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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wan이 읽은 것들
  • 자살의 연구
  • 앨 앨버레즈
  • 16,200원 (10%900)
  • 2025-03-05
  • : 24,475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40년 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이후 중고 시장에서 정가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이번 출판본은 전에 누락된 부분까지 새롭게 번역하여 추가되었다.

저자 앨 앨버레즈는 영국의 시 평론가다. 그는 자살이 예술 창조자들의 상상 세계에 어떻게, 왜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었고 이를 문학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단순히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비평가로서의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번째 장은 저자와 실비아 플라스의 인연을 소개한다. 그는 1960년대 실비아 플라스와 그의 남편인 테드 휴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부부가 같이 만나기도 하고 아이를 동반한 산책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두 아이를 데리고 휴스와 별거 중일 때 만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플라스가 작업 중인 시를 저자에게 낭독해주면 저자는 의견을 냈고 실제로 저자로 인해 고쳐진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앨버레즈는 플라스의 천재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는 가스 오븐의 벨브를 열고 오븐 속에 머리를 누이고 목숨을 끊는다. 당시 플라스의 나이는 서른 살. 어린 남매를 남긴 죽음이었다.

앨버레즈는 실비아 플라스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또 그녀의 죽음이 가십거리로 왜곡되기도 하는 상황에 대해 유감스러워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부터 시작된 플라스의 죽음에 대한 짓눌림이 어떻게 그녀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분석한다.

두번째 장 '자살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자살이 어떻게 인식되었고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해 다룬다. 서구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자살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세번째 장 '자살, 그 폐쇄된 세계'는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소개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등의 주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가장 분량이 많은 마지막 장 '자살과 문학'은 앨버레즈가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집이다. 실비아 플라스가 트리거가 된 자살이라는 행위와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관점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과 작가, 예술가들이 소개된다. 낭만주의 시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독문학을 전공한 최승자 시인이 '베르테르'가 아니라 '베르터'라고 번역한 걸까?)이나 20세기 다다이즘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 밖에 윌리엄 카우퍼, 토머스 채터턴, 키에르케고르, 예이츠 등 다양한 작가들의 사례가 인용된 시와 함께 등장한다. 문학적 지식이 확장되는 내용인 동시에 저자의 깊이있는 해석이 알차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더디게 넘어가는 구간도 많다. 하지만 의미를 파악하고 생각하느라 꼭꼭 씹어서 읽게 되는 책이다. 특히 인용된 시들이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라 그런지 더 잘 다가왔다. 단순히 텍스트만 번역된 느낌이 아니라 우리말로 재창작된 또다른 시들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이 더 놀라웠던 이유가 에필로그에 반전처럼 등장한다. 앨버레즈 본인도 자살 시도의 경험이 있었고 다행히 실패했다는 것. 저자는 그 경험으로 자살한 이들을 한층 더 이해하며 오래도록 읽히는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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