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떠올렸고 책소개를 대충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바다에서 온 소년이 뭔가 기적 같은 일을 벌이는 이야기인가 보다 하면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읽어보니 전혀 내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이 소설은 아일랜드의 한 어촌 마을에서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생동감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의 환경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엽서 속 풍경은 아니었고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바다라는 존재에서 영적인 기운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영적인 것에 심취하지 않았고 근거 없는 예감이 들더라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9-10쪽)
벌써 초반부터 이곳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 한다고 이렇게 땅땅 못 박고 있으니 나처럼 이 소설에 이상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면 그 환상 내려놓는 게 좋을 것이다.
1973년 아일랜드 더니골 해안에 은박지로 감싼 갓난아기가 반 자른 통 속에 눕혀진 채 떠내려 온다. 어디에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 아기를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서 온 아이라고 불렀고 마치 바다에서 온 선물 같다며 아기에게 애틋한 마음들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을 공동체가 번갈아가면서 아기를 돌보았다.
얼마 후에는 앰브로즈라는 남자가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앰브로즈는 부인 크리스틴과 사이에서 두 살 난 아들 데클란이 있었던 터라 이미 남자 아기를 기를 수 있는 육아 상식과 용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자신이 바다에서 온 아이를 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크리스틴은 남편 앰브로즈가 이 아기를 너무나 좋아하기도 했고 옆에 사는 언니가 반대하는 것에 대한 반항심리도 있고 해서 아기 입양을 찬성한다. 앰브로즈는 아기에게 브렌던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렇게 해서 바다에서 온 아이를 포함한 한 가족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유독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브렌던을 형 데클란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데클란은 아버지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브렌던을 질투했고, 학교에서도 브렌던을 동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두 형제 사이의 감정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진다.
앰브로즈는 결혼하고 이 마을에 정착해 살기 전부터 여기저기를 떠돌며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작은 트롤선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 초반 아이들이 어릴 때는 꽤나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어획량은 점점 줄었고 해안 협정이나 정책들이 소규모 어선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최신식 장비가 달린 더 큰 배를 사야하는 시기에도 앰브로즈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바다에서 예상치 못 한 사고를 당해 망가진 배 수리에 큰돈이 들어가야 하거나 크리스틴의 언니와 아버지의 생활비를 책임지느라 늘 살림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같이 고기잡이 일을 시작한 가장 친한 친구 토미는 제때에 큰 배를 사서 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더욱더 부자가 되었던 반면 앰브로즈는 작고 낡은 배에 묶여 가족의 생계를 겨우 챙기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점점 가난해진다.
이 가족에게 닥치는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1980년대 아일랜드 작은 해안 마을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곳의 공동체는 서로의 형편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며,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남자들은 바다의 날씨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개인의 고통을 밖으로 꺼내기보다는 그저 견디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편 브렌던은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는 공허함이 점점 커지고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서 온 소년이라고 애정을 갖고 불러주는 말들에서 답을 찾는 듯 보였다. 자신이 마치 바다라는 신비 속에서 나타난 기적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다니는 것이다. 사람들도 소년 브렌던을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브렌던이 해주는 축복의 말들에 위안을 받는다. 그 축복이란 “다 잘 될 거에요” “괜찮아지길 바라요” 같은 별 특별한 말이 아님에도 브렌던이 그렇게 말해주면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듯 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기도 잠시일 뿐 브렌던이 점점 거룩해 지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부담스러워서 브렌던을 피하기 시작한다.
현실을 꽉 붙잡고 사는 이 사람들의 성향상 어린 브렌던이 정도를 넘어서려 하자 가차 없이 돌아서고 브렌던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게 중2병 시기를 넘기고 소년은 점점 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클란과의 관계는 악화되기만 한다. 아버지 앰브로즈의 사랑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어야 한다는 데클란의 심술이 나날이 거세어지는 와중에 브렌던은 가족 밖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찾고자 방황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데클란은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에, 적성에도 맞지 않는 어부의 길을 택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그 결정의 이유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앰브로즈의 낡은 배는 더 이상 바다에 나갈 수 없게 된다.
데클란이 그토록 갈구하던 브렌던과 나눠가지지 않은 온전한 아버지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앰브로즈는 애초에 브렌던 또한 친아들로 여기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데클란과의 갈등 속에서 브렌던은 브렌던 대로 이 가족과 안정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자신이 바다에서 왔다는 사실 속에 끼워 넣어야 하는 좀 더 실체적인 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데클란과 앰브로즈 그리고 크리스틴 모두에게 경악스러운 일을 꾸미고 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는 큰 위기를 맞는다.
결국 이 가족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바다에서 온 소년 브렌던의 출생의 비밀은 무엇일지 소설 말미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니까 끝으로 갈수록 더 재밌게 읽었다는 말이다.
이 소설은 아일랜드 어촌 마을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약 18년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마을 공동체의 시점으로 서술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 좀 특이하다. 마치 어디 펍에서 마을 사람들이 소문을 나누듯 이야기가 전달되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그러니까 말수 없는 억센 어촌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톤을 그대로 살린 느낌이었다. 현실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만으로 그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위로를 건넬 수 없게 하는, 그저 그 마음 알 것 같으니 힘들었겠구나 생각만 하게하는 그런 톤이었달까.
또한 바다에서 트롤선을 타고 고기를 잡는 장면의 묘사도 매우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쳐서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조사를 엄청 자세하게 한 듯하다. 한마디로 잘 쓴 소설이란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작가 개럿 카. 기억해야할 이름이 될 것 같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아일랜드에는 좋은 작가가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