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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돌에게 돌려주기

눈에 바친다

 

눈에 밟힌다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눈에 손발이 달린 사람이거나

망막이 통점痛點인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무 하중도 없는 눈빛에 천만 근의

무게를 달아놓고

눈빛이 심장처럼 뛴다고

더듬었던 눈이,

밟힌 눈이 아프다 하였으니

 

두 눈이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한곳을 보는 것은

한 눈의 외로움보다는

한 눈의 나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을 눈이 읽는다

모든 희열을 눈이 말한다

모든 숨이 두 눈꺼풀로 끝난다

 

제 눈에 제 눈물을

다 바치고서야

눈은 제 눈을

돌아보지 않는다

 

 

―문동만, 「눈에 바친다」 전문, 『구르는 잠』(반걸음, 2018)

 

 

* 시집의 어느 구절을 잡아도 생각을 멈추게 되더군요. 어느 쪽을 펴도 생각이 돌아요. 어느 해, 어느 날 바닷가 늙은 집의 철없는 막내둥이가 어쩌다가 생활을 짊어지고 살아온 내력을, 너무 일찍 철들은 무거운 삶 쪽으로 걸음을 옮긴 수평선을 닮은 시인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고요. 출렁이다 다시 돌아가는 바다의 발가락 같은 간지러움을 읽다가 시인의 말을 들여다보는 연말입니다.

 

“나는 나에게 감동할 것이 희소했으므로 핏줄이나 사회적 혈연들에게서 그리움이나 한탄이나 웃음을 구했다.”

 

언제 보아도 울렁이는 파도의 말을, “피는 것 속에서 지는 것을 먼저 보는 병을 그냥 삶이라, 시라 받아들이고 싶다.”는 그냥과 결기 사이를 내년에도 살아가겠지요. 내 것이라 내보일 수 없는 빈약한 나이를 먹었으나, 그 초라함을 가져본 적 없는 웃음 쪽으로 옮겨보려는 마음을 숨길 수 없군요. 내년에는 나뭇잎을 던지고 노는, “아무도 아프지 않은 나뭇잎 싸움”을, “맞을수록 웃음만 나오는” 구르는 잠을 청하고 싶어져요. 덮을 수 없는 시집을 앞에 둔 2018년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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