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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노트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는 그 말과 태도가 그 인간됨을 뜻하는 거라면 결국 어떤 인간’성‘을 스스로 체득하며 알아가는 건 그 말과 태도일 테고 그 거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 마련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대하는 말과 태도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해서 정체성이 확립되어가고. 판단하지 말고, 라고 앨리슨 에스파흐 소설에서 한 인물이 이야기할 때 아 그렇구나 결국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지점은 그 판단에 있는 거로군, 알았다.

왜 우정에 판단의 잣대가 필요한 겁니까?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니까 누가 지구인이고 누가 외계인인 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그만일 따름인데 마치 모럴의 경중을 따지는 듯한 태도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것. 누가 누구보다 나은 인간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어서, 스스로 마치 사제처럼 구는 말과 태도. 혹여나 사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가? 실제 사제들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없는 걸 보면 그건 아니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사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 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P16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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