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질에 집착하는 것만큼 흉한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어제 진희와 나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코지마 아오의 만화를 읽다가 물질에 집착하는 그만큼 정신에 집착하는 모습 역시 광증의 단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해탈하겠다. 선을 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원하는 것을 기필코 얻으려 하는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러한 것처럼 기필코 도를 깨우치리니, 하는 마음 역시 어쩐지 집착의 일부인 거 같아 보이긴 한다. 물론 스승에게도 이런 속마음을 내비친 적은 없지만 이 생각은 요가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우주의 흐름대로 돌아가겠지 싶은 해이하고 게으른 속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광증이 믿음의 부분이나 중심일 수도 있다_라는 생각은 스무살에 우연히 마주한 모습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이다. 언제부터인가 알 수는 없지만 책은 든든한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고 그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온지 어언 몇 년이 흐르기도 흘렀다. 책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물욕이 좀 사그라졌나 싶지만 그것도 아닌듯 싶다. 복숭아를 깍둑 썰어 요거트 안에 넣어 냠냠 디저트로 먹으면서 친구가 선물해준 코지마 아오의 만화를 휘리릭 읽다가 오랜만에 책에 대한 찐한 애정을 느끼고 아악 하고 심장을 잠깐 움켜쥐었다. 고구려와 당나라 붙은 이야기를 딸아이가 분노에 차서 쌍욕을 섞어가며 이야기 하는 걸 흘려 듣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아 이따가 잠 안 오면 맥주 마시면서 [안시성]이나 다시 볼까 싶어진다. 에피소드마다 특징이 있었고 그 특징은 일관되게 연기설에 기반되어 있더라는. 나쓰메 소세키를 다시 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만인에게 아부하지 않고 운명의 주인과의 만남을 기다리는"에 연필로 살짝 밑줄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