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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다락방

관계가 많아지면 좋을까? 어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ex다락방).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기는커녕 주로 기를 빨린다고 한다(ex잠자냥. 이 인간은 주로 털동물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최근 읽은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100자평에 건수하 님이 나에게도 친한 편집자 모임 같은 게 있는지 물었는데, 그 질문을 한 당사자도 이미 예상했듯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있을 리가.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인 다섯 명의 여성들이 모여서 같이 걷고 그렇게 같이 걷다 보니 국제도서전에 같이 참여하고 같이 책을 내고 그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왜 같이 걷지?? 혼자 걷지...?“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또 든 생각. 아, 나는 이런 모임에 절대 나갈 일이 없겠구나. 

인간관계가 많은 것도 싫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여러 사람이 같이 뭘 하는 것이다. 요즘 집사2랑 차 타고 어딜 가다가도 보면 한강이나 경복궁이나 광화문 등등 러닝크루라고 같이 떼를 지어 달리는데..... 난 또 중얼중얼. “도대체 왜 같이 달리는 거야? 좀 그냥 혼자 달려! 게다가 차도에서 왜 저래? 고라니야? 한국 사람들 진짜 이상해. 혼자서는 왜 뭘 못해? 등산도 떼 지어 가, 자전거도 떼 지어 타, 심지어 테니스조차!! 테니스는 그래 파트너가 있어야 하니까 혼자 하기 어렵다 쳐. 아니 그럼 그냥 단식을 치지 왜 다들 복식이야! 그리고 왜 다들 동호회를 드느냐고! 테니스를 치는 거냐? 테니스는 조금 치고 술 처먹고 짝짓기 하려고 다들 혈안이지 어휴,” 이러고 있으면 집사2가 말한다. “또 시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그렇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데다가 감정을 지닌 존재라 이기심과 감정이 만나면 결국 감정적으로 꼬일 일이 많아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진다. 이거 참 피곤하지 않은가? 그러니 애초에 관계를 최소화하는 게 좋다. 관계가 많아지면 누군가의 부탁이나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일도 자연 많아진다. 그런데 부탁을 거절하는 일, 대부분의 사람은 어렵고 불편하다. 그래서 마지못해 들어주고 나면 피곤해지고... 악순환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여러 이유가 있겠고 그중 외로움이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것보다도 언젠가는 이 모든 관계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 때문에 차마 놓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 그래서 거절도 잘 못하게 된다. 게다가 인간은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타인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내려놓으면 편하다. 외로움이야, 인간에게 근본적인 것이고 그게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해서 채워지는가?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일화 한 가지. 지난 2~3월에 모르는 번호로 집요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애초부터 모르는 번호는 몰라서 안 받고 아는 번호는 알아서 안 받고(피곤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화를 도통 받지 않는 나. 아니 근데 문제의 그 번호로 문자에 음성사서함 메시지까지 남긴 게 아닌가! 소름. 그 무렵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너 혹시 외삼촌한테 연락 온 거 있니? 삼촌이 너 번호 좀 알려달라고 그래서 내가 알려줬는데.” “몰라. 모르는 번호가 자꾸 연락오긴 하던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그 번호의 주인공은 외삼촌이었다. 이 인간이 대체 왜?? 메시지를 보니 갑자기 내가 보고 싶고 뭐 그렇다는데... 대체 왜? 아니나 다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삼촌 아들놈(나한테는 이종사촌)이 결혼한다고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싫어.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나 전화 안 받는다? 안 받아도 되지? 그런데 그 이후로 너무나 집요한 외삼촌- 날이면 날마다 전화에 메시지에 음성사서함에(음성 메시지 끝까지 확인 안 했음;), 심지어 결혼식 당일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처음엔 자냥아 보고 싶다 어떻게 지내니 이러더니 내가 전화를 안 받을수록 이 녀석아 어른 전화를 안 받니 괘씸하다! 이렇게 변질 ㅋㅋㅋㅋㅋ 나는 끝까지 받지 않았다. 결혼식도 물론 가지 않았다. 울 집에서 안 간 사람 나밖에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옆에서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집사2가 감탄했다. 너 정말 대단하다... 나도 그러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

집사2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거절 못하기 달인이다. 옆에서 보는 나는 답답해 죽는다. 아니 얘는 왜 마케팅 전화 온 것조차 끊지 못하고 받아주고 있어?! 끊습니다, 하면 그만인데 왜 저걸 못하지? 싶은 것이다. 뭐 나랑 성격이 다르니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괴로워하면 나는 주로 이렇게 말한다. 주변에서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말라고,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친구들도 대부분 다 정리했고(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 잘랐다...) 주변에 인간이란 집사2와 가족 정도만 남았는데 이 사람들한테도 종종 거절 펀치를 잘 날려서 차갑다는 말을 잘 듣는다.


얼마 전에도 
집사2: 기름 넣으러 가는데 나 심심한데 같이 갈래?
자냥: 아니
집사2: 넌 참 거절 잘해. 
자냥: 응 ㅋㅋㅋㅋㅋ

얼마 전에도
동생1: 스케쳐스 하나 신을래? 내가 생선으로 사 줄게  ㅋㅋㅋ 나도 허리 아픈데 저거 신고 벗기 진짜 편하다?? 
자냥: 아니 ㅋㅋㅋ
자냥: 절대 안 신을 듯
자냥: 사지 마~
자냥: 나 스케쳐스 싫어해
자냥: 못생겼어...
동생1: ㅇㅇ 모양은 구려 ㅋㅋㅋㅋ
자냥: 응 안 신고 돈 낭비여 사지 마숑

증거1





그 얼마 전에도 

동생1: 출근했냐 한 30분 후에 어디 있냥 토마토 주고 갈라는디
자냥:  엥? 회사지
동생1: 집에 갖다 놓을까? 어차피 내부 타는 듯
자냥:  너 편한대로 
동생1:  그럼 회사에 줄게ㅋㅋ
자냥:  토마토 무거운 거 아녀?
동생1: 아 봉투로 하난데 한 4 5kg 되는 듯
자냥: 헐....
자냥: 야 무거 ㅋㅋㅋ
자냥: 주지 마 ㅋㅋ

증거2



그래서 동생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집에 놓고 갔다고 한다... 거절과 가스라이팅의 달인 잠자냥(엥?)

또 얼마 전에도 

동생2 : 너 엄마표 콩국물  오이지  열무김치 원함??
        보냉백에  세시쯤 두면....  오늘 늦나 
        나 지금 엄마 집인데 원하면 배달감
        10분 내로 대답 요망ㅋ
자냥: 아닝
자냥: 괜차나

증거3



(이때 섭섭할 사람은 엄마일 텐데 -당신이 만든 반찬 거절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필요 없어서 거절)


엄마하고도 보자..... (헐 엄마랑 마지막 대화 5월 8일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냥: 엄니 어버이날 감축드립니다~
자냥: 어버이날 까까값 농협으로 좀 보냈슈~ 
      맛난 거 사드슈 ㅋㅋ
엄마:  오 고마워 얼굴 볼 기회는 없는겨?
자냥: ㅋㅋ 오늘 난 회사유
엄마: 응

증거4



이날 나 빼고 동생1, 2 언니 엄마 모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러고 보니 
회사 친구도 몇 번 점심 먹자고 한 걸 내가 계속 거절(혼자 먹는 게 좋아!)하고 산책 몇 번 같이 가자는 것도(혼자 걷는 게 좋아!) 거절했더니 이젠 말도 안 꺼낸다. 와 정말 너무 편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절은 처음이 어렵다. 몇 번 하고 나서 저 사람은 원래 차갑다..... 고 인식되면 편하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울 언니가 너무 속 터졌는지, 너 사회생활은 잘 하냐? 이래서 응 나 잘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건 집사2가 인정했다. 차갑고 거절도 잘하는데 사회생활은 자기보다 더 잘한다고. 차가운데 또 잘 챙겨준다고 그래서 고양이들이 다 나만 좋아한다고 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울 집 냥이들이 집사2보다 나를 더 좋아하긴 한다. 얼마 전에 퇴근 후 씻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고양이 다섯 마리가 다 내 주위에 몰려서 그릉그릉하고 있는 거 나보다 늦게 퇴근한 집사2가 보고 빵 터지면서.... 와 부러워 애들이 왜 나한텐 안 그래?! 자냥왈 “애들이 사람을 알아보는 거지.” )

거절 잘하고 사람 잘 안 만나고 인간관계 협소해도 사회생활은 잘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기본 예의만 지키면 된다. 그리고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감정적이든 관계로든 뭐든 엮일 일 없는) 이런 사람들한테 친절하면 된다. 

길 가다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길을 잘 묻는다. 집사2는 이것도 좀 신기해한다. 싸가지 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이 왜 너한테 물어보느냐고.........응 나처럼 편하게 생기면 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도 퇴근길에 외국인이 다가오며 뭐라고 묻더라. 내가 또 이럴 땐 이어폰까지 빼고 반응해준다. 경복궁 어떻게 가느냐는 질문. 전철 타는 법을 알려주고 나서 내 길 가는데.... 잠깐, 저 사람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걱정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시 따라가서 여기서 타라고 알려주고 왔다. 그랬더니 여행객들이 땡큐~땡큐 함박웃음. 지난번에도 어떤 아주머니가 광장시장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서 요렇게 저렇게 가는데 하다가 에이 모르겠다, 거의 그 길 도입부까지 안내. 그러고 보면 난 모르는 사람들한텐 친절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은 다시 볼 일도 없고 감정적으로 엮일 일도 없고 이해관계를 따질 일도 없으므로 편하고 그러니까 친절하게 대하면 된다. 헌데 한국인들은 인맥...(이라는 말 싫어함) 관리 때문에 인간한테 얽히고설킨 게 많아서 엮여 다니느라 피곤한 게 아닐까. 경조사도 내가 갔으니 너도 와야 하고, 이 부탁도 저 부탁도 들어줬으니 들어줘야 할 거 같고. 혼밥 하는 사람 혼자 극장 가는 사람 혼자 공연 가는 사람 외로움에 찌든 사람 쯧쯧 이렇게 볼까 봐 신경 쓰이고 무섭고 싫고. 그러니 타인이 지옥 이러고 사는 게 아닐까.


출판사 편집실은 시간이 매우 느리고 깊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달리던 기차가 갑자기 무소음 구간에 들어선 듯한 정적감,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의 목소리처럼 흘러가는 오후, 그 안에서 사람들은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정말 독서실에서처럼 의자 끌리는 소리까지 엄청 크게 들렸다. 몇 주 업무를 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같은 공간에 앉아 있어도 대체로 각자의 일을 한다. 본인이 맡은 몇 권의 책과 씨름하듯 일을 하면서, 타인의 눈엔 평온해 보여도 거대한 소용돌이를 품은 강물 같은 시간을 저 혼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중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 글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에 출근해서 종일 아무 말 없이 원고만 보다가 퇴근 하는 날도 많다. 그래서 작은 소음에도 좀 예민한 편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출판사라해도 마케터라면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영업도 혼자 담당해야 하는 1인 출판사는 꿈도 꾸지 않는 나.... 아무튼 이렇게 나는 최소한의 관계만 맺으며, 남는 시간은 주로 책과 씨름하고 고양이들과 룰루랄라 즐겁게 지내다가 어느 날 세상과 안녕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찾아보니 이런 책도 나왔더라? 근데 이 책 소개 문구 중 하나..



거절 잘 못하는 '잠자냥-99_건수하'에게 추천합니다... ㅋㅋㅋㅋ



“타인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초능력에 가깝다. 거절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초능력자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책을 펼쳐 읽기 바란다. 자기다운 삶을 살도록 거절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나 초능력자임. 길게 썼지만 이거다. 

1. 사람한테 미련을 두지 않는다.
2.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생각하지 않는다.
3. 어차피 사람들은 타인한테 그렇게 큰 관심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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