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은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5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부당함을 제기하고 또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독립된 기구가 움직인 것은 고작 5년 밖에 안된다. 얼마 전 한겨레21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소속기관이 아니고 독립된 기관이라는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그 성과물들 또한 아시아(세계에서 절대 아니다)에서 최고의 모범 사례들이라고 나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가인권기구는 그 사회 인권 현실의 반영인 동시에 그 극복의 표현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국가의 오른손'이 한일을 반성하는 '국가의 왼손'이고, 강권적 권력기구처럼 무장은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권력'이며,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역설의 기관'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그 사회 양심과 지성의 체화다. --<인권> 2006년 11월호에서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법과 제도적인 장치들을 바꾸고 새로 만들어 우리 사회 약자,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공론화 시켜왔다. 그와 더불어 평범(?)하지 않음, 남(?)과 다름, 약하고 가난한 것에 그닥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들에게 이런 것도 좀 생각해 보시오, 제발 이런 곳에 시선을 가져주시오 하고 책(만화책 포함)을 기획하고, 영화를 기획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성찰이 우리 사회 약자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왜냐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하고만 같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세상>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어린 엄마들, 탈학교 청소년, 아시아에서 시집온 여성과 그들의 아이들, 도시의 노인들, 폐광지역에 사는 사람들, 보안관찰법에 의해 감시당하는 사람들, 무슬림,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학교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 새벽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 농촌 청소년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 일본인 처, 창신동 봉재 기술자들에 대해 절절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때의 추억이 강해서인지 '배부르니까 별것들이 설친다' 등등의 이상한 소리 나불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범(?)하지 못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출한 차이에 대해서는 선망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렇지 않은 차이에 대해서는 왜곡하고 폄훼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야기 하는 인권의 문제가 특별히 부족하고, 약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김영삼 정부때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그때는 보호 장치가 많으므로 항간의 우려와는 달리 비정규직이 양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에 육박한다. 이렇게 많은 수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우리 사회는 자신이 안전한 선에 도달해 있으면 그걸로 안심 그들의 아픔에 별 고민이 없다. 그 안전한 선이라는 것이 그렇게 안전한 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마전 한겨레에 철암어린이도서관 활동가들이 나온 적이 있다. 죽어가는(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도 이런 말을 붙이는 나는 생각없이 내뱉는 일상 언어의 폭력성을 새삼 느낀다) 도시 태백 철암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위해 고전분투 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방송에 한번 출연하면 쉽게 멋진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쳤는가를 보았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그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힘겨운 길을 보며 그들을 무모하다, 어리석다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진정 우리시대 인권의 현주소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앎을 넘어서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제대로 실천을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건강한 우리에게는 단순히 시간 절약, 맛있는 것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장애인들에게는 그 곳에 갈 수 있느냐의 문제로, 한센병 환자에게는 배고픔을 해소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장애인의 대다수는 후천적인 장애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안전한 선에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없다. 단순히 불쌍하다는 마음만 갖고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몫을 나누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도 안되는 대세에 돈이 안되지만 이익이 안되지만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선진국은 단순히 우리의 생활수준, 소득수준의 향상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이다. 사회의 안전막이 우리사회 곳곳,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지 그렇다면 다수의 우리가 그들과 나눌 수 있고, 그들을 위해 포기할 것들은 무엇인지 안다면 '세금 폭풍'이라는 이상한 말은 우리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한국, 많이 살만해졌다. 그런데 중국서 시집온 친구가 그러더라. 언어도 별다르지 않고 외모도 다르지 않은데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고...제대로 끼니도 못먹는 가난한 나라에서 무슨 사연으로 시집을 왔나, 남편한테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나 그런 궁금증으로 그런 시선으로 본다더라. 그래서 그 친구는 아이의 학교에서 만난 엄마들한테 중국에서 온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지 모른다. 자기한테 그러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아이한테까지 이상한 시선이 미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때 진짜 이해 안되는 점 몇가지 있었다러라.
첫째, 제대로 교육 받은 대다수의 여자들이 집에서 놀고 있더라.
둘째, 남녀간에 임금 차이가 심하더라.
셋째, 아이들 보육기관이 너무나 부족하더라(특히 직장내 탁아시설).
봐라, 우리나라 사람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시집온 사람들, 일하러 온 사람들 무시할 것도 안된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도 엄청 후진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