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작품의 발단, 전개 과정을 읽다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니까. 뒤에 어떤 결론이 날 지는 다음으로 하고 말이지. 하나 더 일러드릴까?

  어느 날 새벽 여섯 시 15분 전. 이스마일은 오르파돌을 한 알 먹고 자는 바람에 잠이 깨기는 했어도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폭발음이 들려 곧바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어디서 불이 난 것도 아니고 단지 폭발음. 흠. 총소리. 집안의 누군가가 총상으로 심장손상을 입어 죽었다. 단 한 발의 총알. 베이지색 파자마 차림으로 침대 위에서 죽은 모습.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권총을 가슴에 밀착시키고 발사했고, 총알은 심장과 견갑골을 뜷고 나가 침대 바닥에 변형된 모습으로 발견됐다. 1차 조사에서 검시관은 자살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결론으로 맺지는 않았다. 이렇게 작품은 시작한다. 죽은 자가 누구인지,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상태로. 누굴까? 누구들일까?

  알바니아에서는 누가 누구를, 아니면 둘이 서로 죽음을 각오해가면서 사랑을 할까? 그것도 발칸식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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