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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순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건 몇 달 전 문산(내가 사는 교하와 함께 파주시의 일부인) 부근 어느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에서다. “문산여고 3학년 지관순양 43대 골든벨!” 방송 날짜는 한 달 쯤 후라고 적혀 있었는데 챙겨보진 못했다. 지난 연말에 여기저기서 올해의 인물로 등장하는 걸 보고 그 후로 아주 많이 유명해진 걸 알았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까지 잘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초등학교를 못 다닐 만큼 가난한 소녀가 이룬 작은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그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이웃들의 자랑스러운 벗이 될 것인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의 작은 승리는 이웃들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한 출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개천에서 난 용'의 행로는 대개 그렇다.

아버지 지씨는 지양이 골든벨을 울린 데 기뻐하면서도 “사람 되는 일보다는 공부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며 걱정부터 했다. 공부를 잘 한다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주변의 관심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씨는 “관순이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자율학습도 고3이 되어서야 담임 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저녁 7시까지만 시키고 있다. 지양은 대신 집에 돌아가 집안일은 물론 마을 이웃 일을 돕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도 관순이의 몫이다. 오리를 기르는 지씨는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데도 사육장에서 나오는 오리알은 몇년 전부터 인근 의료원과 요양소 등지에 수용된 오갈 곳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씨는 “관순이가 학자보다는 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 치고 곡학아세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학생은 많지만 의인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어제 우연찮게 읽은 지난 신문 기사에서 나는 지관순 양이 매우 반듯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며 그 배경엔 그의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가난한 아버지는 많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가난하면서도 자식에게서 존경받는 아버지는 없다. 영혼이나 사랑까지 사고파는 세상에서 가난한 아버지는 자식의 인생을 해치는 죄인에 가깝다. 그러니 지관순 양과 그 아버지의 경우는 참 특별하다. 딸을 초등학교에 못 보낼 만큼 가난한데다 “의인”이니 “곡학아세”니 하는 지사적 언어(요즘 젊은이들이 구리디 구려하는)를 사용하는 아버지와 2004년의 딸 사이에 흐르는 믿기 어려운 존중은 말이다. 한 가지만 짐작한다면 그 아버지는 제 딸을 단지 말로 가르친 게 아닐 것이다. 말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 그는 제 딸에게 ‘살아 보인’ 게 틀림없다.

                                                                                                              -Gyuhang.net 에서 퍼왔습니다.

말이 아닌 살아보이기. 말은 쉽고 살아보이기는 어렵다. 반듯한 의식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할수 있도록 배경이 되는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그 '살아보이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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