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다운 집을 찾아...
맑음이 2010/06/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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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집 마련의 여왕
- 김윤영
- 9,900원 (10%↓
550) - 2009-12-15
: 282
“슬픔은 공기 중에 떠 있고 나는 호흡을 멈출 수가 없다는, 미사마 유키오의 문장 한 구절.”
송수빈의 말처럼.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쩜 이 한 문장에 전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송수빈. 실어증 걸린 딸 지니, 실종된 남편 그렉. 일하던 출판사의 부도와 함께 연대 보증으로 전 재산인 집까지 날리게 된 상황에서 도피하듯 떠난 태국의 한 휴양도시에서 만난 땡 중. 그녀로 인해 송수빈의 인생이 180도 변할 거라곤 그때까지 수빈은 예상하지 못했다.
수상한 비구니 스님(그녀는 땡 중이라고 말한다)과의 만남을 피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예상치 못한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에 이어, 공항에 마중 나온 리무진 한 대. 그렇게 그녀의 인생의 수상한 조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리무진이 향한 곳은 서울 외곽 신도시의 전원주택도 아니요 시골집도 아닌 요상한 형태로 만들어진 조립식 건물에 멈춰 선다. 그곳에서 만난 수상한 영감. 그는 정회장-그는 태국에서 만난 땡 중의 누이였다-으로 통한다.
현재 그녀의 경제적인 상황을 쭉 설명하면서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테니 자기 밑에서 일하라는 제안. 거절하기엔 그녀에게 너무 유혹적이다. 그렇다고 생판 처음 본 이 영감을 믿어야 할까?
“하루 24시간은 몇 분인가?”
“천사백사십분”
이렇게 시작된 그와 정사장-그녀는 정회장을 정사장이라 부른다-과의 인연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던 그녀가 집다운 집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다.
우연히 만난 그렉과의 인연. 그녀가 그를 처음 본 순간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국제구호단체 일을 하던 그렉과 책을 만들던 그녀는 한국에서의 인연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로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그렉을 만났고, 비행기 일정도 연기하며 3개월간 그와 그곳에서 함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을 했고, 결실을 맺어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쁜 지니라는 딸을 얻고, 그렉의 소울 하우스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년 전 골든트라이앵글 근처의 고산족 마을로 떠난 그렉의 실종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삶은 여느 여인네의 삶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영감이 주는 일은 미션과 같았다. 부모 잃고 고생하며 살아가는 형제에게 그들의 형편에 맞는 집을 구해주는 것이다. 가진 돈 4000만원, 회사 대출 2000만원. 이 돈으로 서울의 빌라도 경기권의 아파트로 구할 수 없는 돈이다. 두 번째 미션은 침해 걸린 박선생이 원하는 집을 구해주는 것이다. 침해 걸려서 정확히 자신이 어떠한 집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끔씩 돌아오는 그의 기억에 의지해 그녀는 그가 원하는 집을 구해주어야 한다. 세 번째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윤소장네 가정을 위한 집. 윌리엄스증후군이며, 절대 음감을 가졌고,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아이. 소리에 애민해 시끄러우면 안되고, 언덕이 있어도 안되고, 아이가 쉽게 뛰어놀 수 있는 집. 마지막 네 번째 미션은 재개발 단지에 알박기하고 앉아 있는 이간호사를 안전한 거주지로 옮겨주는 일.
그렇게 이 모든 미션을 마친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소식이 날아든다. 남편의 소식.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닌다는 그렉. 그리고 현재 그렉이 한국 경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정사장의 사망소식.
소설은 2008년 10월의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기 이전의 상황을 중심으로 엮어가고 있다. 현실의 대한민국과 소설 속의 대한민국은 다른 건 없었다. 거품 경제로 인해 부동산 가격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코스피 지수 상승으로 코스피 3000선까지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그 신화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무너지고 코스피 1000선이 무너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가격도 서서히 거품이 꺼져가고 있다.
저자는 그런 우리네 현실에 자본주의적 사회논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듯하다. 어렵게 살아가는 형제에게 내 집 장만의 기회를 주고, 침해 노인의 속사포 같은 수다 속에서 그의 추억의 집을 찾아주며,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한 아늑하고 편안한, 사람들의 손가락을 받지 않으면서 아이가 맘껏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집을 구해주는 송수빈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수전노 같은 정사장의 마지막 유언장을 찾아가는 부분은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유언은 그가 지상에서 한 가장 뜻 깊고 행복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수빈과 그렉의 선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기있는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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