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색깔로 화려한 것들을 흑백사진에 담아 놓은 느낌.
샨사의 소설들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다. 기억들은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시간은 그것들에 서늘한 서글픔을 덧붙여 놓는다. 그래서 단지 웃을수만은 없게 만든다. 웃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씁쓸함. 어쩌면 이제껏 내가 본 샨사의 소설들이 해피엔딩인적이 없어서일까란 생각을 하기도 해 봤지만, 그것보다도 샨사는 책 첫 페이지부터 그 모든 서글픔을 예고 하고 있는 듯한 말투를 하고 있다. 해피엔딩이 된다 해도 내게는 새드엔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죽음'과 '재탄생'을 의미한다는 버드나무.
하나, 둘, 셋, 넷. 이 네가지의 이야기는 버드나무로 엮여있다. 버드나무를 사랑했던 영민한 어린 아이는 아버지의 첩을 범하고 도망가는 유목민이 되고, 혁명에 앞장 서지만 배반 당하는 학생이 된다. 그리고... 아니, 이 이야기는 어린시절, 소방관 아저씨와 소방차를 연결하고 경찰 아저씨는 경찰차와 연결하는 줄긋기 놀이처럼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드나무를 사랑했던 아이는 자유를 꿈꾸지만 쓰러져 가는 가문을 지키기 위한 여전사가 된 것일 수도 있고, 홍콩행 비행기를 타며 꿈을 꾸는 아징일 수도 있다.
삶은 계속되고 거듭되는 윤회로 그들은 만나지만 끝내 해피엔딩은 아직이다. 다음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시들어버린체로 여행가방 안에 놓여 있는 수양버들관에서 거듭하고 싶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