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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서재
  •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 정지돈
  • 12,600원 (10%700)
  • 2020-04-25
  • : 930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태동하던 근대에, 유머는 교양의 일종이었다. 부르주아에겐 물적 자본과 함께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일종의 상징 자본이, 교양으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유머는 자기 고유성을 만드는 토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가 대표적이다.

이 책엔 소설가 정지돈이 쓴 18개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유머와 재치라는 상징 자본 혹은 교양이 아주 잘 활용됐다. 그래서 이 책이 작가에게, 돈이라는 물적 자본까지 많이 안겨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됐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책 판매량의 지표가 되는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 2023년 11월 30일 기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한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932점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나온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세일즈 포인트는 96,850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으로 부자가 되진 못 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부자가 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제가 막 엄청 가난한 건 아닙니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회상하며 “‘비에 젖은 쥐새끼’처럼 가난했다” 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매고 다니는 백팩에 우산을 챙기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산 만세! 잠깐 그런데 내게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상징 자본은 있나….

테리 이글턴으로 돌아가보자. 테리 이글턴은 유머의 발생 원리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방출’, ‘우월‘, ’부조화‘가 그것이다. 일상의 긴장 상태에 의해 억눌린 에너지를 폭발시킴으로서 웃음을 주는 것이 ‘방출’이다. 우월감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 ‘우월‘이다. 그리고 논리의 역전, 비이성적인 상태와 상황을 활용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부조화’다.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적극 활용된다. 약간 이상한(…) 소리들을 마구 늘어놓아서 삶의 긴장을 풀어준다. 어떤 인물들은 약간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논리를 넘나들고 횡단하는, 실없는 소리들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실없어지기 위해 애쓰는 글들. 그저 빛… 그저 갓… G.K 체스터턴은 말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글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저 빛… 그저 갓….

이 책은 2020년 봄에 나왔다. 나는 그때 두 작품 정도를 읽고 책장 한켠에 박아두었었다가, 3년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나는 원래 이 책을 트레바리 모임 책 중에 한 권으로 선정했었다. 근데 사람이 안 모이자, 담당 크루님이 “지금 선정하신 책 중에서 몇 권은 좀 더 유명한 책으로 바꿔보면 모집이 더 잘 될 거예요”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로 대체되었다…. 물론 교체를 했다고 모집이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깨달았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는 죄가 없다는 것을….

나는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다’라는, 제목부터 웃긴 작품을 읽고 좋아하기도 했고, 서평가 금정연님을 주인공으로 한 ‘어느 서평가의 최후’도… 너무 웃으면서 읽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진짜?” 라는 생각을 마구 떠올렸다. 어쩌면 그래서 좋아했을 것이다. 읽는내내 자유롭다고 느꼈으니까. 사회학자 엄기호와 언어학자 김성우의 대담을 담은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엄기호는 영상을 다루는 것과 글을 다루는 것의 핵심적인 차이를 ‘자유로움’에 둔다. 논리의 전개, 인용과 배치, 편집 등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지돈의 이 소설집에는 그 자유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그 덕분에 한껏 실없을 수 있었다. 세상은 무겁고 슬프지만 그래도 가끔은 성공적으로 실없는 작가들이 있다. 다닐 하름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그리고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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