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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다락방
  • 라스트 화이트맨
  • 모신 하미드
  • 14,400원 (10%800)
  • 2026-08-12
  • : 570

이따금 집사2와 “다시 태어난다면?” 놀이를 할 때가 있다. 놀이라고 하니 뭐 자주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주로 일방적으로 집사2가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시 태어난다면 뭐 전공하고 싶어?” “다시 태어나도 나 만날 거야?/나랑 살 거야?” “다시 태어나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어떤 일하고 싶어?” 이런 질문들이다. 일방적이라는 까닭은 나는 현생도 너무나 피곤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 자체를 하(고싶)지 않기 때문에 집사2에게 저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집사2가 저런 질문을 하면 “다시 안 태어난다니까!” 버럭하기 일쑤이다. 그러면 집사2는 시무룩해져서 “그냥 상상이라도 해보라니까.....”

“페더러로 다시 태어난다면 생각해볼게.” “서유럽이나 북유럽 백인 남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한번 다시 살아볼게.” 이 정도가 내 대답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피곤한 지구에서 굳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그리고 그걸 선택할 수 있다면 페더러급 백인 남자가 아닌 이상은 다 거절할 것 같다. 페더러는 백인 남자인 데다가 스위스 태생이고, 신체조건은 물론이요 머리도 좋아(모국어인 스위스 독일어를 포함해 독일어/영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를 그야말로 유창하게 하고 이탈리아어와 스웨덴어도 할 줄 안다. 헐...), 아무튼 재능&지능&신체조건&성실성 다 갖춰서 테니스에서는 전설적인 선수가 되었다. 부와 명성이 따라온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물론 그에게도 고통이 왜 없었으랴(신은 그에게 나달이라는 천적을 주어서 번번이 이 남부러울 것 없는 테니스 천재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셨으니). 그럼에도 페더러라면 다시 태어나도 그 자신으로 태어나겠느냐는 질문에는 “Of course!”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페더러에게 부룬디나 수단의 흑인으로 태어나야만 한다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답할까? 일단 이런 나라에서 흑인으로 태어난다면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테니스 자체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우리라.

나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페더러가 아니라 서유럽/북유럽의 백인 남자로 태어난다면 그래도 좀 삶이 쉽지 않을까 싶다. 그때도 테니스를 칠 것 같고 그때도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닐 것 같은데 백남으로 태어난다면 혼자 자전거로 세계일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웬만한 나라에서는 길에서 자도 될 거 같음). 아무튼 이 지구에서 부유한 국가 출신의 백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특권 중의 특권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대부분의 백인 남자-백인 여성까지 포함하자-는 그들의 태생 자체가, 인종 자체가 특권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 같다. 하긴 뭐 그들에겐 공기 같은 것이겠지..... 그런데 이 특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소멸된다면? 그러고도 살아가라고, 살아가야 한다면 이 백남/백녀들은 어떻게 될까? 

모신 하미드의 <라스트 화이트맨 The Last White Man>은 바로 이 백인 남성 ‘앤더스’의 특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아침, 백인 남자 앤더스는 제 피부가 누가 봐도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보자, 어라?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이들이라면 이 문장에서 당장 그토록 유명한 첫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카프카, <변신>, 열린책들). 

문득 궁금해서 원문도 찾아보았다. “One morning Anders, a white man, woke up to find he had turned a deep and undeniable brown.”/ “As Gregor Samsa awoke one morning from uneasy dreams he found himself transformed in his bed into a gigantic insect.”(“Als Gregor Samsa eines Morgens aus unruhigen Träumen erwachte, fand er sich in seinem Bett zu einem ungeheuren Ungeziefer verwandelt.”) 독일어 원문에서 영어로 번역한 카프카의 <변신>과 <라스트 화이트맨>의 첫 문장도 거의 흡사하다. 단지 독일어 “Ungeziefer”의 해석을 영어는 물론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도 “끔찍한 벌레”에서부터 “괴물 같은 벌레” 또는 “거대한 곤충” “갑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가 읽은 번역본인 열린책들 판에서는 ‘갑충’으로 옮기고 있다.  모신 하미드는 카프카의 이 “벌레(ungeheuren Ungeziefer)”를 “deep and undeniable brown”이라고 바꾸었다. 

백인 남자였던 앤더스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벌레도 아닌 유색인이 되어 있다니! 이 무슨 일인가! 거대한 해충으로 변한 것도 끔찍하겠지만 유색인, 흑인으로 변했다니 이 또한 난리 또 난리 아닐까? 그에게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레고르 잠자’가 그랬듯이. 그는 또 분노한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꿈이 아닐까? 그러나 꿈은 아니다 그는 거울을 깨부수고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잠자’와 달리 출근하라고 방문을 두드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없다. 그는 혼자 살고 있기에. 그러나 그 또한 잠자처럼 직장은 가야 한다. 헌데 이런 피부로? 직장에서 사람들이 과연 알아볼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그는 직장에 전화를 걸어 몸이 아파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동안은 그럴 것 같다고 말한다. 한동안...... 정말 한동안일까?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서 벌레로 종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 또 다른 인간으로 단시 피부색이 변했을 뿐인데 무어 그리 걱정이냐고, 앓는 소리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은 앤더스조차도, 유색인이 아닌 백인이었던 앤더스 그 자신조차도 알고 있다. 외출을 꺼리던 그는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거리로 나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위축되는 이 느낌은. 백인 남성이었을 당시의 그는 위축된다는 느낌 자체를 가진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알기는 알았을까? 그런데 단지 피부색이 짙어졌을 뿐인데 그는 거리로 나가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신한 모습을 감추려고 후드티를 뒤집어 쓸까하다가 누군가에게 위협적인 인물로, 불량하게 보일까 봐 주춤한다. 도로에서는 운전 시비로 백인 여성이 차량 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붓는다. 앤더스는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뭐라 항변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눈도 내리깐다.... 꽤 예쁜 여자라 앤더스는 왠지 억울하다. 집에 돌아온 뒤, 그는 반추한다. 만약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여자가 알 수 있었다면, 그때의 자신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또 취할 수 있었을지” 생각에 잠긴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이 백인이라는 걸 스스로 알 수만 있었다면. 하지만 정작 자신조차 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그를” 짓누른다.(p.15)

문제는 또 있다. 여자 친구인 ‘우나’가 찾아온다. 우나 또한 백인 여성이다. 앤더스는 이 사실을 숨길 수가 없어 우나를 맞아들이면서 자고 일어나 보니 피부색이 이렇게 변했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나는 경악할 수밖에......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참 재미있게도 이 와중에도.....(아닌가? 새삼 놀라운 기회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섹스를 하는데 이 장면이 인상 깊다. 분명 오래도록 사귀어온 연인 사이인데 뭐지? 이 낯선 기분은? 당신은 누구? 나는 어디? 뭐랄까 이런 기분에 두 사람의 변신 이후 첫 섹스는 색다르기 짝이 없다(우나야, 낯선 사람하고 한 거 같아서 좋았던 거 아니니? 그만 하자 이런 이야긴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사람은 나중에 우나의 집에서도 섹스를 하게 되는데 우나는 엄마와 같이 사는 중... 근데 아뿔싸 엄마가(백인) 이 장면을 보고(아니 이눔들아! 방문을 왜 안 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악. 헐....... 두 사람 앞에서 구토를 한판 거하게 하신다. 아니, 어머님, 토하기까지야....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하는 섹스가 좀 그렇긴 하다고 해도.... 21세기에 구토까지 할 일인가요. 아무튼 흑인 앤더스와 백인 우나의 묘한(?) 연인 관계는 계속 이어지기는 한다.

앤더스는 이제 어떡할까? 혼자 사는 아버지를 찾아가니 아버지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 아니 아들이 흑인으로 변했으니 입틀막... 이걸 어째. 어쨌든 일상을 살아가야 하므로 그는 살아간다. 직장에도 출근하기 시작한다. 앤더스는 헬스클럽의 트레이너이다. 백인 전용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라 흑인 트레이너 앤더스의 존재는 껄끄럽기만 하나. 헬스클럽에는 유일하게 유색인이  사람이 있다. “피부가 어두운 야간 청소부”- 앤더스는 늘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자신이 변한 뒤 그 남자가 보내는 새로운 시선은 왠지 달갑지 않다.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마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시선”(p.57)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 불편함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앤더스는 문득 자신이 그동안 그를 친절하게 대했던 것이 진심 어린 호의가 아니었음 깨닫는다. 단지 상대를 “강아지처럼 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는 것을 드! 디! 어! 깨달은 것이다. “몇 번 쓰다듬으며 ‘잘했다’ 칭찬하는 식의 가식”이라고. 이런 깨달음은 앤더스가 “예전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p.58)

어느 아침 흑인이 되어버린 남자, 앤더스. 그는 이대로 이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바뀌어 현자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우나에게 털어놓은 것처럼 자신이 전과 같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상태, 혼돈 그 자체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가 우나에게 말했듯이 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내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p.56)한 앤더스. 그의 생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는데 어라라라...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앤더스, 이 남자 한 사람만 백인에서 흑인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백인이 흑인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질병처럼, 유행병처럼 피부색이 짙은 갈색으로 하루아침에 변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다. 도시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때부터는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일들이 앤더스가 사는 이 도시에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모두가 백인에서 흑인으로 변한다면 그래서 모두가 다 흑인이라면 문제도 소요도 갈등도 차별도 없을 것만 같은데 인간이 사는 세계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흑인으로 변해가는 이 도시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그리고 최후의 백인, “The Last White Man”은 과연 누구일까? 안 알려줌....... 페더러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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