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짐승이 아니야, 라고 맏언니 치비는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다가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떠올랐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긁히는지, 그 긁히는 부분에 자신의 본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러니까 선한 사람은 악한 걸 보면 거기에서 긁히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진실에서 긁힌다고. 그런데 반대로 봐도 긁히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또 헷갈릴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에 긁힐까? 아니면 추함에 긁힐까? 인간이 뭐 그렇게 단순한 존재는 아니니까. 걸음을 옮기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을 라디오극으로 만든 방송을 듣다가 또 소설 내용이 가물거려서 읽긴 읽어야겠네 싶었다. 치비와 마그다와 리비가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자유인이 된 걸 만끽하며 서로 와인잔을 부딪치는 곳까지. 어린 독일인 병사가 소녀들의 탈출을 저지하며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쏴버릴 테야, 라고 말하니 너는 하나고 우리는 여럿, 네가 나를 쏘게 되면 내 동생들과 친구들이 네게 달려들어 네 눈알을 뽑아버릴 거야, 자비를 베풀 테니 얼른 꺼져, 라고 치비가 말하니 어린 소년은 달리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