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에 나오자마자 찜해 두고 있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야 봤다. 얼마 전에 이 드라마가 에미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말이다.
드라마는 4부작으로 짧다. 하루 저녁 집중하면 후루룩 다 볼 수 있다.
“소년의 시간”이라고 제목을 번역했지만 원제목은 Adolescence. 사춘기, 청소년기라는 영단어.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외웠던 것 같다. 선생님이 너희들의 지금 시기라며 외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사실 한국 제목이 더 좋은 것 같다. 더 함축적이고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라서.
1부에서는 경찰이 가정집을 급습해서 13살 소년을 체포해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근데 보다보면 익숙한 드라마의 장면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야기 속 장면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부 끝날 때 까지 이거 뭔가 현장감이 느껴지고 내가 저 인물들과 함께 움직이는 듯 엄청 기빠지는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그 이유가 1부 내내 원 컷 으로 진행이 되어서 그렇다는 걸 1부 다 보고 나서 깨달았다.
이렇게 원 컷으로 쭉 가니까 보고 있는 나도 한번에 쭈욱 봐진다. 멈췄다 보거나 중간에 끄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냥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내용은 엄청 심각하다. 13살 소년이 또래의 소녀를 살인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이 소년은 왜 그랬을까? 경찰은 살해 동기와 증거물 조사를 위해 학교에 찾아가고 공립학교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심란하게 펼쳐진다. 학생들은 SNS 속에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혐오를 주고받고 그 속에서 따돌림과 고립으로 고통받는데, 교사들과 형사들은 학생들의 문화를 모른다. 선생님 세대는 매트릭스는 알지만 학생들의 빨간약, 파란약의 은어는 알지 못 하고, 학생들은 영화 매트릭스를 알지 못 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 유해한 콘텐츠를 접하고 그것들에 생각을 잠식당한 채 이미 극단적인 사고를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구금시설에 갇힌 소년은 여성 심리학자와 상담을 하는데, 13살 밖에 되지 않는 소년이 심리학자를 쥐고 흔들려는 교활함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그저 그 또래의 미성숙한 사춘기 소년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여성 심리학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폭력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상담을 할수록 소년에게 분명히 보이는 자기 비하는 엉뚱하게도 여성 혐오라는 분노로 표출되고 앞에 있는 여성 상담사에게 정확히 전달된다. 남성 상담사에게는 하지 못 하면서 여성 상담사에게 폭력적인 분노를 분출하는 13세 소년, 이 소년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소년은 80퍼센트의 여성이 20퍼센트의 남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퍼져 있는 인셀 문화다. 20퍼센트에 들지 못 해 느끼는 절망감과 자기 비하는 소년의 마음속에서 내내 끓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만들어 졌을 때 폭발하여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괴로워한다. 내가 잘못 키워서 아들이 이렇게 되었을까? 아들이 자기 방에서 인터넷에서 어떤 해로운 정보를 얻는지 부모가 어떻게 그걸 다 간섭하고 통제할 수 있었겠나?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서 축구장에도 데리고 다니고 아들을 한 번도 때린 적도 없는데 왜 내 아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아버지는 반문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 가족들을 통제하고 분노를 참지 못 해 창고를 때려 부수고 부인과 딸이 늘 비위를 맞추도록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은 늘 아버지에게 남자다움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축구를 잘 못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외면을 받곤 했다. 아버지의 실망감을 다 느끼고 있었을 소년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아버지의 남성성, 엄마와 누나에게 군림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체득했을 것이다.
소년에게 주어진 이 모든 환경, 인터넷 콘텐츠가 퍼뜨리는 인셀 문화와 그로 인한 여성혐오, 가정에서 체득된 폭력적인 남성성이 모두 소년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고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작년에 읽었던 “인셀 테러”가 떠올랐다.
정확히 이 드라마에서 꼬집고 있는 점들을 이 책에서 먼저 만나서 예방 주사를 맞긴 했지만 또 이렇게 드라마로 보게 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꼰대처럼 이런 말도 내뱉게 된다. ‘아...요즘 아이들 어쩌면 좋지...’
요즘 부모들도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을 거고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