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기점으로,
Speak lightly, but think deeply.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거의 2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 지나치면서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 그녀가 나를 알아볼 수 없었던 건 당연한 거고. 뒤돌아 그녀인 걸 다시 확인하면서 가서 아는 척을 할까 말까 갈등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열심히 스페인어를 1년 동안 함께 공부했었다. 우리가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그걸 잠깐 헤아리다가 그럴 일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 잠깐 동안 그 모든 것들을 헤아렸다. 이미 끝난 인연을 갖고 다시 잡으려 하지 말라, 내 안에서 속삭였다. 그대로 흘려 보내라.
어제 친구와 통화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알았다. 그는 나를 사랑했는데 참으로 기이한 방식으로 사랑을 했고 그 괴이한 자화상을 마주하면서 그가 꽤 당황했을 법도 하다 싶었다. 조금 더 자유로우면 안돼? 왜 이렇게 어리석어? 수십 번을 말해주어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대체 내가 어떻게 감당을 할까 싶었다. 자기애에 이토록 충실한 내가 나보다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유통기한은 그럼 더 짧아질 텐데, 왜 그렇게 당신은 어리석게 굴어? 나는 당신이 똑똑해서 당신이 좋은 건데 왜 이렇게 멍청하게 행동해? 생각보다 무척 지난한 이별 과정을 겪고난 후에 왜 안 때려? 뺨 맞을 줄 알았는데, 라는 말을 듣고난 후에 가만히 응답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너도 아는구나, 네가 나한테 맞을 짓을 나한테 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나를 진짜 너무 모르는군요. 내 무응답에 시선을 회피하는 당신을 계속 바라보면서. 가끔 만나서 같이 커피 마시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럴 일이 없다는 걸 당신도 나도 너무 잘 알지 않나요. 글쎄, 당신이 정년퇴직을 할 무렵이면 그때는 그럴 수 있을지도. 홀로 속으로 이야기했고. 아마 내 느낌이 맞다면, 당신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뜰 테고 숨을 내쉬지 않는, 차가운 당신의 몸이 담긴 관을 마주하고난 후에야 나는 가벼이 이야기를 시작하겠지요. 한때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한 남자에 대해서. 과거형으로 말했습니다, 포인트.
안토니오 다마지오를 듣는 동안 인간의 의식은 그렇게 절반과 절반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는데 나란 인간은 구할이 한쪽으로 치우친 인간이로구나 그걸 알았다. 김기림과 이상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다가 오열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는 물었다. 크리넥스를 뽑아주면서. 엄마, 이상 때문에 우는 거야? 김기림 때문에 우는 거야? 아주 극소수의 인물들에게만 이해가 가능했고 그 소수의 마음마저 가벼이 여기지 않은. 아침에는 나오기 전 김기림을 몇 편 읽고 나왔다. 심장이 금세 탱탱하게 부풀어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