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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서재
  • 정원의 기쁨과 슬픔
  • 올리비아 랭
  • 17,820원 (10%990)
  • 2025-02-24
  • : 3,480

올리비아 랭의 책은 처음이다. 검색해 보니 번역서가 여러 권 나와 있던데 내 흥미를 끌 정도는 아니었는지 읽은 건 없고 제목만 조금 낯이 익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일단 제목에 마음이 쏠렸다. 나는 정원 가꾸기에 꽤 관심이 있는데 무려 “정원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책이라니...반가운 마음에 드디어 올리비아 랭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정원을 가꾸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남편과 함께 마련한 집에 이사를 가면서 정원 생활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방치된 정원은 잡초가 우거지고 여기저기 덩굴이 자라나고 죽은 나무와 썩은 뿌리들이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한 겉모습 속에서도 이 정원이 원래는 전문가의 계획적인 솜씨가 들어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이 집은 원래 유명한 정원사가 소유했던 집이었고 작가는 그가 디자인 하고 가꾸었던 정원의 모습을 복원하고자 한다. 그와 친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예전의 정원 사진을 보면서 거기에 있던 꽃과 나무들의 목록을 작성해 정원에 다시 심기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정원을 복원해 나간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하는 와중에 정원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유들을 끄집어낸다.

 

 

‘파라다이스’라는 단어는 기원전 페르시아에서 쓰던 언어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그것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뜻한단다. 그러니까 애초에 파라다이스는 정원을 이르는 단어였고 후에 파라다이스가 낙원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발견에 놀라워하며 어린 시절 정원과 낙원을 연결시켰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 정원이 작가에게는 낙원과 같았다고 추억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학교를 거의 추방당하다시피 떠나게 되었단다. 작가의 어머니가 동네에서 아웃팅 당하면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존 밀턴의 시 “실낙원”과 연결된다.

코로나 시기에 드디어 “실낙원”을 찬찬히 읽어 보게 된 작가는 밀턴이 묘사한 에덴에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에서 놀고먹은게 아니라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노동을 한다고 묘사되었다는 거다. 아담과 이브가 매일매일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고 꽃을 가꾸는 등의 정원사로서의 행위는 현재 작가가 정원을 복원하기위해 하고 있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밀턴의 실낙원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가 어떤 내용인지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정원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실낙원”까지 알게 되다니 너무 유익하지 않은가?

아무튼 올리비아 랭은 “실낙원” 속 정원 가꾸기를 밀턴의 정치관과 연결 짓는다. 에덴을 인간의 노동력을 가지고 절제되고 온화한 방식으로 가꾸고 돌봐야 하는 정원으로 설정한 것은 밀턴이 생각하는 좋은 정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뒤이어 정원에 대한 사유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 즉 귀족들이 선호했던 정원을 만들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을 탐구한다. 풍경화 같은 정원을 위해 인공적으로 댐을 지어 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베고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소작인들을 내쫓던 행태들을.

인클로저 법으로 땅을 잃은 시인 존 클레어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마음이 참 아팠다. 소작농의 아들로 가난하게 태어나 시인이 되고 그렇게 좋아하던 정원을 가꾸며 살게 되었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을 마감했던 비운의 시인. 병원에서 쓴 편지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게 자신이 심었던 꽃을 기억해 내며 정원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온전치 못한 정신 속에서도 돌아가야 할 곳, 자신만의 낙원을 기억하는 그 집념이 너무 슬펐다.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가문이 세운 대저택의 정원도 소개된다. 카리브 해에서 노예무역으로 큰돈을 벌고 미국 남부에 정착해 노예노동으로 대농장을 일구어 더 큰 부를 쌓고 영국으로 돌아온 미들턴 가문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호화로운 정원 그 이면엔 어떤 역사가 있고 누구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토록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정원에서 바쁘게 일을 하는 기록에서 부터 그 정원이 문학, 정치, 역사로 까지 뻗어나가 어느 순간 새롭게 확장 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정원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 감탄했다. 덕분에 영국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고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기억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일례로 존 밀턴의 "실낙원"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가 궁금해져서 크롬웰부터 명예혁명까지 한번 쭉 훑어보기도 했다. 독서 하면서 얻는 이러한 지적 자극! 아주 좋았다.

데릭 저먼이 투병하며 가꾸었다는 정원도 찾아보고 윌리엄 모리스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가 주장했던 사회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차 대전 때 파시즘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대저택 정원에 연합군을 숨겨주었던 아이리스 오리고 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정원은 사적인 공간이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면 개인의 하루하루의 일과나 정원 일을 하며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이 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을 때도 그런 글일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개인의 일상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으로 사유가 뻗어 나가서 한층 더 깊은 독서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제를 엮는 작가의 지식과 통찰에 감탄했다. 게다가 문장도 아름다워서 읽는 맛도 좋았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 졌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주말동안 나도 정원에서 조금 일을 했다. 나무들과 잔디밭을 경계 짓던 회양목을 파내서 한쪽으로 옮겨 심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여파로 회양목 뿌리를 파내면서 생각이란 걸 하게 되었다. 우리 집 정원으로 파생되는 역사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우리집이 있기 전 이곳은 그냥 작은 산이었을 텐데 여기에 무슨 역사가 있을까? 이 책과 같은 글을 쓰려면 얼마나 자료를 파헤치고 주변지식이 있어야 할까 싶었다.

그래, 나는 이런 글은 못 쓰겠구나 그냥 신변잡기 일기나 쓰자. 

"오늘 땅을 팠더니 온 몸에 알이 배었다. 아무래도 운동 부족인가 보다(나의 일기장에서 발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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