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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서재
  • 참을 수 없는 가우초
  • 로베르토 볼라뇨
  • 9,720원 (10%540)
  • 2013-09-30
  • : 624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5편과 에세이 2편이 담긴 책. 이것도 좀… 심하게 좋았다.

 

<짐>은 슬픔의 초상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미국인 짐이 넋놓고 불쇼를 바라보는 장면을 꽤 강렬하게 담아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은퇴한 변호사가 팜파스 지대의 농장으로 가서 가우초들(말하자면, 라틴 아메리카의 카우보이들)을 고용하고 토끼들과 뛰노는(?) 이야기다(아님). 역자의 해설을 보니, 이 작품은 보르헤스의 <남부>와 <마가복음>을 패러디했다고 한다. 또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도 하며, 여러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작품들을 따왔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상호 텍스트 놀이의 방식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것. 다른 건 안 읽어봐서 이런 건 몰랐음. <경찰 쥐>는 카프카의 <여가수 요지피네 혹은 쥐 족속>과 연결되는 작품이다. 카프카의 소설 속 쥐이자 가수인 요제피네의 조카가 쥐이자 경찰로 나온다. 탐정소설의 형식으로 현대의 병폐와 악의 욕망을 그려낸다. 되게 재밌게 읽음.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루셀로트가 프랑스의 영화감독 모리니가 자신의 소설을 자꾸 표절하는 것에 아무 대응도 안 하다가, 오히려 그가 자신의 ‘최고의 독자’라고 느끼며, 파리에 있는 그를 만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예술의 표절 문제에 좀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가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는 신성함과 폭력이, 선과 악이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눈 내리는 어느날, 성직자가 되려는 한 소년은 신비한 수도승을 마주치고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날, 갓 정신병원에서 나온 한 사람이, 수도사와 아이를 살해하고 수도복을 입으며 집에서 나온다. 라쇼몽처럼 관점을 달리하는 이야기인데, 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아이러니를 잘 담아냈다.

 

에세이 <문학+병=병>은… 진짜… 최고였다. “나 책 왜 읽지?”, “문학은 다 무슨 소용이지?”에 대한 최고의 답변과 생각이 담긴 에세이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 문학+병=병이지. 어쩌라고. 에세이 <크툴루 신화>에는… 사실 잘 모르는 작가들 얘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스페인어권 문학의 베스트셀러들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튼 그럼에도 볼라뇨의 비꼬는 솜씨는 기가 막히다고 느꼈다. 루이스 하이드가 <선물>에서 이야기한 부분과 맞닿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것, 예술(책)은 선물인 동시에 상품일 수 있다. 이때 예술은 선물의 속성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선물이 아니라 상품으로만 존재하는 예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예술을 선물 받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선물을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다음은 <문학+병=병>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어둠의 인간, 잔학한 인간은 어둠의 환희, 잔학한 행복을 시도할 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중략) 잔학한 인간의 행복은 잔학합니다.”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근대인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명확한 진단이 있을까요. 그 권태를 벗어나는 데, 그 죽음의 상태를 탈출하는 데 우리 손에 주어진 유일한 것, 그렇다고 그다지 우리가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 그것은 바로 공포입니다. 다시 말해 악이란 말입니다.”

 

“<그 미지의 세계 깊은 곳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라는 마지막 시구는 무한에 무한이 더해지더라도 무한은 여전히 무한이듯, 본질적인 변화 없이 공포로 수렴되는 공포에 맞서 싸우는 예술의 초라한 깃발입니다. 그것은 시인들의 전투가 대부분 그렇듯, 이미 패퇴가 자명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말라르메는 여행과 여행자의 운명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이지튀르>의 저자는 우리의 행위만 병든 게 아니라 언어 또한 병들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치료를 위해 해독제나 약을 찾을 때, 새로운 것, 오직 미지의 곳에서 발견되는 그것을 찾으려면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합니다. 비록 이것들이 우리를 심연으로 이끌지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 심연이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카네티는 그의 저술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 카프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처음 피를 토한 날 이후로 그 무엇도 자신과 글쓰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뭔가가 책이든 몸짓이든, 잃어버린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 어떤 것이 됐든, 그걸 찾아서 말입니다. 운이 따르면 늘 거기에 있었던 것, 바로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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