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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다락방

*잠자냥의 긴 글 성애자들(건수하, 다락방 등)을 위한 아주 긴 글이므로 각오하고 읽으시오

<버릴 수 없는 티셔츠-70장의 티셔츠, 70가지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도 티셔츠에 관한 글을 끼적이고 싶어졌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 자체가 아마도 이렇게 ‘나도 그런 티셔츠 하나 갖고 있는데’ 하면서 사람들이 추억에 젖고 그러다가 글을 끼적이고 싶어지는 욕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어떤 글에서 밝힌 적이 있는 것 같은데(아마 투비였던 듯), 나는 옷을 좀 오래 입는 편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을 사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입는다. 그러다 보니 옷장에 옷이 켜켜이 쌓여서 터질 지경이 되는데 그럴 땐 눈물을 머금고 처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거나 버릴 수 없는 티셔츠에 관한 이야기. 또는 어쩔 수 없이 버릴 수밖에 없었던 티셔츠 이야기.

<버릴 수 없는 티셔츠> 이 책을 보면 글쓴이들이 아끼거나 버리지 못하는 티셔츠 중에 유독 록 밴드 티셔츠가 많다. 록 밴드 티셔츠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음악가)와 관련된 티셔츠들이 많더라. 내게도 그런 티셔츠가 여러 장 있다. 사실 한때는 덕후처럼... 좋아하는 록 밴드 티셔츠를 왕창 사 모으기도 했다. 예컨대 스웨이드, 플라시보, 매닉스, 위저, 스노우 패트롤, 더 킬러스, 킨, 피더, 그린데이, 오아시스…. 집사2랑 같이 살게 되면서 집사2가 나의 이 티셔츠들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너 진짜... 덕... 덕후구나.” 집사2는 그때 속으로 이 사람 참....... 어쩌지 싶었다고(큐브릭이나 베어브릭 레고 피규어처럼 장난감도 모으던 시절이니 아마 더.... 말잇못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중에서 몇몇 개는 옷장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버렸는데(품질이 조악하거나 세탁 후 늘어나거나 줄어든 경우),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게 스노우 패트롤 티셔츠이다. 스노우 패트롤은 집사2 만나기 전에 만나던 사람, 그러니까 X하고 관련이 있는 밴드이다. 1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1999 Triport Rock Festiva)l이 역대급 우천으로 폭삭 망하고 난 뒤 몇 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가 두 번째로 다시 열린 적이 있다(2006년 7월). 그해는 진짜 내한했던 밴드들이 엄청났다. 스트록스, 스노우 패트롤, 제이슨 므라즈, 플라시보, 블랙 아이드 피스, 프란츠 퍼디난드 등 진짜 어마어마했다. 나는 3일 내내 집과 인천 송도를 오가면서 이 공연을 혼자!!!!!!!!!! 봤는데(그때 만나던 사람인 ‘과메기’는 록 음악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 혼자 다녔다), 아무튼 2006년 7월 28일 첫날 내한했던 밴드 중 ‘스노우 패트롤’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스노우 패트롤 팬은 국내에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아닌가? 지금도 그러한가?), 이들은 내 최애 밴드 중 하나이다(보컬 게리 라이트바디 목소리가 진짜 영혼을 울린다). 아무튼 그런데.... 그즈음 온라인으로 알고 지내던 X가 무려 본인이 스노우 패트롤 팬이라고 밝히고는 이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게 아니가. 내가 3일 내내 송도까지 출퇴근 하면서 혼자 공연 보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던 X는 그날 공연장에서 공연을 같이 봐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네, 뭐 그러세요....” 그러고는 나는 그날 오전부터 이 공연장에서 죽 치고는 내내 좋아하는 밴드들 공연을 보고 있었다. 문제는 이날도 또 역대급으로 비가 내렸다는 것. 7월의 장맛비에 땀에 폭삭 절은 상태였는데 스노우 패트롤은 오후 5시 공연인가 그랬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X는 그때 회사에 반차를 내고 조퇴해서 스노우 패트롤 공연(만) 보러 왔다.

공연장에서 여자처자 연락이 닿아서 그렇게 처음 만난 X- 아, 이런 사람이구나! 인사를 하고 같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비를 맞으며 스노우 패트롤 공연을 보았다. 나는 그때 ‘과메기’하고는 아직 헤어지기 전이었던 터라(그해 여름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 다녀온 후... 눈물의 헤어짐), X에게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는데...(진짜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훗날 X는 말하길 나 때문에 울렁거리고 미식거려서 공연을 잘 못 봤다고. 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탄생하는 마성의 자냥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진짜 그랬는지 과메기랑 눈물의 이별을 한 그해 가을 그러니까 아마도 9월말부터인가 X하고 본격적으로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스노우 패트롤은 X하고 내가 둘 다 좋아하는 밴드라서 결국 그들이 또 내한했을 때 같이 이 티셔츠를 사서 입고 공연을 간 적이 있다..... 나는 커플템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X는 좀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걸 입고 같이 공연장에 간 날 무지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 티셔츠는 아직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다. 스노우 패트롤 음악은 요즘 가끔 들을 때가 있는데(최근 앨범은 딱히 좋지 않아서 잘 안 듣는다) X가 생각나는 음악이긴 하다.




이게 바로 스노우 패트롤 티셔츠.




이 앨범 나올 시기에 투어하면서 나왔던 티셔츠이다.


락 덕후의 티셔츠 좀 보실라우...?



킬러스. 내한한다고 해서 사뒀는데 내한 공연 취소됨... ㅠㅠ



이건 피더. 앨범 샀을 때 따라온 티셔츠.



플라시보 티셔츠. 정작 이걸 입고 공연간 적은 없다.



그린데이 티셔츠. 이것도 그린데이 공연장에 입고 가지는 않았다... 너무 바보 같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위저. 같이 위저 좋아하는 친구랑 공구했다. ㅋㅋㅋㅋ 같이 입고 공연보러 갔음 ㅋㅋㅋㅋㅋㅋ



이런 티셔츠도 있지만 X 때문에 왕창 티셔츠를 처분한 적도 있다. X는 집착이 좀 심한 사람이었는데 특히 내가 자길 만나기 전에 사귀던 사람(과메기)한테 유난히 질투가 심했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과메기랑 내가 6년이나 사귄 데다가 딱히 서로 싫어져서 헤어진 게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과메기랑 관련된 물건이나 추억 등등에 더 광분했던 X는... 눈썰미가 좋아서 그랬는지 내가 입는 옷 중에서 딱히 내 취향이 아닐 것 같은 티셔츠나 셔츠 같은 걸 잘도 꼬집어 내는 게 아닌가. 그러다 어느 날 콕 물었다. “이상하다, 니가 고른 것 같지 않은 티셔츠가 종종 있던데....” 아 미쳐 ㅋㅋㅋㅋ 그랬다. 과메기는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쨍한 색이라고 해야 하나? 밝고 선명하고 아무튼 강렬한 색.. 보라색 이런 색을 좋아했는데 무채색 즐겨 입는 나한테 강렬한 색을 입히고 싶었던지 같이 옷을 사러 가면 그런 색을 골라주거나 그런 티셔츠나 셔츠를 선물해주거나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진 옷 중에 알록달록 스트라이프 티셔츠, 보라색 티셔츠 이런 게 많아졌는데 X는 이런 옷을 귀신같이도 과메기 취향이라고 알아보고는 마침내 “그 옷 버리면 안 돼?”.......냐고 했던 것이다. 안 입으면 되잖아! 했지만 그조차도 못마땅해서 제발 버리라고.............. -_-; 아니 그래도 대부분 랄프로렌인데 그냥 버리라고??? 그 시절엔 당근마켓 같은 것도 없었으니 결국 어쨌느냐 하면 ㅋㅋㅋㅋㅋ 그때 내 동생이 만나던 남친한테 다 넘겼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사람이 아주 좋아했었다는 후문....)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여태 갖고 있는 티셔츠도 있다. 바로 이것... 이건 진짜 색깔이 내 취향 아닌데 ㅋㅋㅋㅋ 과메기가 내 생일에 선물로 사준 티셔츠이다. 그해 여름 마지막으로 함께 떠났던 여행지에서 입고 그 이후로는 입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그런 티셔츠이다. 과메기야 잘 지내니! 네 딸 많이 컸겠구나!!




바로 이 티셔츠. 진짜 내 취향은 아닌...;;;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그러고 보면 스트라이프 무늬를 좋아해서 스트라이프를 골라주거나 선물한 적이 많은 사람은 과메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 사람은 동숭시네마테크에 날 따라왔다가 사귀게 된 사람이니까 ‘동숭’이라고 부르겠다....)이다. 동숭이 내 생일에 선물해준 이 티셔츠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뭐 딱히 추억이 남아서라기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티셔츠라서. 와 근데 그러고 보면 이 티셔츠 조만간 나와 함께 지낸 지 25주년을 맞이한다.... 오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 티셔츠는 과메기 만날 때도 입었고, X 만날 때도 입었고, 지금의 집사2 만날 때도 입었고.... 역사가 유구한 티셔츠이다. 근데 다들 내가 고른 티셔츠인 줄 알고 있음. 동숭아, 잘 지내니? 결혼은 했는지 모르겠네요. 




곧 25주년을 맞이할... 동숭이 선물 티셔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사2는 알록달록한 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스트라이프에 환장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입으면 다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인데 그래도 주로 내가 검은색을 입었을 때 예쁘다고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이 사람이 내 옷장 열어보고는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무슨 랄프로렌 매장인 줄... 색깔별로 다 있어??? 왜 똑같은 걸 계속 사??” 하고 빵 터진 적이 있다. “그게... 이십 대 때부터 사서 안 버리고 갖고 있으면 그렇게 된다니까...” 하니까 “옷 오래 입는 거 좋지.” 하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이십 대 때부터 산 거라는 이야기에 이런저런 추억이 깃든 옷이려니 하고 넘어간 듯하다.

집시2하고는 테니스장에서 알게 되어서 가까워졌기 때문에 집사2한테 잘 보이려고 산 옷 중에는 테니스 옷이 진짜 많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니스장에서 만나니까 그렇죠. 암튼 그런 옷 중에 이 옷은 아놔 진짜 미쳐ㅋㅋㅋㅋㅋㅋ 진짜 내 취향 아닌데, 단지 그때 내가 응원하던 선수인 앤디 머레이가 2012년 US오픈 우승할 때 그 시즌에 입었던 티셔츠라 기념으로 샀다. 조코비치와의 결승 경기가 5세트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 중이었는데 경기가 길어지다 보니 어머나! 테니스 레슨을 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된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당연히 앤디 머레이의 우승을 기원하면서 테니스 경기를 끝까지 봤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가야지만 집사2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날 결국 5세트를 보지 않고 테니스장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사2가 말하기를... “어?! 오늘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머레이 경기하지 않아요?” “아.... 네 근데 그냥 이길 거 같아서 왔어요.” 대답했는데 나중에 집사2가 말하길... 그때 속으로 이랬다고 한다. ‘얘가 나한테 단단히 미쳤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티셔츠를 보면 집사2가 아직도 놀린다. 앤디 머레이는 은퇴한 지 오래이다. 




바로 이 옷이긴 한데..... 잘 안 입기는 함;;




앤디 머레이가 입은 핏은 이렇다.... 아 나 바지도 샀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머레이가 든 저 라켓이 내 현재 라켓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사2가 놀리는 옷 중 하나로 이 빨간 아디다스 트레이닝 팬츠도 있다. 아니 그때 내가 왜 이런 바지를 샀는지 모르겠는데 이걸 종종 입고 테니스장을 갔단 말이지? 이 옷에 대해서도 나중에 집사2가 말하길.... “그 빨간 바지 있잖아... 같이 걷기 좀... 그랬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바지는 지금 엄마 집에 있는데 엄마도 종종 동생들한테 물어본다고 한다. “이 바지는 대체 누구 거냐? 사이즈 보면 자냥이 거 같은데, 걔가 이런 색도 입니...?” 도대체 그때는 왜 이걸 샀을까? 그냥 그 시절 내 불타는 마음이라고 치자.





바로 이 빨간 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집에 있어서 사진은 못 찍음



그 시절 나는 이런 핏을 원했떤 것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집사2가 이 바람막이는 아주 좋아한다. 그해(2012년 여름)에 가까워지고 나서 X 때문에 힘들다고 어느 카페에서 울던 때도 내가 이걸 입고 있었다고, 나보다 더 기억을 잘하고 있다. 그해 가을에는 내 덕분에 테니스 너무 재미나게 친다며 맛있는 거 사주고 싶다고 참치회집에 나를 데려갔는데, 아니 이 인간, 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룸을 예약해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 그렇게 술을 마시고 2차로 어느 카페에 가서 병맥주를 마시는데 급기야 내 옆자리로 넘어와서 앉아 나를 당황하게 만들더니, 집에 오려고 같이 택시 탄 택시에서 집사2는 나한네 먼저 뽀뽀를 했답니다.......... 이 사람, 많이 취했구나 싶었는데 웬걸.......... 훗날 집사2가 말하길. “바보구나! 나 그때 취한 척 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옷은 지금도 봄가을에 종종 테니스 치러 갈 때 입는데 입을 때마다 그때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집사2가 하는 말 “나, 이 옷 좋아해! 낡아도 버리지 마!” 




안 버릴게용... 근데 요즘 좀 꽉 끼네요. 그때보다 살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 글 성애자들을 위해 예전에 볼로그에 썼던 글도 가져와 봅니다. 

그게 아니라;;
2011/11/30 18:18 
나에게는 대학 때부터 입던 셔츠나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면서 장만한 셔츠들이 아직도 있다. 그리고 이것들을 여전히 입는다. 내 옷장에는 벌써 10년을 훌쩍 지난 옷들이 꽤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입고 다니는 옷들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뭐 유행을 절대 타지 않는 옷들이니까’ 당연히 지금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끄덕끄덕 할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기도 하지만 새로 산 티가 팍팍 나는 옷이나 신발보다는 어딘지 좀 입었거나 신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옷과 신발을 좋아해서 그 옛날에 입던 옷을 아직도 즐겨 입는다. 문제는, 10년을 훌쩍 지난 셔츠들은 당연하게도(?) 소매가 해지거나, 어딘가 구멍이 나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빛이 바래기도 한다는 점이다. 스웨터 같은 것들은 올이 좀 풀린 곳도 있고, 구멍이 뚫린 곳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걸 개의치 않고 좋다고 입고 다닌다.

새 옷 같은 느낌을 딱히 좋아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새 옷을 살 때도 처음부터 인위적으로 구멍을 냈거나, 해졌거나, 낡은 부분을 기운 듯한 모양의 옷을 살 때가 많다. 이른바 ‘빈티지’라고 부르는 그런 종류의 티셔츠나 셔츠, 혹은 스웨터, 바지 등등. 그런데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엄마는 영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하도 오래전부터 입어서 이제는 낡아 소매가 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때도 그렇고, 새로 장만했지만 전혀 새것 같지 않은 구멍이 뚫린 옷을 입고 있으면 굉장히 불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옷 살 돈이 없느냐, 돈 줄 테니 옷 좀 사 입어라’ 등등의 잔소리를 하신다. 내가 아무리 좋아서 입는 옷이고, 새 옷인데 일부러 이렇게 나온 옷이라고 해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아이고, 어머니, 제 옷장을 열어보세요, 얼마나 옷이 많은지;; -_-;;)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생들은 옆에서 혀를 끌끌 차며 "엄마, 쟤가 입고 있는 옷이 얼마짜린 줄 알아?" 하고 말해도 소용없다. -_-;;

내가 새 핸드폰을 장만하자 가장 좋아한 사람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엄마한테 “나 새 핸드폰 했어.”라고 심드렁하게 보여주자, 엄마는 요즘 이 세상에 이토록 큰 기쁨은 없을 것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 핸드폰을 뿌듯하게 보고 또 보시더라. 엄마가 대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엄마는 “내가 너 핸드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얘가 돈이 없어서 핸드폰도 못 사고 그 낡아빠진 핸드폰을 고장 났는데 계속 쓰나 싶어서 돈 주면서 핸드폰이 하나 사라고 할까 하다가도 괜히 자존심 상하게 할까봐 말도 못했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빈티지 옷에 대한 변명을 늘여놓을 때처럼 내가 핸드폰을 지금까지 바꾸지 않았던 이유들을 아무리 구구절절 설명해도, 엄마는 그저 돈이 없어서 그 낡은 핸드폰을 차마 바꾸지 못하고 있던 불쌍하고 또 불쌍한 자식 취급을 계속했다. “그게 아니라니까...”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엄마 눈에 내 낡은 옷과 핸드폰은 ‘불쌍한 자식’의 상징처럼 각인되어 있는 듯싶다. 하긴, 결혼해서 편하게 살고 있는 언니와 상대적으로 (나에 비하면)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두 동생에 비한다면 엄마 눈에 나는 참 안쓰러운 존재이리라.

하지만 엄마 내 낡은 옷과 핸드폰은 그런 게 아니라고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이 낡은 옷들과 낡은 기계를 버리지 못하는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한데, 그러면 엄마는 나를 더 불쌍하게 생각할까?  



이 글을 쓴 지 14년이 흐른 2025년에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엄마가 제발 좀 바꾸라고 했던 문제의 폰.... 이렇게 보여도 이게 스마트폰이랍니다...?!

이 폰을 끝으로 아이폰으로 갈아탐.




얘들아, 근데 이게 뭔 줄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억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거 진짜 좋아했음..... 물건이야, 물건.



빈티지
2009/06/12 15:04 

낡은 듯한 느낌의 옷을 좋아해서 몇 벌 있다. 그중 많이 좋아하는 티셔츠가 검정색 폴로셔츠인데 전체적으로 선명한 검은색이 아니라 물이 많이 빠진 느낌에 목과 팔뚝 그리고 밑단은 낡아서 올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날 엄마와 밖에서 밥을 먹었다. 이 검은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한참 밥을 먹던 엄마가 안쓰럽다는 듯한 얼굴로 “너 요즘 돈 없니?”하고 묻는다. 내가 백수로 지내던 시절이다. 난 엄마가 내가 백수라서 걱정스러워 저러나 싶어 “왜? 돈 주려고?”하고 물었다. 엄마는 “그래 내가 돈 좀 줄게, 너 가서 옷 좀 사 입어! 그게 뭐야 옷이 다 낡아빠져서는!”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엄마, 이거 원래 이렇게 나오는 옷이야, 산 지 얼마 안 됐는데?”라고 했더니 엄마는 원래 그렇게 나오는 옷이 어디 있느냐며 백수 딸이 당신이 걱정할까봐 거짓말까지 한다는 듯 더 애처롭게 쳐다본다. “이거 말고도 이런 옷 더 있는데?”라고 했더니 “그런 옷 사 입지 마! 나 같은 사람은 야 거지인줄 오해하겠다!”란다.

오늘 아침 허벅지 부분이 좀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데 발가락이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북 찢어졌다. 꺅! -_- 무척 좋아하는 바지라 찢어져도 아랑곳 않고 입고 다녔는데! 이럴 수가 이렇게 북 찢어지면 곤란하다. 옷 수선점에 맡겨서 꿰매달라고 할 생각인데 이걸 입고 나가면 엄마는 또 뭐라고 그럴까? 회사도 들어갔으니까 옷 좀 사 입어! 라고 할까? 




바로 이 티셔츠다!!!!!! ㅋㅋㅋㅋㅋ 원래 저렇게 뜯겨져서 나왔음. 

이 티셔츠는 아직도 즐겨 입는다. 엄마, 나 오늘도 입고 왔어!!!!!! 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지난해 이맘때 은오 만날 때 랄프로렌 검은색 리넨셔츠 한 벌과 인디고블루 티셔츠를 사서 입은 적이 있다. 내가 한번 옷을 사서 입는 주기를 생각해보면 그 옷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입을 것 같은데, 그 옷을 입을 땐 은오 생각을 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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