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살거나 힘든 아동기를 보낸 사람은 필연적으로 음주와 흡연을 비롯해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행동들을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93
각자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든 갑자기 모든 구성원의 ACE 지수를 밝힌다면 이것이 우리 중 아주 많은 사람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과거에 일어났던 슬프고 마음 아픈 일들은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트라우마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죄인이든 성자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끈질기게 이어지는 생물학적 결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우리와 우편번호가 다른 지역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여기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96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면 스트레스 반응은 현재의 자극과 과거의 자극을 반복적으로 혼동한다. … 몸은 똑같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문제는 그것이 깊이 새겨져 고착되는 것, 즉 과거에 붙잡힌 스트레스 반응이 반복 모드로 고정되는 것이다.│105
식욕을 떨어뜨리고 지방 연소를 자극하는 아드레날린과 달리 코르티솔은 지방 축적을 자극할 뿐 아니라 몸이 당분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갈망하게 만든다.│112
나날이 직면하는 삶의 어려움들도 사랑을 품은 양육자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116
스트레스 반응 체계가 건강하게 발달하려면 아이는 긍정적 스트레스와 견딜 만한 스트레스를 모두 경험해야 한다.│119
“내가, 내 가족이 수 세대에 걸쳐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 내가 그 모든 일에 완전히 대처하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리겠죠. 하지만 이젠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단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에요. 내 아이들의 ACE 지수가 8점이나 9점, 10점이 되지 않도록 내가 막을 수 있어요.”│336
나는 믿는다. 각자 이 문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질 때, 우리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생길 것이라고.│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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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는 관심이 크지 않아도 심리학과 철학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 어릴 때부터 사람의 심리와 삶과 죽음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뒤표지 문구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8세 이전에 반복적이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에 걸릴 가능성은 2배, 심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2.2배,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릴 가능성은 3.9배, 뇌졸중을 겪을 가능성은 2.4배, 자가면역질환으로 입원할 확률은 2배 높으며, 기대수명은 20년 짧다.
읽은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시무시한 결과치 아닌가. 사람이라면 트라우마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어릴 때 새겨진 정신적 고통이 성장하면서 생물학적으로 몸에 영향을 끼친다니. 그것도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저자는 센프란시스코의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 ‘아이들을 위한 웰니스 센터’ 설립자로, 소아과의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저자는 아동기에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성인기에 나타나는 질병의 치명적 위험 요소임을 임상의학, 뇌과학, 면역학을 기반으로 밝혀내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직접 겪은 경험 바탕으로 개념을 설명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의 가장 큰 핵심으로 언급되는 ACE 즉, ‘부정적 아동기 경험Advense Childhood Experiences’은 나에게도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대한 정의를 열 가지 범주로 분류해, 18세가 되기 전 이 열 가지 경험 중 어떤 경험을 했는지 질문해 노출 수준을 판단한다.
1.정신적 학대(반복적)
2.신체적 학대(반복적)
3.성적 학대(접촉)
4.신체적 방임
5.정서적 방임
6.가정 내 약물남용(알코올중독자나 약물남용 문제가 있는 사람과 함께 거주)
7.가정 내 정신질환(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 또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과 함께 거주)
8.어머니가 폭력을 당함
9.부모의 이혼 또는 별거
10.가정 내 범죄행위(가족 중 투옥된 사람이 있는 경우)
부록으로 첨부된 「내 ACE 점수는 몇 점일까?」를 통해 책을 읽은 독자도 자신의 ACE 점수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아이에게 만큼은 불행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원하기에, 미래에 내게 올 아이 만큼은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면 좋겠다고 아주 간절히 바랐다.
어릴 때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있다. 지금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 극복했지만 이전까지는 사람 믿기가 너무 두려웠다. 이유 없이 잔병도 많이 앓았다. 그때 아팠던 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다. 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구원을 만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 준 이 책이 참 고맙다.
하나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는 인디언의 말이 있다. 프레임을 바꾼 시선이 필요하다. 모두의 관심과 힘이 있어야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극복할 수 있다. 저자는 그렇게 믿고 외치고 있다.
신기하게도 푸른숲 북클럽 네 번째 미션 도서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또한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다.
*푸른숲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