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내가 좋아하는 극작가이다?! (단, 사람 말고 그들이 쓴 작품) 둘 다 정답.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 작가는 비극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극작가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한정된 공간과 몇몇 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그로 인해 폭발하는 개인의 비극을 묘사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나다.
희곡은 무대 위 상연을 목적으로 하기에 공간의 제약이 크다. 때문에 많지 않은 인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첨예한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테네시 윌리엄스를 비롯해 유진 오닐의 극에는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하긴 인간사에서 가족 내 갈등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가 또 어디 있으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아서 밀러 또한 그런 작가 중 하나이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나 유진 오닐에 비해 사회 문제를 살짝 더 첨가한 점이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아서 밀러는 그 유명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대공황의 불황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한 가장家長의 초상을, <모두가 나의 아들>에서는 어느 군수 업자와 그 일가의 몰락으로 전쟁과 자본의 문제를, <시련>에서는 작가 자신이 피해자였기도 했던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한 바 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떤 사회 문제를 건드리면서 개인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대공황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을 보여줌으로써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폭로한 <세일즈맨의 죽음>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단지 이번에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바다 쪽에서 만을 바라보고 있는 슬럼가, 세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물류를 삼키고 있는 뉴욕의 목구멍’ 바로 그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런 일자리조차 탐낼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붕괴되는 꿈(또 다른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그리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는 고대 비극에서 곧잘 등장하는 코러스 역의 변호사 ‘앨피에리’의 존재가 신선하다.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이자, 주인공 ‘에디’의 불행을 전조하는 인물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경고를 주는 등 꽤 큰 비중을 맡고 있다. 엘피에리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 자신도 말하기를, 변호사는 전적으로 비낭만적인 직업이다.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주로 부두 노동자와 그들의 아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은 보상 건, 퇴거, 가족 간 분쟁 등 가난한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들이다.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은 길에서 우연이라도 이 변호사를 만나는 일을 꺼려한다. 그 동네에서 “변호사나 신부를 길에서 만나는 건 재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재앙과 연관이 되어서만 고려 대상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엘피에리가 코러스 역을 맡고 있으니 비극은 예견된 셈이라고나 할까.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의 주인공은 ‘에디 카본’- 나이는 마흔, 거칠고 약간 과체중의 부두 노동자이다. 극이 시작하면 에디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옥신각신하고 있다. 심한 실랑이는 아닌, 애정을 기반으로 한 투덜거림 정도랄까? 에디는 조카 캐서린의 옷차림을 지적 중이다. 너는 요새 너무 살랑살랑 걷는다, 가게에서 사람들이(주로 남자들이) 너를 쳐다보는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캐서린은 그런 에디, 그러니까 이모부의 잔소리가 딱히 싫지는 않은 듯 애교를 부리며 웃어넘긴다. 에디와 그의 아내 비어트리스는 부모를 일찍 잃은 캐서린을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보살펴왔는데 이제 장성한 캐서린은 곧 일자리를 얻어 이 집, 그러니까 에디의 집에서 독립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중에 비어트리스의 사촌들이 머나먼 곳, 이탈리아로부터 배를 타고 와 에디의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아하, 비어트리스의 사촌인 마르코와 로돌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불법 입국하는 이민자들인 것이다. 이민단속국에 걸리면 마르코와 로돌포는 물론 에디까지도 위험에 처할 것이 뻔한데도 사람 좋은 비어트리스는 사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해 자신들의 집에서 한동안 기거하게 한 것이다.
마르코와 로돌포가 도착하면서부터 갈등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어떤 갈등일까? 에디가 이 사촌들에게 불법 입국을 빌미로 협박을 할까? 이민자인 이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깨닫고 좌절할까? 뜻밖에도(?) 문제의 근원은 캐서린, 아니 에디의 마음속에 있다. 캐서린은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전교생 중에 뽑혀 꽤 큰 배관 회사의 비서직(속기사)으로 취직하게 된다. 기뻐하는 비어트리스와 달리 에디는 불만을 쏟아내며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 동네는 해군 기지 옆이다. 동네가 마음에 안 든다. 배관 회사라니, 그들은 부두 노동자들이나 다름없다. 너는 결국 배관공들 또는 선원들과 쏘다닐 것이다. 그러려고 내가 캐서린 너를 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사무실, 뉴욕의 빌딩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제발 여기, 브루클린과 똑같은 동네는 가지 말라 등등. 얼핏 보면 조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나머지 걱정이 심한 이모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캐서린에게는 이모부. 그러니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이다. 에디는 마흔, 캐서린은 열일곱. 한집에 사는 이 남자의 마음속을 차지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인가? 캐서린인가? 조금씩 그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이 엿보이기 시작할 무렵 이탈리아에서 마르코와 로돌포, 젊은 남자 둘이 도착해 한 집에서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마르코와 로돌포 두 형제 중 형인 마르코는 이미 결혼해 아내와 자식이 여럿이다. 미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생각밖에 없는 건장하고 성실한 남자로 에디는 그에게는 별 불만이 없다. 일 잘하는 좋은 일꾼을 소개해줬다고 브루클린 노동자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로돌포’이다. 로돌포는 이탈라이인 치고는 드문 금발에 노래도 잘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돈을 버는 족족 음반을 사거나 몸치장하는 데 다 써버린다. 일하는 곳에서는 물론 심지어 집에서도 종종 노래를 크게 부른다. 불법 체류자가 이런 짓을?!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마르코처럼 성실하게 일해서 집으로 돈을 보내거나 모을 생각은 꿈에도 없는 저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에디는 로돌프의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인다. 헌데 저 노래하는 카나리아 같은 놈한테 다들 불만이 없는 게 이상하다. 일하는 곳에서도 로돌포가 입을 열면 다들 웃기 바쁘다고, 녀석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은 톡톡히 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심지어 캐서린조차 녀석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흉허물 없이 지낸다. 점차 둘이서만 하는 외출이 잦아진다. 종종 밤늦게 들어오기까지 한다. 에디는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속 편히 털어놓을 수 없는, 그조차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질투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다. 이 불길은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캐서린을 달래고 어른다. 그 녀석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와 결혼해서 영주권을 얻을 속셈이야. “이건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법이야.” 이민법이 시행된 이래로 계속 써먹는 수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캐서린을 비롯해 주변 그 누구도 에디의 말을 듣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 아내 비어트리스조차 캐서린을 놓지 못하는 에디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비꼬며 경고를 할 뿐이다. 이제 자기도 참는 데 한계가 있노라고.
요리를 잘한다, 높은 음으로 노래를 한다, 춤을 춘다, 드레스를 만든다, 저놈은 분명 게이가 맞는데! 남자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는 호모 녀석인데 캐서린을 좋아하는 척해서 영주권을 따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에디는 마침내 엘피에리를 찾는다. 법적으로 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불법 체류자, 금발 호모 녀석 로돌프를 제지할 방법은 없는지 상담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꺼내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에디 : 이틀 전날 저녁에 조카가 자기한테 너무 작아진 드레스를 꺼내 왔어요. 작년 한 해 동안 키가 부쩍 컸거든요. 그리고 이 친구가 드레스를 들고 가서 식탁에 놓더니 재단을 해요. 척척 자르더니 완전 새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그 모습이 천사처럼 예뻤어요-너무 예뻐서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요. (82~83쪽)
갖고 싶은 여자인 캐서린, 조카라는 이름 아래 영영 곁에 묶어두고 싶은 캐서린, 그런데 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호모 같은 놈 로돌포. 그런데 에디는 사실 로돌포에게도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캐서린을 빼앗아갈까 봐 적대적으로 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비정상적인 면, 이른바 남성적이지 않은 속성에 눈길이 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로돌포를 욕망하는 것이다. 에디에게 천사처럼 예쁜, 그래서 너무 예뻐서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사람은 캐서린인가? 로돌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확실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는 아니라는... 이 걷잡을 수 없는 에디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은 마침내 크나큰 비극을 불러온다.
우리의 코러스 엘피에리는 일찌감치 에디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섞어 놓았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해. 아내, 아이들-모든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사랑이 지나칠 때가 있어. 알지? 너무 지나쳐서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84~85쪽) 에디의 이 지나친 사랑은, 욕망은 결국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버리고 만다.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엘피에리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모두가 아는데 결국 당사자만 모르는구나. 인간이 제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본인만 모르는 듯. 아니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게 인간인가. 그래서 가련한 존재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