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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노트





딸아이가 전경린의 소설을 읽고는 며칠 내내 소설 이야기뿐이다. '천륜'이라는 말에 꽂혔고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니 더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천륜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데 말야 엄마 라고 쫑알쫑알.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에 대해서 또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에 대해서도 쫑알쫑알. 사랑이란 어떤 식으로 그 길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쫑알쫑알. 스스로 원해서 맺은 인연이 아니라 자의와 무관하게 하늘에 의해서 맺어준 인연. 으흠. 아이가 강추해서 모닝 커피를 마시며 금세 읽었다. 나이들어 감수성이 완전 쇠가죽처럼 되어버린건가 딸아이처럼 크나큰 감동을 먹지는 않았다. 다만 이 장면은 좋다 좋다 하고 두 장 사진을 찍어놓고보니 아 나는 이제 할미된 입장을 헤아리는 거로구나 깨달았다. 아이가 새로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는 바로 어제 말한 내가 새로 사귄 미녀 친구) 둘 다 페미된 입장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언니 근데 전 결혼할 건데, 라고 말하니 새로 사귄 친구가 진짜? 놀라서 애도 낳고? 물어서 네, 애도 낳을 거, 하나 낳고 좋으면 둘 낳고 둘 낳아서 좋으면 셋 낳으려구요, 라고 말했더니 기함을 했다고 한다. 아들아들딸 혹은 딸딸딸 혹은 아들딸아들이 좋을 거 같다고 우리 둘은 종종 이야기를 한다.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주는대로 좋다, 더 거대해지면 거대해지지 결코 그 사랑이 줄어들 까닭은 없다, 부차적으로 겪어야 할 소소한 귀찮은 일들은 꽤 생길 수 있으나 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니 그 사랑을 더 많이 주는 편이 좋을 거다, 라고 딸아이 아주 애기때부터 가스라이팅한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그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이 어미가 너를 낳아 너를 키워보고 하는 소리다. 그러니까 대물림해라 이 소리였는가 싶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양육에는 그닥 재능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사업을 하느라 정신 없었고 새벽에 나가 밤 늦게 들어와 우리 사남매는 엄마 얼굴을 노상 볼 수 있는 일요일이 좋아서 얼른 일요일 오면 좋겠다 일요일 오면 좋겠다 했다. 엄마는 나 돌잔치 끝나고 바로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나는 갓난아이때부터 살림 봐주던 할머니 손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던지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그 할머니 손에서 컸고 지금도 그 할머니 품에서 자라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랑이 어마어마했던 존재였다. 강아지처럼 자랐고 공주처럼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 할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져내린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 겪었고 태어나 종일 울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게 내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할머니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프랑스에 있었을 때였다. 그 전까지 가끔 할머니를 본 적 있고 할머니와 통화를 하곤 했다. 출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할머니는 울었다. 그러니까 그 전화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다녀온 엄마와 통화하고 동생 품에서 엄청 울었다. 동생은 누가 보면 엄마가 돌아가시는 줄 알겠다 언니야, 했다. 동생도 할머니가 키워주긴 했으나 서너살 무렵이었던지라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나만큼 할머니 사랑이 유난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내게는 제2의 엄마였구나 라는 사실도 동생 목소리를 듣고난 후에야 알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할머니부터 찾았고 할머니에게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거리며 이야기했다. 엄마가 질투를 했었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커서 들었다. 이 에미보다 할미를 먼저 찾는 게 일이었으니까. 엄마가 바쁘기도 바뻤고 양육에 재능도 없긴 없었으나 그래도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고 그 사랑의 방식이 좀 다른 엄마들과 다르긴 했다. 부족하다고 여겼으나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성인이 되어 나중에 커보니 알겠더라. 엄마도 분투했구나 라는 사실.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애쓰면서 사랑을 드러냈는데 그게 온전하게 닿지 못해 더 과잉보호를 했던가 싶기도 하고. 극중 새별이 나이가 여섯살이다. 딸아이는 여섯살 기억에 남는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곤 한다. 내 최초의 기억도 그 무렵이다. 그 전에 있었던 일 몇 가지가 기억에 남긴 하지만 어슴푸레하게 느낌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 명확하게 아 이건 기억나, 이런 건 여섯살 때부터.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 엄마에게 잘 하자. 이게 제일 크나큰 소득이군 후후. 끝없이 사랑으로 감싸줄 존재는 결국 어미뿐이다, 라는 말을 언젠가 엄마가 들려줬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소설 읽어보니 다시 와닿았다. 옆 테이블에서 나이든 두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때마침 같은 테마이다. 남편이 죽었을 때랑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랑 차원이 다르긴 해 그치? 형님, 하고 한 분이 말하니 그렇지. 남편 죽고난 후에는 눈물도 몇 방울 나오지 않았는데 엄마 돌아가셨을 때는 그냥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지. 하고 말씀하시니 맞아 맞아, 나도 그랬어,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생각하면 아직도 억장이 무너져내려, 라고 말씀하셨다. 생때같은 새끼를 다른 사람 손에 보내고 그 어미 마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것까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억장이 무너져내렸을 거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각자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 모두 헤아릴 필요는 없어보인다. 헤아려야겠다 싶으면 그 헤아리는 순간들까지만. 모두가 모두에게 부처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부처가 되고 싶을 때 부처가 되면 그만. 부처 노릇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부처처럼 대하게 된다면야 진짜 부처일 테고. 신이 인간들 모두에게 집중할 수 없어 대신 엄마를 보낸 거라는 말도 떠오르는구먼. 방금 모기한테 물렸다. 에잇. 리바이벌되는 상황 속에서 사랑을 알게 만들어준 이들 얼굴들 우루루루루. 돌아가신 할머니와 우리 투덜이 박여사. 애착 형성의 과정과 별개로 사람의 기질에 따라서 성인이 되고난 후에 다른 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양상이 많이 달라질 거 같다는 아이의 말에는 동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어린 시절 받았는가와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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