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하우스메이드 3권을 슬렁슬렁 좀 읽고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침묵의 친구]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이 정화되어가는 느낌은 오랜만인지라 옆에 앉은 사람이 좀이 쑤셔 어쩔 줄 모르겠다는듯 계속 몸을 움직였음에도 짜증내지 않았다. 다만 에티켓은 그 나이 정도면 좀 지켜주면 좋겠다. 불이 켜지고 보니 얼추 마흔은 넘어보이던데. 젊은이들은 거의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들과 중장년층이 대개였다. 씨네키드로 보이는 젊은이들 서넛 정도만 보였고. 만일 내가 그 나이에 그러니까 십대나 이십대여서 뭐 삼십대라고 해도 좋으니 그때 이 영화를 봤다면 얼마나 이 모든 것들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나이가 드니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받아들여지는 건 이런 거구나 다시 오늘 경험으로 느꼈다. 나이 많은 게 삶에 있어서 독이 된다고 여기면 그쪽만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젊어지려고 하는 것도 같고. 사이보그가 아니니까 아무리 젊어지고싶어 발악을 하며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것들만 먹는다고 해도 찰나가 오면 모든 것들이 멈추기 마련이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집에 있는 초록이들 모두에게 그리고 내 껌딱지 고양이에게 눈을 맞춰주며 사랑을 속삭였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그 현상들에 대해서. 마음길이라는 게 눈에 훤하게 보여서 오고가는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걸 알고 싶다, 보고 싶다, 알리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아유르베다를 읽던 와중에 각 도샤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그런 게 꽤 중요한데 그걸 자꾸 거스르려고 하는 현상들이 발생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오해의 소지가 생겨 질병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물론 아직 배우는 입장이니 섣불리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가는 와중에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궁금한 것들이 있는대로 호기심이 생기면 호기심이 있는 그대로 물어보는 것이 더 좋다. 시대는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다 다르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 은행나무가 그 중심에 자리하고 그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이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존재에게 기대면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거나 내게 사랑을 달라는 요구도 집착도 없이 그저 기대고 있다가 아 이건 뭐지 싶어 고개를 들어 찬란한 나뭇잎을 바라볼 때. 1832년부터 코로나가 한창 유행한 2020년까지. 그러니까 약 200여년을 살아온 거대한 나무와 접점을 가졌던 세 명의 인물들 이야기. 일흔이 넘은 노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게 뭘까? 슬픔도 고통도 없이 전혀 다른 종인 인간과 식물이라는 두 존재가 서로를 발견했을 때 그 기쁨과 그 온전한 일체감에 대해서. 양조위 오빠가 나체로 등장해서 순간 깜놀했다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의 인간과 역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이니 이런 식으로 그려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관계도 흔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차단하는가 하면 그러지도 않아. 오해와 이해가 뒤섞여 엮어나가는 흐름도 좋았다. 적이 친구가 되었다가 친구가 적이 되는 게 인간사에 왜 자주 일어나는지. 이해가지 않던 부분도 다시 보면 이해가 살짝 될 수도. 누군가의 어릿광대가 될 필요는 없다. 영화 다 보고 해 쨍쨍할 때 신나서 걷는 동안.



개봉하게 되면 시간이 날 적마다 두 번 더 보러 가기로 했다. 태양이 아스팔트를 들끓게 만들기 전까지는 그래도 상영하지 않을까 싶다. 보는 동안 요가 풀로 연달아 세 시간 정도 한 느낌과 비슷한 충만감을 얻었다. 함께 요가를 하는 도반님 한 분이 우리중에 제일 아상이 강해, 라고 말했다. 여기 모인 이들 중에 아상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반문하니 그래도 그대가 제일 강해, 라고 이야기해서 웃겨서 나만큼 그대도 강하잖아, 라고 말하니 아니야. 제일 쎄. 아상의 퀸이야, 라고 말했다. 그럼 어디 이 아상의 퀸이 아상으로 해탈을 해보도록 하지, 라고 말했더니 도반님이 막 웃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해하며 반갑습니다, 눈맞춤을 한 게 불과 1년 전이거늘 땀범벅에 머리는 산발을 하고 서로에게 아상이 너무 강해서 해탈하기 글렀어 쯧쯧, 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스승들이 들으면 꼴값들 한다, 라고 하시겠군 속으로 생각했다. 에너지의 흐름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는데 왜 난 그 선생님 아사나를 들어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해서 그걸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직접 물어보니 그건 그냥 흐름인데 어떻게 설명을 하나, 라는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을 들었다. 영화 장면들 장면들마다 임레 케르테스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