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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간다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4:00

20210131 나도 해본다 이런 거 


궁금했다. 북플에서는 책 배열이 하단에만 되는데, 책 고수들이 쓴 글 위, 아래, 옆에 책을 배열한다. 사진도 배열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임? 라로님은 내 질문을 이해못했고 나는 라로님 답을 이해못했다. 꺼이~~~ 등산 후기 잘 올리는 알라알라북사랑님께 물었더니 정작 답은 다른 분이(누구였더라?? 기억 못해 죄송함다) 해주었다. "북플에선 안 돼요. 알라딘 서재에서만 돼요." 뭣이라. 고작 그런 이유. 그 답을 듣고 난 날로부터 몇십 일이 흘렀다. 오늘 시도한다. 잘 되려나?? 두-근근근근. 뭐 이 정도는 아님.^^


오늘의 현황. 

옆지기와 딸이 집을 비웠다. 아들은 . . . ㅠㅠㅠ 나의 불찰이다. 같이 딸려보냈어야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나는 엄마바라기 아들이 예뻐 죽겠는 때가 더 많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19가 이 시간을 앗아갔다. 


읽은 (syo님 흉내 중^^) 

 나만의 셰익스피어 읽기 첫 번째 권.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죽기 전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 읽을래요 라는 나의 말에 대학 때 영국인 교수님(귀화하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검지를 메트로놈처럼 까딱까딱 가로저으며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허나 나는 죽기 전 아니고 더 늙기 전에, 눈이 더 침침해지기 전에 교수님 권고를 무시하고(무릇 어른들 말씀은 어겨야 제맛이니) 읽겠다.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햄릿에 이은 두 번째 비극으로 셰익스피어 나이 40세에 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든 소감, 

네 이놈 이야고 ~~~~

어리석은 오셀로 ~~~~~

순진한 데스데모나 ~~~~~ 















1월 4일 매일 인증 시작해 1월 31일 오늘 대항해 아닌 소항해 완료. 세이건에 이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중딩 딸이 물었다. "엄마, 이 책이 저번 코스모스보다 얇은데, 그럼 두 책 중 한 권을 본다면 이걸 읽을까?" 나의 대답. "아니아니. 이건 안 읽어도 돼! 세이건을 읽어!" 물론, 딸은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이 아이는 언젠가 읽을 것이다. 나의 집요한 강압에 무릎 꿇을 것이다. 나, 좀, 징글징글한 엄마다. 딸의 말이 그러하다. 아무튼,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는 세이건에 훨 못 미치지만 읽지 않았다면 궁금해서 계속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완독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약간 중구난방 중언부언으로 이어지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맥은 과학자들이다. 가히 과학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러시아 화학자 드리트리 멘델레예프, 노르웨이 과학자 빅토르 골드슈미트, 네덜란드 철학자이자 과학자 바뤼흐 스피노자, 오스트리아 성직자이자 박물학자 그레고어 멘델, 러시아 물리학자 세르게이 바빌로프(이 분 정말 감동적), 영국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 유대계 폴란드 물리학자 마리 퀴리, 유대계 미국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읽음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지워진다. ㅠㅠ 소항해 피날레를 마지막 페이지에 생명수를 쏟는 것으로 장식했다. 저기 보라.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앗. 서재에선 사진을 못 올리겠음 ㅡㅡ


읽는 


이성복 시인의 시론을 책꽂이에 얌전히 꽂고 대신 꺼내든 시집. 휘리릭 훑고 대번에 느낌 왔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이걸 왜 이제서 꺼내든겨, 이 바보야. 살아 있음의 속절없음, 하고 있음의 부질없음을 대변해주는 책. 나의 책. 오늘은 시 한 편 올려야쥐~~~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라 시대 진흙으로 빚은 불상들의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회의 표제인 '來如哀反多羅'는 신라 향가인 풍요(공덕가)의 한 구절로서,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새겨진다. 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이 이두문자를 의역하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로 이해되는데, 그 또한 본래의 뜻과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들을 같은 제목으로 엮어보고 싶은 은밀한 바람이 있었다. ㅡ 시인의 말 


 2021년 독서모임 2월의 책. 오늘로 4일차. 총 570쪽 중 25쪽까지 읽고 가슴 따뜻한 저자와 아름다운 문체에 반했고 57쪽까지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고 65쪽까지 읽고 나의 제의는 무엇인가 질문하며 '책읽기'라는 답을 얻었다. 처음 접하는 북아메리카의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눈에서도 키머러 교수의 학생들처럼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24) 땅의 너그러운 품에 안긴 하늘여인이 에덴의 품에서 쫓겨난 이브에게 묻는다. "자매여, 어쩌다 그런 일을 겪게 되었나요 . . . "(22) 이 책은 "인디언 여자 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무례한 백인 남자들의 세계에 조용하되 단호한 어조로 '그런 세계를 거절합니다'라고 말하는 책이다. 강추한다.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57) 


 평단에서 밀려나 있던 캐서린 맨스필드를 이렇게 수면 위로 올려준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고마움. 하루 한 편씩 읽겠다 했으나 총 아홉 편 중 겨우 두 편 읽음. 책의 제목인 <가든 파티> 재밌다. 나는 행복하나 너는 불행할 때, 내 행복을 감히 드러내기 부끄러운데 밀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런 내가 한심한데 그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은 경이롭고 인생은 요지경이다. 







 지난주 도서관에서 대출해 총 110쪽 중 34쪽까지 읽고 멀리하고 있다. 엄마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뭉클함이어서 첫줄 읽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려졌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아니 에르노의 글은 사실에 충실하다. 감정이나 회한을 최대한 배제한, 그저 있는 사실만을 쓴 저 글이 그 어떤 수사보다 울림이 컸다. 




 이 책을 미미님 서재에서 건졌던가? 아무튼 집에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는데, 그 책이랑 교차해 읽어야쥐 했다가 열다섯 꼭지 중 한 꼭지밖에 못 읽었다.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 편. 주부이자 엄마로서 저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서 짙은 동지애를 느꼈다. 나는 <엄마 수업>을 읽다 말그대로 책을 냅다 던져버렸다. 스님, 이러시면 안 돼요. 엄마들 대부분은 자신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구요!! 이런 죄책감 주지 말라구요!! 


코로나19의 끝을 알 수 없겠다 싶어졌을 때 옆지기와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내 퇴근 시간은 10시야. 10시 이후 내 이름도 부르지 마!!" 물론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나는 퇴근과 주말이 있는 삶, 월급 받는 삶을 원한다. 주부는 절대, 결단코, 집에서 놀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낱낱이 알려주고 싶으나 이제 더는 글을 못 쓰겠다. 지친다. 첨이라 적응도 안 된다. 책 배열을 다르게 하고 싶으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요걸 올리고 아들이랑 산에나 가야쥐~~~~^^


읽을 혹은 읽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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