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들이 온다는 책이 나올 정도로 글쓰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모든 것에 능한(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90년대생이란 새로운 종족이 나타난 것만 같다. 60년대생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70년대생들이 X세대란 이름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80년대생들이 88만원 세대라는 절망의 아이콘인 듯 헬조선을 외칠 때, 90년생들은 '그래서 뭐?'라고 당돌하게 말하면서 자기만의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느낌. 내 눈에는 그들이 정말 똑똑하고 당차보인다.
더이상 기회는 없는 나라, 청년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라라고 외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각자 몫을 하면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의 이슬아 작가를 통해 구체적으로 접한 기분이다.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난리라고 말하지만, 책으로나 인터넷을 접하는 개개인의 90년생들은 자기만의 삶을 위해 다양한 길을 개척하는 듯 보인다.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시간이 많아서 부자가 아닐까라는 부자에 대한 그녀의 정의가 새롭게 다가온다. 돈이 많기에 시간간을 벌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도 우리는 시간에 주목하기보다는 돈에 주목하곤 하니 말이다.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비용의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남들이 꺼리지만 정당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누드모델에 도전하는 그녀의 용기가 낯설기만 하다. 누드모델을 하겠다는 딸에게 고급스러운 가운을 선물할 정도로 묵묵히 딸을 믿고 그녀가 가는 길을 응원하는 부모의 모습 또한 익숙하지만은 않다. 그림의 모델이면서도 남들의 시선에 드러난 대상으로 존재하기보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사람들 그림에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주인공의 눈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공임을 망각하고 조연처럼 행동하며 눈치를 보곤 하는데 그녀는 어떻게 자신이 주인공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모든 일상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읽고 있으니 그녀는 참으로 단단한 사람이구나 생각되어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꾸미거나 어렵게 꼬아 놓지 않은 슴슴한 글로,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그녀의 일상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결국 그녀의 용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간단한 말 한 마디를 뱉으면서도 나는 이게 맞는 말인지, 내 생활을 드러내도 되는지,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고민하느라 이리 재고 저리 재다 변변한 말 한 마디 뱉어놓지 못하고 엑스트라처럼 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지 오래인데 이슬아는 그게 뭐 특별한 일이냐며 죽비같은 말을 툭툭 던지곤 한다.
나도 모르게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리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에게 90년대생인 그녀는 귀엽고 대견하기보다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하는가 보다.
돈을 더 벌려면 시간을 그 만큼 더 쏟아야 했는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기도 했다.
부자는 결국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 아닐까?-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