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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절

  “자유로운 정신(21절)의 절대적 규정/사명(Bestimmung), 또는 원한다면, 절대적인 충동은, 정신의 자유가 정신에게 대상이 되는 것, 즉 자유가 정신 자체의 이성적 체계가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이러한 체계가 무매개적인 현실성의 세계(26절)가 되리라는 의미에서 자유를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유를 그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정신의 목적은 의지가 즉자적으로 있는 것을 이념과 같이 대자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의지 이념의 추상적 개념은 자유로운 의지 일반으로, 이는 자유로운 의지를 의지하는 것이다.”

 


  헤겔이 생각하는 정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유로서 그것의 대상을 다름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과정은 이어지는 28절에서 그려지며, 정신은 세계와 화해하고 그 자신의 잠재성들을 완전히 발달시킴으로써 이념, 주관과 객관의 통일로서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자유로운 정신의 사명은 자유를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자유가 정신의 이성적 체계로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정신의 이성적 체계가 또한 정신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무매개적인, 직접적인) 현실성의 세계로 또한 체현되는 것이다.  

  해당 대목에 대한 녹스의 역주에 따르면, 여기서 “자유로운 의지가 자유로운 의지를 의지한다”는 의지의 추상적 개념은 칸트의 규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추상적인 동일성일 뿐이며 그에 해당하는 진정한 내용을 결여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윤리학은 이러한 추상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헤겔이 말하는 구체적인 것은 추상적 동일성이 아니라 ‘대립물의 통일’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자유는 의지가 단순히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구현하는 법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헤겔이 생각하는 의지의 이념은 주관적인 의지와 이러한 의지에 내용을 부여하는 객관적 제도들의 체계를 종합하는 것이다(Hegel, G. W. F. Hegel's Philosophy of Right, T. M. Know (tran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7, 317-8쪽).  

 

28절

  “의지의 활동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모순을 극복하고 전자의 규정으로부터 후자로 그 목적을 옮겨놓으며 동시에 객관성 속에서도 자기 곁에(bei sich) 머무르는 것이다. 이것은 그 안에서 객관성이 단지 무매개적인 현실성으로 있는 의식의 형식적 방식(8절)을 넘어서는 것으로, 이러한 활동은 이념의 실질적 내용(21절)의 본질적 발달이다. 이 발달에서 개념은 처음에는 자체로 추상적인 이념을 그 체계의 총체성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총체성은 실질적인 것으로, 한갓 주관적인 목적과 그것의 실현이라는 대립과 무관하며 두 가지 형식 모두에서 동일한 것이다.”

 


  헤겔이 보기에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의지를 어느 한쪽으로만 정의하는 것(자의로서의 자유, 본능으로서 또는 직접적인 자유)은 일면적인 것이다. 참된 자유는 오성의 단계에 있어서는 확고부동하게 구별된 채로 머물러 있는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을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의지는 우선 미리 주어진 어떤 내용 없이 자유롭다는 점(자의)에서 볼 때는 주관적인 것이지만 여기에 그칠 경우 그저 일체의 내용을 도외시하는 공허한 주관성에 그칠 뿐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관적인 의지는 객관성 속에서 그 내용을 획득하고 관철해야만 한다. 이를 헤겔은 객관성 속에서도 ‘자기 곁에 머무름’이라고 표현한다.(다른 곳에서 헤겔은 다소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이를 정신 및 자유와 연관시킨다. 그에 따르면 정신은 그의 타자에서 자기 자신과의 동등성을 보존하는, 곧 자기 자신 곁에 있는(das Bei-sich-selbst-Sein)(『정신현상학』 552쪽) 것이다. 타자에서 ‘자기에게 있는’ 것은 인간적인 ‘자기의식’의 참된 존재방식인 자유를 가리킨다. 가토 히사타케 외 엮음, 『헤겔 사전』,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 b, 2008, 433쪽. Enzyklopädie 199절도 자유를 비슷한 표현으로 정의한다. "In Andern bei sich selbst sein") 여기서 객관성이란 주관성과 완전히 분리되고 주관성에 의해서 전혀 매개되지 않은, 무매개적인 현실성으로서 객관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무매개적인 직접성이란 타자와 연관되지 않는 단순한 것에 머무르는 탓에 이는 그저 의식의 ‘형식적인’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지의 활동이 보여주는 이념의 ‘실질적’ 내용의 발달은 처음에는 그저 추상적이던 이념을 ‘체계의 총체성’으로 이끎으로써 그저 주관적이기만 한 목적과 그것의 실현이라는 이항대립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대립을 극복한다는 것은 주관적 목적(의지의 주관성)과 그 실현(의지의 객관성)을 분리하여 의지를 일면적으로 파악하는 견해를 극복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29절

  “자유로운 의지의 현존재 일반인 것이 법/권리이다. 이것은 따라서 이념으로서 자유이다.”

 

주해: 칸트의 규정(『윤리형이상학』 서론 1부)이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정에서의 요점은 ‘나의 자유 또는 자의를 보편적인 법에 따라서 각자의 자의와 함께 존립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다.(헤겔에게 철학의 대상인 이념이나 절대자는 체계적인 총체성 속에 있다. “자유롭고 참된 사상은 내적으로 구체적이며 따라서 이념이고, 그것의 완전한 보편성에서 보면 이념 자체, 즉 절대자이다. 이에 대한 학문은 본질상 체계를 이룬다. 왜냐하면 참된 것은 구체적인 만큼, 오직 자신 속에서 스스로를 펼쳐가고 한데 통일되어 결합되어 있는 것, 즉 총체성이기 때문”(『철학백과』 서론 14절). 헤겔,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 김소영 옮김, 책세상, 2002, 76쪽. ) 이는 한편으로 제한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규정을 포함하며 다른 한편으로 긍정적인 규정인 보편적인 법 또는 소위 ‘이성의 법’은 형식적 동일성과 모순율로 귀착된다. 이러한 정의는 루소 이래로 유명해진 견해를 포함하는데, 이에 따르면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며 이성적이고 참된 정신으로서의 의지가 아니라, 특수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자의 속에 있는 개별자의 의지가 실질적인 기초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원리가 채택되면 이성적인 것은 단지 이러한 자유에 대해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며 또한 내재적으로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으로, 형식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거기에는 사변적인 사상은 전혀 없으며 철학적 개념에 의해 거부당하게 된다. 이 현상은 머리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그것이 기반하는 사상의 천박함에 비견될만 한 끔찍한 현상들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헤겔은 즉자대자적인 자유가 현실에 구현된 것을 법/권리라고 부른다. 이는 자유의지가 순전히 현실과 무관한 어떤 개념에 그쳐서는 안 되며 개념과 그것의 실현(현존재)이라는 법의 이념을 철학적 법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1절에서의 요구의 결실이 일단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유의 이념은 앞서 언급된 주관성과 객관성의 대립을 극복하고 양자가 통일된 것으로서 이념이다. 헤겔은 주해에서 자유에 관한 칸트의 규정에서는 참다운 자유가 아니라 여전히 추상적인 동일성에 머물러 있는 자유, 변덕스럽고 자의적인 자의만이 나타난다고 비판한다.( 앞선 15절에서의 헤겔은 자의가 단지 대자적인 자유, 임의로 이러저러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우연적인 의지라고 말한다. “다만 자연적 충동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의 의지와 즉자대자적으로 자유로운 의지 사이의 반성이라는 중간”) 이는 법을 단지 자유를 제한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표상할 뿐만 아니라 칸트의 자유 규정이 제시하는 긍정적인 요소인 보편적인 법 또는 ‘이성의 법’은 형식적인 동일성이나 모순율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칸트와 달리 헤겔에게 법은 단순히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칸트가 말하듯 어떤 개인의 자의가 모든 이들의 자의와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규정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할 수 없는 공허한 형식주의라는 것이 헤겔의 되풀이되는 요지이다.

  아울러 이러한 칸트의 규정은 실상 루소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이 헤겔의 비판인데(녹스는 『사회계약론』 1부 6장(“구성원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공동의 힘을 다해 지킬 수 있는 결합 형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저마다 모든 사람과 결합을 맺으며 자기 자신 이외에는 복종하지 않고 전과 다름 없이 자유로울 것”을 가리키는 듯 하다 - 발제자)을 그 전거로 제시한다. Hegel, G. W. F. Hegel's Philosophy of Right, T. M. Know (tran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7, 318쪽.), 이는 특수한 개인, 사사로운 자의의 의지만을 말할 뿐이지 즉자대자적이거나 이성적이거나 참된 정신의 의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헤겔은 『법철학』 258절에서 국가의 원리로 ‘의지’를 내세운 것은 루소의 고유한 공적이라고 칭찬하지만, 루소가 의지를 개별의지에서 파악함으로써 보편의지를 의지의 즉자대자적으로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루소 역시 일반의지와 전체의지를 구별했음을 상기해볼 때 이러한 헤겔의 평가는 재고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루소가 일반의지의 산출을 투표와 다수결에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일반의지를 개별의지들 사이에서 단순히 공통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의심한 것 같다.) 헤겔이 보기에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그리고 이를 계승하는 칸트의 계약주의적 법 이론)는 특수한 사적 개인들의 자의의 모음일 뿐이므로 우연적이고, 내재적으로 이성적인 것이 아닌 그저 외적이고 형식적인 보편성일 뿐이다. 이는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사유하는 사변적인 사상(칸트에게 사변이 경험에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면, 헤겔의 사변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경험적(직접적) 인식과 오성적 인식 등의 대립되고 구별되는 것들을 통일하여 개별적인 것을 고립시키지 않고 전체와의 연결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꼬우즈마 타다시 외, 『헤겔 법철학 입문』, 임혜림 외 옮김, 중원문화, 2008, 48-9쪽. )에 미달하는 것으로, 현실의 권위를 파괴하는 오성의 자유이자 부정적인 자유, 공허한 자유(5절)인 루소적/칸트적인 자유는 현실 속에서 온갖 끔찍한 현상들, 프랑스 혁명기 당시의 공포정치 같은 것을 야기했다.(『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프랑스혁명을 ‘절대적 자유와 공포’라는 제목 하에서 논한다. 순수하게 자기 자신과 동등한 일반의지인 절대적 자유, 추상적 자유를 실현하려는 혁명은 부정적인 광란이자 죽음의 공포를 야기했다. “그 죽음은 가장 차갑고 가장 평범한 죽음이며, 양배추의 머리를 잘라낸다든지 물을 한 모금 마신다든지 하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정신현상학』 436쪽) 가토 히사타케 외 엮음, 『헤겔 사전』, 4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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