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하고 있는데 민이 엄마 이거, 하고 내밀어서 봤더니 미술 수업때 한 거라고. 민이 친구들이 이 사람은 니가 아니야. 이모야. 라고 했다고. 얼마 전에는 엄마와 딸이 도플갱어인가 라는 이야기도 듣긴 들었다. 아침을 먹다가 내가 자주 하는 소리를 똑같은 어조로 똑같이 하는 걸 듣고는 좀 소름이 끼치기도 끼칠 정도였다. 간단하게 어제 기록해놓고 다이어리 펼쳐서 2024년도 쭉 훑어보았다.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스펙타클했다. 3월 28일에 나 귀양 갑니다, 라고 했는데 그때 일주일 굶고 딱 46키로 찍었을 때 나는 다시는 내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정확히 말하면 다시는 그 이전의 인생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라는 결심히 확고하게 다잡혔을 때. 너는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네 마음대로 그렇게 하려고 했겠지만 라고 그날 다이어리에 적혀 있더라. 그리고 감히 이야기하건대 내년에는 올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타클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장면마다 객관성을 지니려고 하는 건 의도하지 않은 바, 하지만 보이는 것들이 다 보이는데 그걸 굳이 눈을 애써 감을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싶었다. 어제 있었던 일은 모두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같은 사건을 겪는다고 해도 이 사람의 시선과 저 사람의 시선이 다르니 거기에서 보이는 것들과 느끼는 것들 모두 있는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아니 에르노와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가 쓴 공통의 이야기들은 모두 다 달랐다. 같은 인물들이 모두 각자 있는 그대로 자신만의 필체로. 하도 오래 전 읽었기에 세세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지만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가 썼던 글은 그냥 평범하기 그지 없었고 얄팍하기 그지 없어 솔직히 명성에 사로잡혀 명성을 얻고자 가십거리로 아니 에르노와 자신의 연애사를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아 완독한 후 불쾌했던 감각만 뇌에 살짝 남아 있다. 혼자 있는 시간 틈틈이 다이어리를 펼쳐 읽었고 올해 1월 1일에 썼던 문장들을 마주보았다. 셀로판지로 만든 가공된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 문장 속 인물을 다시 떠올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셀로판지로 만든 인간과 선생의 차이는 뭐였을까 그리고 만일 공통된 게 있었다면 그 공통점은 뭐였고 그런 것들을 헤아렸다. 어제 새벽에도 했던 이야기지만 인간이 인간을 개별 인격체로 대할 때 거기에서 자신의 모든 진면목이 나온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런 인간입니다, 라고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당신은 이런 인간입니다, 라는 말을 일대일로 마주한 타인이 이야기할 때 그 모두 진실이라고 해도 이 인간과 저 인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간격 만큼이나 크다. 그 차이를 마주하고 스스로 감내할 수 없을 때 언제나 불안에 떠는 것이 또 자연스러운 거고. 불안에 떨면서도 그 불안을 과감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또 놀라울 정도였는데 아 이런 포인트에 매료되는건가 싶기도 했다. 실존의 불안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연연해하지 않는 건 어쩌면 읽는 자이기 때문일지도. 12월 25일이다. 물건들에 사로잡혀 그 물성이 주는 것들에 포획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반짝거리는 황금바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며칠 후면 신년이다. 기록에 충실할 것이다. 써놓고 모두 비공개로 돌려놓은 글은 글쎄 3년 후 그때쯤 다 공개로 돌릴 수 있을지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를 위해서 이건 온전하게 나를 위해서야, 라는 말을 했는데 그 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각자 온전하게 스스로를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기회를 처음에 주지만 그 기회를 바로 잡지 않는 건 자신의 두 눈을 안대로 가로막고 원하는 것을 간절히 얻고자 할 때. 선의건 호의건 악의건 간에 무관하게 시간이 흐르면서 과정이 다 끝나고난 후에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