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집중해서 읽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들어봤지만 저자의 이름은 좀 낯설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 되뇌어봐도 입에 탁 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을 다 읽을 무렵 저자의 이름이 덜 낯설어지게 되었으니 다행인건가.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마다 러시아 인명에 익숙해지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건가 다시 한 번 느낀다.
성과 이름을 합쳐서 하나만 쓰면 될 것이지 이들은 이름이 워낙 길다 보니(성이 겹치니 구별을 위해 길어지는 것 같기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 있다. 문제는 원래의 이름과 발음조차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는 매번 다른 인물인가 하고 헷갈리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아, 아까 그 사람이구나...' 하는 경우가 몇 번이고 생긴다는 말.
닥터 지바고는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그 이후의 갈등과 여진, 적군과 내군 간의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다.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 이야기라 오히려 기대치를 내려놓고 봐서인지 나름 잘 읽었다. 물론 나는 역사적 배경에 더 꽂혀 읽었으나 점차 주인공의 감정과 서사에 연민을 느끼면서 마지막에는 주인공 남녀의 결말에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짠하기도 해서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세월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 말이 있던가. 사람은 의지를 갖고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이것은 너무 팍팍하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 땅을 빼앗기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다면 돌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가 싶은 것이다. 그럴 때 이웃과 국가, 세상은 협력자가 되었다가도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 보면 러시아 혁명은 세계적인 사건이지 당시 러시아에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제군주정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던 이들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 전 러시아의 지붕이 뜯겨져 나갔고, 전 러시아의 민중과 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놓이게 된 겁니다. 우리를 감시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자유! 말이나 요구뿐이 아닌 진짜 자유, 기대 이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자유죠."
"모든 이에게 변화와 대변혁이 일어났죠. 각자에게 두 가지 혁명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혁명이라고요. 제 생각에 사회주의, 이것은 모든 개별적인 혁명이 강줄기가 되어 흘러 들어가는 바다, 삶의 바다, 자주성의 바다예요. ... 이제 사람들은 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몸으로,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 혁명을 겪기로 결정을 내린 거죠."
이들이 원하는 이상은 공동의 목표인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자 다름을 인지하게 된다.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편, 다른 한편에는 볼셰비키 편에 선 이들 간에 충돌이 발생했다. 보다 건설적인 계획을 위해서 일정 정도의 파괴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이 있었는가 하면(파괴의 정도는 논외로 하고) 기존의 체제를 개혁하여 새 삶을 일구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과정을 군중의 목소리를 빌어 '역사의 현장'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노동자 주민은 거주 공간을 제공받아 이주하고, 노동자가 아닌 주민은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과연 이들은 이런 형태를 원했던 걸까? 사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혁명이 그들을 깨우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더 큰 억압의 굴레를 마주해야만 했다. 생각했다. 과연 이들 중 진정으로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중 다른 이들에 의해 동화된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변혁을 꿈꿀 수는 있어도 결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경우는 도중에 파기될 수도 있고 실현 가능성조차 낮을 수 있다. 사실 영웅은 몇 명에 불과하다. 서로를 모방하며 만들어진 우연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 필연 같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들은 이후 이동,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깝거나 먼(또는 모르는) 이들을 통해 배신을 경험했으며 파멸, 죽음의 광경을 수도 없이 목도하게 되었다.
남자들은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터에 나갔고 여자들은 간호사로 나가 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정을 살리기 위해 더 힘든 고난을 마주해야 했다.
라라는 일찍부터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미쳤으며 이후의 인생은 파멸, '돌아서 사는 삶'을 살아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서 유라는 자신도 모르게 끌리고 천사 같은 광영을 본다. 라라가 하는 모든 일이 신성하고 아름답게 보인 것을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유리 지바고(유라)는 의사로 혁명 초기에는 이념을 열렬히 신봉한 만큼 열정적이었으나 10월 혁명 이후에는 시들해진다. 피를 흘려가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가 일었고 삶과 유리된 구호가 의미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삶이었다. 나도 지바고의 이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치만 파트너로 토냐 대신 라라를 선택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토냐는 가정을 누구보다 잘 꾸려나간 강인한 여성이었다. 결국 감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그래도 이미 있는 가정을 놓고 이상의 여인을 쫓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유라와 라라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꾸만 커져 가는 라라에 대한 마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유라는 (드디어는) 결심 끝에 라라의 집에 간다. 이때 하필 지바고는 부대의 의사가 살해당했다며 의료 노역자로 동원당하고 만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강제 동원에서 빠져 나와 라라와 다시 해후한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탈영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쫓기는 입장에서 그녀와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끝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한다. 둘의 최후가 어쩜 그리 안타깝던지... 그리운 이를 두고 떠나가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면 참 먹먹하다.
"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구부린 팔꿈치가 당신을 기억하는 한, 내 팔과 입술이 당신을 느끼는 한,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리라. 뭐든 훌륭하고 오래 기억될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리라. 부드럽고 또 부드러운, 아프게 슬픈 묘사로 당신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리라. 이것을 다 할때까지 이곳에 남으리라. 그 후에 떠나리라. 이렇게 당신을 표현하리라. ..."
3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4월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겨우 읽었다니 너무 오래 걸렸다. 길이가 상당한 소설인 만큼 등장 인물도 많고 그들 간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사실 이해하는 것에 집중을 요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막 읽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배경 이야기를 적는 데는 수월해서 금방 적어내려간 반면 인물을 이야기하고 그들 간에 이야기를 어떻게 적어야 할 지는 잘 모르겠어서 자꾸 글이 멈칫 멈칫 했다.
그래도 써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아 짧게나마 기록해둔다.