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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기타야마 다케쿠니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가 전부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는 않는다. 어린이 독자가 성장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회의주의자가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극적 결말의 대표작이라면 역시 주인공이 말 그대로 ‘물거품이 되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꼽을 수 있다.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동화의 클리셰와 거리가 먼 결말에 대해, 작가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그 제목을 그대로 따온 미스터리 『인어공주』(부제: 탐정 그림의 수기)의 첫 문장에서부터 단호히 짚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이 정해진 사랑이었습니다.”


2002년 메피스토상을 받은 『클락성 살인사건』(김해용 옮김, 북홀릭 펴냄)으로 데뷔, 모든 작품에 물리 트릭을 고집해 ‘물리의 기타야마’라는 별명이 붙은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판타지나 SF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에 물리를 접목하기를 즐긴다. 무기적 자연의 논리성을 합법칙성으로 인식하는 물리학을 바탕에 둔 추리가 동화의 세계에서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게 될까? 시계는 1793년으로 돌아가 지중해 바닷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왕자를 구하고도 그 앞에 나서지 못한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 장면은 1816년 덴마크 오덴세. 집중하시길. 동화 속, 그 밖, 그리고 또 그 바깥으로 액자가 하나씩 덧붙여진다.


열한 살 소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얼마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아버지의 죽음에 상심한 어머니는 한스를 돌보는 데도 무심해졌다. 학업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안데르센의 앞에 어느 외국인이 등장한다.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는 남자의 이름은 루트비히 에밀 그림이다. 이들 앞에 해변으로 쓸려온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얼마 전 덴마크 별궁에 살던 왕자가 살해당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온 인어공주 자매 중 둘째인 셀레나다. 안데르센은 셀레나를 돕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왕자가 살해당했다니?


기본 틀이 되는 이야기는 당신이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와 같다.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전 지구인이 아는 이야기에 트릭을 교묘하게 설치했다. 일단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왕자가 죽었다. 별궁에서 칼에 찔린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얼마 전 모습을 감춘 시녀인데, 셀레나의 말에 따르면 사라진 시녀는 바로 인간이 된 인어공주다. 언니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고 얻어온 단도로 왕자를 죽이면 다시 지느러미를 갖고 인어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그러니 왕자를 죽인 사람은 인어공주일 수 없다. 셀레나는 동생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마녀에게 심장을 주고 인간의 다리를 얻어 뭍으로 왔다. 안데르센과 그림은 그녀를 도와 왕자 시해 사건을 풀어내기로 한다.


여기서 하나 더.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의 작가다. 루트비히는 그림 형제 중 한 사람이다. 동화의 안팎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건 풀이가 시작된다. 왕자가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야기는 1793년과 1816년을 오가며 진행되는가? 이 안데르센이 그 안데르센인가? 저 그림이 그 그림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수수께끼라곤 없어 보였던 동화 속으로 과거와 현재의 살인 사건이 끼어들고, 셀레나의 심장을 되돌릴 수 있는 시한인 일주일이 끝나간다. 조사가 더해질수록 수수께끼는 늘어만 간다.


신본격 미스터리답다고 할까, 결정적 트릭 해설 부분에서는 그림이 이해를 돕는다. 사라진 사람이 시체로 ‘등장’하는 트릭에는 물리와 심리가 함께 작용하고, 시차를 두고 진행되던 이야기가 포개진다. 기타야마 다케쿠니는 사랑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트릭과 엮고,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켜 재미를 더한 뒤 어린 안데르센의 성장을 응원한다. 이 소설은 세세한 부분까지 환상과 (물리적)사실의 조합이다. 그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에 원작자까지 끌어들여 미스터리와 버무리는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솜씨가 좋다. 이 인물들의 설정은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며, 타임라인이 맞는 뜻밖의 이름도 막판에 등장하니 그가 누구인지 발견하는 재미도 맛보시라. 




-이다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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